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변호사)

지난 5일 대법원에서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이 있었다. 대법원 주위에는 입장을 원하는 조합원들이 긴 줄을 섰다는 후문이다. 대법원의 역사적인 순간을 방청하고 싶어 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던지 대다수는 발길을 돌렸고 일부는 대법원에서 상영하는 아주 작은 티브이를 봤다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날 공부하던 시절 교과서에서나 나오던 죄목으로 아무개 국회의원이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에 묻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향후 우리의 삶을 결정지을 큰 사건이라는 데서는 어느 쪽도 가볍지 않다.

같은 시각 필자도 다른 하급심 재판정에서 통상임금 사건을 진행하느라 그날 저녁에서야 공개변론을 다시 훑어볼 수 있었다. 대법관들이 확인한 쟁점으로는 통상임금에 대한 개념, 노사합의로 통상임금 범위 제한 가능,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경제사회적 파장 등이었다.

그런데 3시간 가까운 공개변론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은 굳이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것이었다. 추정일 따름이지만 이번 전원합의체 회부 이유를 법원조직법에서 찾는다면 종전 판례 변경의 경우(제7조제3호)이거나 부에서 판단하기가 적당하지 않는 경우(제7조 제5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해서 회부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날 공개변론 이전 경영계에서는 종전 판례 변경을 위해 전원합의체가 구성됐다는 등의 근거 없는 희망을 밝히기도 했다. 법률적 평가로는 전원합의체나 소부 모두 대법원의 판결이고 그 효력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음을 잘 알고 있을 것임에도 이런 소문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 공개변론에서 대법관들의 질문에서 어느 것 하나도 종전 통상임금 정의와 요건에 관한 대법원의 판례가 잘못됐다는 취지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원합의체 회부 이유는 대법원장이 모두발언에서 밝힌 것처럼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최고법원이 사회적 논란을 매듭짓기 위한 목적이 더 컸던 것이 아니었겠나. 부(대법관 3명)에서 판단할 경우 전원합의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후에도 대법원 판결을 트집 잡을 이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으리라.

회사측의 변론을 들은 후엔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법리상 새로운 주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정기성 요건에 대한 주장이었다. 적어도 1개월 내에 지급하는 금원이어야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기나 반기마다 지급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의 정기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96년 대법원 판례가 정기성 개념을 넓힌 이후부터 상하급심을 가리지 않고 법원에서 기각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정기성 요건을 다투는 재판은 찾기 어렵다.

회사측의 주장이라면 상여금뿐 아니라 1개월을 넘어 지급되는 모든 수당 또한 통상임금에서 제외돼야 한다. 노동현실상 그와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정기성 주장에는 측은함까지 들었다. 일률성과 고정성 개념에 대한 법원의 확고한 법리를 부정하기 어려워 더 이상 통상임금 요건으로서 유의미하지 않는 정기성 요건을 부정하는 전략을 고려했으리라.

경제적 부담에 관한 변론 또한 큰 쟁점이 되지 못했다.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할 만한 법률적으로 유의미한 주장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공개변론에서도 “그동안 판례를 무시한 결과가 아닌가”라는 대법관의 지적으로 이에 관한 논란은 끝난 것으로 보였다.

마치 필자가 그 자리에 선 것 같은 긴장의 시간이 흘렀다. 적지 않은 노조와 노동자들이 전원합의체에서 공개변론까지 연 것에 불안해한 것이 사실이다. 사용자와 공권력에 대한 깊은 불신이 뒤섞여 있었던 탓이 크지 않았겠나.

그러나 공개변론 이후 현장 분위기를 보면 우려보다는 기대가 큰 것 같다. 통상임금 문제가 대법원 선고에서부터 잘 풀릴 거라는 의견이 다수다. 노사 양측의 변론과 대법관들의 질문에 대한 답에서 나름 이후 결론까지 예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법원에 대한 믿음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 노동자들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겠습니다”라는 대법원장의 맺음말 이상 그 무엇이 필요하겠나.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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