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화
변호사
민주노총
법률원

지난 여름 내내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리해고 조합원과 관련한 가처분 결정 결과를 검색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심문이 종결된 지 두 달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오래 전 학교 다닐 때 활동했던 학회가 이런저런 이유로 ‘문’을 닫게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학회가 없어지던 날 어느 집회에 참가했다가 후배들과 마지막 뒤풀이를 했습니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넋두리처럼 했던 이야기들이 가끔 떠오르곤 합니다.

"형! 있잖아요. 우리는 인터내셔널가를 팔이 아프도록 부르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잖아요."

"미친 듯이 운동장에서 돌아다니며 기차놀이 한 것 같지 않냐?"

"사람들과 부딪히고 가방에 걸려 자빠지기도 하고. 근데 오늘은 우리 셋만 남아서 그 기차놀이도 못하네요."

"재밌고 신난 일은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냐. 근데 그동안 우리가 한 일처럼 재미없고 지루하고 힘든 일에는 누구도 잘 안 하려고 하잖아."

"그래도 항상 그런 사람은 나오지 않을까요. 10년 후에 형이 뭐 하는지 꼭 볼 거예요."

당시에는 격려의 표현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던 후배의 말이 그날 대화의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서울의 밤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며 무의미하고 불순한 말들을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이후에도 제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후 저는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법률원에서 일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고 시원스레 대답한 적은 없는 듯도 하지만 준비된 대답이 없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한 조합원은 정리해고를 당한 지 8년이 지났고,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온 지 4년이 훌쩍 지났지만, 의욕적으로 그리고 담담히 자신만의 투쟁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정리해고를 했던 회사는 그분이 진행하는 불매운동에 대한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고 올해 7월17일 심문이 종결됐습니다. 가처분 신청 내용은 전국 매장과 유명산 102곳 등에서 진행 중인 불매 관련 활동을 금지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도 광범위한 금지영역을 설정해 언론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그 조합원은 4월께부터 노동조합이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등산·리본 달기·대리점 앞 1인 시위 등을 진행했습니다. 그분의 투쟁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맛비가 세차게 몰아치는 거친 밤, 농성 중인 천막 속에서 그분이 들어야 하는 그 바람소리를 가만히 상상해 봅니다.

제가 두 달 넘게 결과가 나오지 않는 가처분 결정에 조급해 하자 “방어가 잘돼 법원도 고민하는 것 아니겠냐”는 한 선배의 말처럼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합니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분의 투쟁은 계속되겠지만, 작게나마 다시 힘을 내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좋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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