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
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직원공제회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수요집회가 벌써 8개월을 맞았다.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 지부의 집회다. 이들은 한국교직원공제회가 비정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고 노조를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직원공제회는 자신이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고용형태는 참으로 복잡하다. 우선 이들은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운영하는 보험사업부에서 일해 왔다. 그런데 이들을 고용한 곳은 한국고용정보(주)라는 파견회사다. 한국고용정보와 한국교직원공제회가 파견계약을 맺고 일을 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은 업무위탁계약을 맺었다. 노동자를 파견하면 2년이 지났을 때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므로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직원공제회는 아무런 부담 없이 노동자들을 길게는 8년까지 사용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명백하게 불법파견이다. 파견계약을 맺은 것이 아닌데도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직접 업무지시를 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노동자들은 한국고용정보의 직원이 아니다. 한국고용정보는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지 않고, 1년 단위로 촉탁계약을 갱신하는 개인사업자 형태로 만들었다. 한국고용정보는 98년 KBS·노동부·중소기업청과 공동으로 ‘범국민 100만 일자리 만들기 캠페인’을 기획·진행하면서 설립된 회사다. 콜센터 노동자 아웃소싱·파견과 대행 전문회사로 국민건강보험공단·한국교직원공제회·KB국민은행·우리은행 등 공공기관과 금융권에 3천여명의 노동자를 파견하고 있다. 파견업체 5위 안에 드는 기업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을 위장자영업자 형태로 만들어서 파견이 아닌 형태로 파견을 해 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이런 복잡한 고용형태에 관심을 두지 않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터 사안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 노동자들은 회사가 데이터베이스를 불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회사에 시정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노동자들은 하루 동안 업무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8월 3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했다. 해고노동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노동위원회를 찾아가서야 고용형태가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개인사업자로 돼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므로 한국고용정보에게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라고 판정했다. 한국고용정보는 해고된 조합원을 복직시켰지만 그해 말 또다시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했다. 그리고 중앙노동위원회는 해고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한국교직원공제회의 불법파견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교직원공제회가 파견계약을 맺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를 통해 일을 시켰음에도 그 노동자들이 한국고용정보에 직접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 같은 고용형태의 정당성을 인정해 버린 것이다. 노동자들은 특수고용과 간접고용이라는 이중으로 왜곡된 고용형태로 인해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기업들은 이처럼 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기 위해 고용형태를 복잡하고 다양하게 왜곡하고 있다. 최근 사내하청업체에서는 1년 단위 계약직 고용이나 3중 파견도 횡행한다. 파견업체들은 노동자들을 위장자영업자로 만들고, 단시간 노동자들에겐 계약직 신분을 부여한다. 비정규직의 굴레는 날로 복잡해지고 다양해진다.

회사측의 부당한 처우와 차별에 항의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저항하는 순간 특수고용이니 간접고용이니 하는 복잡한 고용구조 안에서 권리를 찾기 어려워진다. 근로기준법상 부당노동행위 조항은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 노동자들은 법률적 유리함을 믿고 부당함에 저항한 것이 아니다. 부당함 그 자체에 대해 저항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1년간 노동자성도, 불법파견도 인정하지 않은 노동위원회 판정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사용자로 나서라고 요구하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한 문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해 보이지만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고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다. 부당함에 저항했던 그 용기로 1년간 당당하게 싸워 온 사무금융노조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현희숙 조합원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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