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탄압과 비판은 다르다. 보수주의자들도 인정하듯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힘은 다양한 의견이 인정되고 토론되는 다원주의에 있다. 다르다고, 옳지 않다고 탄압부터 하는 것은 민주주의 방식이 아니다.

이번 아르오(RO) 내란음모 혐의 사태도 마찬가지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당일 행사 참가자들이 어떤 내용을 토론했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탄압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진영이 정치사상의 자유만을 외치는 것은 현 정세에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것 같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진보진영의 목적인데, 국가정보원이 이른바 5월 회합 녹취록이라고 밝힌 내용에는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는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은 북한 핵무기를 옹호하는 것은 물론 남북전쟁 위기 상황에서 북한 정권과 남한의 자주역량이 함께 통일을 위한 내전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취록은 이정희 대표의 성명이나 지금까지 통합진보당의 노선을 볼 때 과장됐을 수는 있겠지만 전부 조작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은 난감한 것이다. 내란음모죄나 국가보안법과 같은 공안탄압 법에 반대하지만 동시에 남북 대립으로 인한 양국 민중들의 피해를 군사적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생각에도 반대하기 때문이다.

5월 회합 녹취록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은 평화주의가 정세에 따라 무력할 수밖에 없다며 군사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단적 상황이 되면 정세의 주도권을 시민이 아니라 북한 정부가 쥐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역사에서 경험했다시피 군사적 전쟁 정세란 철저하게 정부와 군대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상황이며, 시민들의 권리가 최소한으로 제한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사라지지 않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계기가 된다. 전쟁 후 권위주의적 정부가 들어서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다. 장난감 총을 개조하고 압력밥솥 폭탄을 만들자는 주장이 터무니없어 몽상 또는 농담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과연 그날 모임에 참석한 통합진보당 리더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따져 봐야 한다. 진보진영이 군사적 해결을 배격하고 평화주의를 옹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특정 정세에서 현실적으로 무력한 방법일 수 있어도 시민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을 벗어났고 북한에 친화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이 민주주의 발전에 반하기 때문에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나 진중권씨의 비판은 이석기 의원의 5월 회합 발언만큼이나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들이다. 심상정 의원은 ‘헌법 밖 진보’가 용납될 수 없다고 했는데, 사실 그 자신이 헌법 밖 진보로 그 자리에 선 것이다. 87년 6월 항쟁을 통한 개헌이 없었더라면 그 역시 국회의원이 될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역사 전체를 보더라도 세계사적으로 민주주의는 기존의 헌법적 또는 가장 지배적인 질서를 넘어서며 발전해 왔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 권리를 가지기 위해, 군주가 아니라 시민이 권리를 가지기 위해,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권리를 가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질서를, 헌법을 피를 흘리며 무너뜨렸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의 주장과 반대로 헌법 밖 진보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진중권씨는 당시 모임 참석자들을 발달장애·신흥종교·다단계 등으로 조롱했다. 그런데 최근 그의 발언을 보면 그가 신흥종교나 다단계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할 근거를 찾기 힘들다. 진중권씨는 주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판결하는 방식으로 주위에 지지자들을 모은다. 권력에 대한 조롱은 해학과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겠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은 소수를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실제 진중권씨가 언론을 타는 것은 대부분 진보진영 내부에 대한 조롱과 비하를 보수언론이 받아쓰면서였다.

진보진영은 진지한 평화주의적 시각에서 이석기 의원의 5월 강연 내용을 비판해야 하며, 국정원의 탄압에 대해서는 공동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비판과 싸움이 무엇인지 토론해 나가야 한다. 조직 방어나 반민주적 비판 모두 지양돼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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