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정신이 없어요. 일도 많고 현안도 많고. 7개월 지도부 공백으로 현장도, 사무총국도 상태가 말이 아니더라고요.”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신승철(49·사진) 위원장을 만났다. 7월18일 선거에서 당선된 지 한 달 반. “이제 즐길 때가 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신 위원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즐길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듣고 보니 그렇다. 당선된 지 이틀 만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서 물대포를 맞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봤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은 여전히 길거리에서 싸웠다. 철도 민영화 추진에 반발한 철도노조는 파업을 준비했다. 사회적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70여곳의 현안 사업장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 위원장이 세 번 운 까닭

당선된 신 위원장은 곧잘 울었다. 언론사 기자들에게 눈에 띈 것만 해도 세 번이다. 7월20일 현대차 울산공장 앞 희망버스 행사에서 처음 눈물을 보였다. 지난달 24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민대회에서도, 이달 4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이소선 어머니 2주기 추도식 자리에서도 울었다.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사무총장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한 성깔’했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면 의외라고 느꼈을 것이다.

신 위원장은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멋쩍어했다.

“80년대에 제가 노조민주화 운동을 할 때만큼 현대차 비정규직이나 쌍용차 해고자 동지들의 마음이 절박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절박함을 들어 주는 곳이 없어요.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지 40여년이 지났는데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습니다. ‘위원장이 감정조절 못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느끼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답답한, 왜 그런 마음 있잖아요. 위원장으로서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총파업 카드’ 꺼내 든 민주노총

신 위원장을 만난 날은 민주노총이 하반기 투쟁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예정된 날이었다. 정부가 수서발 KTX 법인화를 강행해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으로 연대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 새로운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법이나 한미FTA 등 굵직한 노동·사회 현안과 관련해 이전 민주노총 지도부가 늘상 외쳤던 전술이다. 파업동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파업이 필요할 정도의 현안은 항상 있는데, 이른바 ‘뻥파업’이 될까 봐 걱정되는 것이 민주노총 지도부의 오랜 고민이었다. 신 위원장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왜 고민을 하지 않았겠어요. 자칫 실행되지 않을 수 있는 파업을 하는 것인데. 총파업 자체보다는 국민 여론을 조성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도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이 파업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여러 가지 우려가 있고 민주노총을 둘러싼 상황이 쉽지 않은데도 중앙집행위원들이 총파업에 동의해 줬습니다.”

수서발 KTX 법인화가 철도 민영화나 다름없고, 민영화가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민주노총이 나설 법도 하다. 그런데 개별사업장 파업에 민주노총이 연대파업에 나선 적은 거의 없었다. 2002년 발전노조 파업과 관련해 민주노총이 연대파업 직전까지 간 사례는 있었지만.

“2002년에는 산별연맹 결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민주노총이 파업을 추진했어요. 반면 이번에는 공공운수노조·연맹이 먼저 결정을 했습니다. 연맹 사업장들이 총력투쟁을 속속 결의하고 있어요. 쉽지 않은 파업에 연맹이 먼저 의지를 밝혔고, 철도노조가 오랫동안 준비를 했습니다. 제가 위원장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됐더라도 파업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조건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 정권"

신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시각을 묻자 "노동자들과 민주노총은 스스로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법적 절차에 따라 쟁의행위를 합니다. 물론 절박한 마음에 현행법 테두리를 벗어난 투쟁을 하기도 하죠. 그러면 노동자들은 수배되거나 구속됩니다.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겁니다. 반면에 불법행위를 한 사용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불법파견을 저지른 사용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기획부도 의혹까지 불거졌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철도 민영화에 대해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기초노령연금을 늘리고 4대 중증질환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확대하겠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을 저버리고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쌍용차 국정조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 정부와는 최소한의 차별성을 보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이벤트성 정치만 하고 있습니다."

“기간산업 민영화 저지, 지역연대투쟁 필요”

민주노총은 최근 ‘지역연대 파업’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기획하는 것은 총연맹이지만, 지역본부가 실제 파업을 운영하고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신 위원장은 “철도노조를 포함해 투쟁의 주요 의제인 가스·발전 등이 네트워크산업(기간산업)이기 때문에 지역 중심의 연대투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파업에 나설 조합원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산별연맹이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은 탓에 지역을 중심으로 파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신 위원장은 “산별연맹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가 민주노총 총파업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지역 중심의 파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실험하지 않은 것은 맞지요. 가맹 산별조직의 결정 없이 지역총파업을 결의할 수 없는 것도 맞고요. 현대·기아차지부는 철도노조 파업이 예상되는 10월에는 집행부 선거를 합니다. 파업이 어렵다고 봐야지요. 지역조직들이 파업을 할 수 있도록 산별연맹이 결의하고 철도·가스·발전노조가 참여하는 지역대책위원회를 만들면 투쟁을 확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비정규직 100만명 조직화 위해 200억원 모으겠다”

신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가 시도하는 새로운 실험은 또 있다. 미조직 노동자 100만명 조직화에 쓰기 위해 기금 200억원을 모으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비슷한 사업을 한 경험이 있다. 2005년부터 50억원 기금적립을 추진했다. 조합원 50만명이 1만원씩 내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벌여 건설·서비스노동자 노조가입 등 성과를 거뒀다.

당시 50억원 모금 목표에 절반도 안 되는 22억원만이 모였다. 이런 현실에서 200억원을 모으는 것이 가능할까. 200억원을 모으기 위해서는 조합원 50만명이 4만원씩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신 위원장은 “지난번 기금모금이 지침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는 방법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급여에서 1천원 미만 끝전 모으기 운동 등 조합원들이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다양한 방식의 운동을 펼치면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런 다음에 기금모금을 결의하겠다는 것이다.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할 때는 막 비정규직 문제가 쟁점화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이 표출되는 힘든 시기였어요. 지금은 800만명 이상의 비정규직이 있고, 노동운동을 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비껴 갈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무르익었습니다. ‘1인당 얼마씩 내라’는 식의 지침이 아니라 이 사업이 왜 필요한지 조합원들이 먼저 생각하게 만들고 실천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다 분위기가 조성되면 지난번 50억원 기금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조직부터 결심을 하게 만들어야죠. 정규직노조들도 기금모금을 결의할 겁니다. 돈을 모으는 방식도, 내부나 사회적 분위기도 과거와 다릅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반기 정세, 대립적일 수밖에"

신 위원장은 하반기 정세를 "대립적"이라는 말로 축약했다. 정부가 철도·가스·발전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특수고용직과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문제가 국회 중심으로 쟁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노사정 대화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노사정위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노사정 논의가 되겠습니까. 현제로서는 노사정 논의로 노동현안이 해결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하반기에도 정부와 민주노총은 대립적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신 위원장은 끝으로 한국노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시각을 보였다.

"주요 노동현안이 국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노조법 개정 등과 관련해 사안별로 연대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목적의식적으로 한국노총과 공조해야 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본부 재정부족은 현실, 중앙은 자립성 강화해야"

이석기 의원 사태, 인권·정치사상 자유의 문제



신승철(49) 민주노총 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최근 논란이 된 서울지역본부의 서울시 재정지원 사업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태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피력했다.

신 위원장은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지자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민주노총 중앙은 재정자립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역본부는 비정규직 사업 등 현장 밀착사업을 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다”며 “지자체 지원을 받는 것이 자주성과 독립성을 얼마나 훼손하는지 평가한 뒤 내년 대의원대회에서 원칙과 방침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노총 중앙이 정부로부터 건물임대료를 지원받는 것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정부지원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벽돌 한 장 쌓기 운동’ 등 모금을 통해 임대료를 확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신 위원장은 “피와 땀으로 건설된 민주노총이라는 조직답게 조합원들의 애정과 기대로 건물을 확보해 독립성과 자주성을 꾀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석기 의원 사태와 관련해서는 “3년간 내사를 진행한 국가정보원이 왜 지금 이 사건을 터뜨렸는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이 문제는 정치사상의 자유, 인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국정원이 공개한 녹취록의 사실 여부 공방에 민주노총이 휩쓸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국정원의 압수수색과 녹취록 공개로 국정원 개혁 분위기가 묻혀 버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신 위원장은 특히 “내사라는 명목으로 3년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도 분명히 짚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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