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당시 해고자들은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더 괴롭히는 것은 회사와 경찰의 손해배상 청구로 지금까지도 해고자를 포함한 쌍용차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현재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금액은 사측 100억원, 경찰 14억7천만원, 여기에 M화재보험의 110억원의 구상금 청구까지 224억7천만원에 달한다. 가압류된 금액만 28억9천만원이다.

쌍용차뿐이랴. 지난해 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조합원 역시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괴로워했다.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가 노동자 목숨까지 앗아가는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제도개선은 요원한 상태다.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질 때마다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이를 방치해선 안 된다. 쌍용차 등 당장 고통 받는 노동자를 위해 손배·가압류를 취하하고 국회는 이번에야말로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한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
-----------------

노동자 세 번 죽이는 손배·가압류 취하해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수석부지부장

지난 2009년 쌍용차지부 파업과 관련해 사측과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이 무려 114억7천만원이다. 지금 28억9천만원의 가압류가 집행 중인데 오는 16일 선고공판이 열린다.

해고자와 희망퇴직자들은 물론이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까지 가압류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파업 당시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의 악몽으로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조합원들에게 손배·가압류는 다시 한 번 고통을 주고 있다.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는 것은 물론 정신적인 고통까지 겪고 있는 것이다.

당시 파업에 참가했던 조합원들 중에는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경찰과 사측의 손배·가압류 신청은 그들에게 끊임없는 악몽이 되고 있다.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들에게 삼중고의 고통을 안겨 준다. 경제적 어려움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가족들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개인의 삶을 핍박하고 파괴하고 있다.

직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 노사가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면 경찰과 사측은 소송을 하루빨리 취하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만 있는, 노동자들을 죽이는 법

문영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수석부지회장

지난 2011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이유로 사측은 지회에 158억원, 민주노총 부산본부에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놓은 상태다. 이달 말에 부산본부에 대한 손배청구와 관련해 1심 재판이 예정돼 있다.

한진중공업에서는 3명의 노동자 열사가 손배·가압류와 관련돼 있다. 김주익·곽재규·최강서 열사다. 모두 손배·가압류 때문에 직간접적인 고통을 겪었고, 이에 항거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 파업이나 투쟁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압류를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또 손배·가압류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살하는 유일한 나라다. 얼마 전 일본 NHK가 세계 유일한 제도와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죽음을 취재하기 위해 한진중공업을 방문했을 정도다. 부끄러운 제도다. 철저하게 사용자의 편에 서서 만들어진 제도다.

노동자들에게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안기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손배·가압류 제도다. 대한민국만이 가지고 있는 악법인 만큼, 제도개선이 필요하고 당연히 폐지돼 없어져야 한다.

노동쟁의 죄악시하는 사회분위기 변해야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

지난 2006년 파업으로 법원으로부터 10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법원이 노조 통장을 압류해 도저히 노조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무이자 채권을 발행·판매하고 조합원들의 조합비를 모아 100억원을 우선 상환한 적이 있다.

2009년에는 파업에 들어가려고 하자 코레일이 2006년 파업 때 청구한 손해배상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마치 매뉴얼처럼 파업을 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조합비를 압류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노조의 투쟁을 막고 있다.

노동쟁의를 업무방해로 처리하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없는 사례다.

노조에 대한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 문제가 부각됐을 때는 국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조금 지나면 또 유아무야 되는 상황이라서 안타깝다. 법·제도적 개혁을 포함해 노동쟁의 자체를 죄악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변해야 한다.

쟁의행위 정당성 폭을 더 넓혀야 한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헌법상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이 면제된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쟁의행위로 인정되는 범위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주류 판례에서 정리해고·기기 반출·해직자 복직 등을 사유로 한 쟁의행의에 대해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시 말하면, 이 경우는 다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쌍용차의 경우도 정리해고 반대 파업이었는데 엄청난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사용자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액 부풀리기도 문제다. 실제 재판에 들어가면 사측 주장과 결과의 차이가 크다. 사측이 손해 100억원을 끼쳤다고 주장해도 따져 보면 40억원으로 감액되는 식이 대부분이다. 무분별한 청구는 노조의 기를 죽이고 활동을 제약한다.

채권자 일방에 의한 가압류도 제도 개선을 통해 정리해야 한다. 가압류는 채권자가 낸 자료만으로 청구된다. 채무자의 소명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다. 이를 재판으로 풀려면 몇 년이 걸린다. 그동안 노조 활동은 묶이고 개인도 고통 받는다.

과도한 손배·가압류에 대해 법·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노동계에선 소극적 노무제공거부행위, 즉 파업 자체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해야 한다는 입법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파업이 있더라도 실제 폭력과 파괴행위 등으로 사측이 손해를 입었을 때만 업무방해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헌법정신 상실

▲ 은수미 민주당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가 사용자들에 의해서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 3권을 제약하고, 노조를 탄압하는 신종 기법으로 활용돼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화 된 것이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노동자들의 노동 3권 행사에 대한 사후적 제약으로 활용됐던 것이 이제는 사전에 노동 3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대등한 노사관계의 확보와 노사자치를 통한 공정한 노사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헌법상 노동 3권과 이에 관한 노동법의 원칙들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조 재산을 넘어서 개인 재산, 심지어 신원보증인의 재산에까지 미치는 광범위한 액수의 가압류와 손해배상은 생존권을 위협하며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초래하고 있다.

손배·가압류 청구의 요건과 범위를 강화하는 등의 법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이러한 취지의 개정안을 이미 제출했다. 올 정기국회 회기 중 반드시 통과돼야 할 법 개정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헌법정신이 상실된 어두운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속해서 목도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