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민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필

진부하지만 헌법을 언급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제32조3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제33조1항)

일반적으로 헌법으로 보장되는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칭하는데, 위에 소개한 헌법 조항에 근거한 권리는 기본권 중 노동기본권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 세월 이 땅에서는 노동기본권을 지키고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고 구금돼 가며 싸웠다.

도대체 노동기본권이 무엇이고 얼마나 대단하기에 수십 년간 수많은 희생을 통해 지키고 확대해 왔고 지금까지도 싸움이 끝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필자의 짧은 생각이지만 기본권이란 말 그대로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권리다. 그렇다면 노동기본권은 노동을 함에 있어 인간답게 노동할 수 있는 필수적인 권리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렵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 어떠한 이유로든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 부당한 고용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얻을 권리 등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한 권리가 바로 노동기본권이다.

그런데 2013년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지켜지고 있는가. 지난해 대선으로 기억을 돌려 보자. 대선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노동정책 공약을 비교해 보면 온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비정규직 보호·고용안정·정당한 노동의 대가 지불 등 노동기본권의 확대 강화라는 측면에서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이 땅의 노동기본권이 아직도 헌법이 보장하는 정신을 실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며 나아가 집권을 위해서는 미흡한 노동기본권에 대한 회복을 공약으로 제시해야만 한다는 두 당 선거전술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대선 당시 그리고 지금의 노동기본권은 어떤 상태일까. 시계를 이명박 정권 5년으로 다시 한 번 돌려 보자.

이명박 정권 5년간 굵직한 노동기본권 침해사례만 보더라도 23명의 목숨이 희생된 쌍용자동차 투쟁, 대법원 판결조차 이행하지 않아 시작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투쟁, 노조법 날치기 통과, 공무원노조·전교조 등에 대한 단결권 침해, 대통령의 노조에 대한 악의적인 폄하, 사용자·노동부·노무사가 합작한 노조파괴 시나리오 실행 등 하나하나가 큰 사회적 파장을 야기한 바 있다.

물론 2013년 현재의 노동기본권 상태를 두고 이명박 정권에서만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무리다. 소위 민주정부라고 불리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노동기본권은 꾸준하게 훼손돼 왔다. 그 점에서 두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차이점은 크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권은 노동기본권 회복과 확대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노동기본권과 관련한 일련의 행보를 살펴보자. 현 정권은 대통령 방미 기간 동안 미국 지엠의 통상임금 해결 요청에 적극적으로 화답했고, 마침내 이달 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예정돼 있다. 대선 전 약속했던 쌍용차 국정조사는 아직도 요원하며 대한문의 분향소는 철거됐다. 실무적 조율이 끝났다던 공무원노조 설립신고서는 또다시 반려됐다. 사용자·노동부·노무사가 연합해 노조파괴에 앞장섰던 기업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는 무혐의 처분을 받고 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박근혜 정권의 뿌리가 이명박 정권임을 상기해 본다면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노동기본권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내놓은 노동공약은 △고용안정과 정리해고 요건강화 △정년연장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 △사내하도급 노동자 보호 △최저임금 인상기준 마련과 노동자 기본생활 보장 등이다.

집권 이후 이 정권은 무엇을 했나. 노동기본권이 침해됐다고 인정한다면 이미 침해된 부분을 서둘러 수복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 이상 더욱 확대해야 한다.

“초록은 동색”이라거나 “정권이 이 모양이니까”라는 말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노동기본권은 정권의 성향이나 지향성을 이유로 침해해서는 안 되는 권리다.

노동기본권은 수십 년간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피로 획득한 권리다. 노동기본권의 침해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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