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오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대학에서는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졸업 후에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벌이는 시원치 않았고, 벼룩시장 광고에서 ‘방과후학교 영어강사 구합니다’라는 광고를 보고 어떤 업체를 찾았다. 업체는 이력서를 제출하라고 했고 수업 하듯이 말해 보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어디 학교로 가서 일하라는 거였다.

업체가 알려 준 학교로 가서 면접을 봤다. 학교는 채용을 결정했다. 그리고 어떤 계약서에 서명하라 했다. 대충 훑어본 걸로는 근로계약이 아니었다. 학교는 시설을 대여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니 시설사용료를 방학후학교 수업을 하는 사람이 내도록 돼 있었다. 4대 보험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하지만 매일 출근부를 써야 했다. 교육프로그램도 담당자에게 결재를 맡아야 했다. 같은 업체 소속의 어떤 동료는 면전에서 복장을 지적당했다. 학생들의 성적도 학교에 제출해야 했고, 학부모들의 전화 상담에도 응했다. 물론 이런 걸 해야 한다고 계약서에 적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 아닌가.

그런데 업체는 통장을 맡겨야 한다고 했다. 학교로부터 받은 수업의 대가를 받을 통장을 만들었고 그 통장과 비밀번호는 모두 업체에서 관리했다. 학교로부터 받은 돈은 업체의 알 수 없는 통장으로 전부 이체되고 알 수 없는 계산법에 의해 얼마만큼의 돈이 진짜 내 통장으로 옮겨 들어왔다. 물론 업체와 계약서를 쓴 것이 있다. 흔한 근로계약서가 아니었다. 독립적인 사업자임을 확인한다는 식의 절대 업체의 근로자가 아니라는 취지의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통장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몇 년 새 업체는 날로 번창하는 듯 보였다. 업체의 선이 닿는 학교들이 더욱 늘어났다는 소리를 동료들로부터 들었다. 그런데 진짜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금원은 날로 줄어들어 가는 것 같았다. 문득 생각하게 됐다. “이건 부당하지 않은가, 이건 착취 아닌가?”

그런데 마침 업체에 대한 수사가 개시됐다는 뉴스를 봤다. 기사에 따르면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라고 했다. 직업안정법에는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유료로 직업소개를 하면 처벌받도록 돼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몰랐던 내용이었지만, 정말 그랬다. 업체는 방과후학교의 강사가 되도록 구직자들을 도왔고, 그걸로 수수료를 떼어 갔다. 그런데도 등록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로 지금까지 착취당한 노동의 대가를 찾겠다고 당당히 업체의 사장에게 밝혔다. 그리고 수사기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해 줬다. 통쾌했다.

수사 결과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 어느 날, 업체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무혐의야. 우리 쓸데없는 일은 하지 말자.” 믿기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민사소송을 준비하던 변호사를 찾았다. 어찌 된 거냐고. 변호사는 어떻게 구했는지 검찰의 불기소 이유가 담긴 서류를 보여 줬다. 서류에는 큼지막하게 대충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직업안정법은 근로관계를 알선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근로자 아닌 프리랜서에게 직업안정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넌 말이야, 학교의 근로자가 아니다. 그러니 근로관계 아닌 관계에 업체가 알선을 했든 뭘 했든, 내가 알게 뭐람.”

꼭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연히 검찰의 공문서에 이렇게 적혀 있을 리가 없지만, 그렇게 또렷하게 보였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그래, 찝찝했다. 학교에선 “근무”라는 말을 썼고, “근무 중에는 학교장·교감 등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그때 녹음기를 들고 그 말하는 걸 녹음이라도 했어야 했다. 아니, 애초부터 계약서에다가 근로계약서라고 분명히 써 달라고 말했어야 했다. 다 내 잘못이다.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도대체 요즘 세상에 어느 놈이 근로계약서를 있는 그대로 써 준단 말이냐.
 

[참조 법조문]

직업안정법 제2조의2(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 각 호와 같다. 2. "직업소개"란 구인 또는 구직의 신청을 받아 구직자 또는 구인자(求人者)를 탐색하거나 구직자를 모집하여 구인자와 구직자 간에 고용계약이 성립되도록 알선하는 것을 말한다.

제19조(유료직업소개사업) ① 유료직업소개사업은 소개대상이 되는 근로자가 취업하려는 장소를 기준으로 하여 국내 유료직업소개사업과 국외 유료직업소개사업으로 구분하되, 국내 유료직업소개사업을 하려는 자는 주된 사업소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 및 구청장에게 등록하여야 하고, 국외 유료직업소개사업을 하려는 자는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등록하여야 한다.

제47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19조제1항에 따른 등록을 하지 아니하거나 제33조제1항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유료직업소개사업 또는 근로자공급사업을 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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