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철도의 미래를 위한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외슈타인 아슬락센(사진 오른쪽 ) ITF 철도분과 의장과 얀 루덴(왼쪽) SEKO 위원장이 지난 27일 오후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철도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연맹이 공동주최한 ‘한국철도의 미래를 위한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얀 루덴(Janne Ruden·62) 스웨덴서비스통신노조(SEKO) 위원장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코레일을 여러 개로 쪼개고, 수서발 KTX 자회사를 만들어 모회사인 코레일과 경쟁을 시킨다는 그림이 이해가 안 가는 듯했다. 한참을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철도는 놀이터가 아니다”며 “철도를 가지고 놀면 안 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외슈타인 아슬락센(Øystein Aslaksen·62) 국제운수노련(ITF) 철도분과 의장도 “철도여객수송은 필수공공서비스”라며 “민간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슬락센 의장은 “유럽 노동자들은 올해 초 발표된 유럽위원회의 ‘4차 철도종합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고 있다”며 한국 철도노동자들의 철도 민영화 반대투쟁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외슈타인 아슬락센 의장과 얀 루덴 위원장을 만났다.

-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유럽위원회)가 올해 1월 4차 철도종합정책을 발표했다. 단일 유럽철도권역 구축과 철도운영부문의 시장개방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유럽연합이 철도산업의 시장화와 경쟁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슬락센 : 4차 철도종합정책은 유럽에서 신자유주의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위원회는 철도종합정책의 도입 배경으로 ‘시장이 개방돼 있지 않아 경쟁을 막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수백억 유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여객운송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는 게 철도정책의 목표라고 명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곧 민간 투자자들이 이익을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대외적으로는 경쟁을 하면 요금이 저렴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결국은 민간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루덴 : 유럽연합의 철도정책은 유럽연합의 에너지 정책과 비슷하다. 유럽연합은 전력부문의 단일시장 구축을 목표로 경쟁체제를 도입해 전력 판매시장을 개방했다. 해당 정책에 따라 커다란 에너지 재벌회사들이 여럿 생겼는데, 결과적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전기요금이 폭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철도산업에서도 똑같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 유럽연합이 추진한 철도 경쟁체제는 효과적이었나.

아슬락센 : 천만의 말씀이다. 여객부문에서는 요금이 인상됐고, 기차표 구매는 더 복잡해졌다. 원하는 노선 회사에 가서 기차표를 사야 한다. 영국에서는 요금이 급등했다.

- 스웨덴은 88년 철도 상하분리를 시작으로 민영화 정책을 시행했는데.

루덴 : 스웨덴은 민영화의 문제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스웨덴은 우파 정부가 집권하면서 복지산업 분야에서 민영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됐다. 지난해부터는 철도산업이 전면 개방됐다. 그동안 수익성이 높은 장거리 구간은 국영철도여객회사(SJ)가 운영했는데, 이후 조금씩 민간에 개방됐다. 현재 스웨덴 승객수송 서비스는 완전히 개방돼 있다. 올 겨울에는 핵심 간선 구간에 3개의 민간회사들이 들어올 예정이다.

각 회사 간 비용절감 경쟁이 이뤄지다 보니 기관사 인건비가 하락하고, 철도 유지·보수 시간이 계속 짧아지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한 번이라도 더 운행해야 하기 때문에 철도 유지·보수 시간을 줄여 열차를 운행하는 것이다.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요금 문제도 있다. 3~4개월 전에 열차표를 사면 가격이 괜찮지만, 만약 하루 전에 기차표를 구입하려고 하면 400~500% 가량 비싸진다. 승객들은 서로 다른 운영회사의 서로 다른 차표를 구입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야 하고, 열차 지연이나 취소가 됐을 때도 제대로 된 정보를 듣지 못하고 있다.

- 한국 정부가 발표한 철도산업 발전방안은 코레일을 철도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그 아래 여객운송 자회사를 만들어 수서발 KTX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자회사와 모회사를 경쟁시킨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정부는 이 같은 정책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아슬락센 : 한국은 정말 특수한 상황인 것 같다. 한국 정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철도정책은 강제적인 경쟁이다. 당장은 민간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민영화를 위한 준비단계다. 자회사와 모회사가 경쟁하는 구조는 다른 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다.

루덴 : 한국의 철도정책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다. 왜 잘 돌아가고 있는 회사를 쪼개서 경쟁을 시키는 건가. 미친 짓이다. 스웨덴에도 경쟁은 있지만 경쟁상대가 완전히 다른 회사다. 철도는 놀이터가 아니다. 놀고 싶으면 다른 곳에서 놀아야 한다. 철도를 가지고 놀면 안 된다.

- 한국 정부는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수립하면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유럽은 어떤가.

루덴 : 유럽연합에서는 정책제안이 나오면 여러 논의 과정을 거쳐 확정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 절차가 있다. 정부·유럽위원회와 각 사용자단체, 노조가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다. 부문별로 사회적 대화가 진행된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사회적 대화 절차가 있다. 이 과정에 유럽노총이 참여해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아슬락센 : 형식적인 협의 절차 외에도 개별 의원을 로비하는 활동을 많이 한다. 현재 유럽위원회는 보수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로비가 쉽지 않다.

- 한국 철도산업 발전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아슬락센 : 10년 전 한국에 고속철도가 도입되면서 철도산업이 크게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철도산업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노동자·철도 이용자 간 논의와 협의를 할 수 있는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 정부는 철도에 대한 투자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투입비용은 크지만 그만큼 시민과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제운수노련(ITF)을 대표해서 한국 철도노동자들의 민영화 저지투쟁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한국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은 전 세계적인 투쟁이다. 전 세계가 (한국과)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4차 철도종합정책을 반대하는 유럽 노동자들의 투쟁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민영화 저지투쟁을 계속 지켜보면서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할 것이다. 철도여객수송은 필수공공서비스다. 민간에 맡겨서는 안 된다.

루덴 : 철도는 국가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넓게 보면 철도운영은 민주주의에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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