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가 쟁의행위에 돌입하자마자 사용자단체들과 주류언론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비슷한 내용으로 금속노조를 비난하고 나섰다. 생산성 문제와 해외공장 이전 문제가 이들이 공통적으로 드는 근거다.

생산성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 비판한 바 있으니 이번엔 해외공장 문제에 대해서 다뤄 보려고 한다. 수십 년간 써 온 ‘귀족노동자’나 ‘고임금 저생산’ 이야기가 지겨워졌는지 보수언론과 사용자단체들은 올 들어 “파업 때문에 해외로 공장이 나간다”는 이야기를 부쩍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엑소더스(대탈출)라는 표현까지 해 대며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노조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전경련이나 주류언론들은 노조 때문에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사례를 들지는 못한다. 예를 들면 연합뉴스 산업팀은 지난 25일자 기사에서 강성노조와 현대차 파업을 한껏 비판한 다음에 해외공장 증설 사례로 포스코강판·동국제강·한국타이어를 들었다. 그런데 두 철강회사는 10년 넘게 임금교섭을 회사에 위임하고 있는 회사노조(company union)다. 한국타이어 역시 숱한 산재 사망사고에도 회사와 큰 분쟁 한 번 없는 노조다. 한심하게도 강성노조 탓에 공장이 해외로 이전한다고 주장해 놓고 가장 친회사적 노조가 있는 사업장들을 사례로 가져다 쓴 것이다. 만약 연합뉴스 산업팀이 쓴 기사의 사례를 가지고 해외공장 관련 주장을 한다면, 친회사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해외공장 증설에 더 힘을 쏟는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노조가 해외공장 확대의 주된 이유가 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70년대부터 국내 공장의 30% 이상을 폐쇄하고 해외공장 증설에 매진한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노조 때문에 해외로 나간 것은 아니었다. 아예 국내 생산공장 전체를 없애 버리고 해외 위탁생산 체계를 갖춘 애플이나 IBM 같은 미국 IT기업에는 노조가 있어 본 적이 없다. 한국 제조업 기업 중 해외생산 비중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노조가 한 번도 없었다. 마거릿 대처가 노조를 탄압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을 때, 영국 기업들이 한 일은 국내에서 생산을 늘려 고용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해외공장을 늘리고, 기업을 해외에 분리매각하고, 제조업을 금융업으로 업종 변경하는 것이었다.

전경련이나 보수언론들이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기업들을 국내에 묶어 두는 것이 아니다. 사실 역사적으로나,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전경련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기 좋은 환경' 아니었나.

사용자단체나 보수언론의 주장과 반대로 자주적인 노조가 많아야 오히려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하고 고용을 유지한다. 기업들이 국내에서 적절한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내수가 존재해야 한다. 내수의 기본은 소득증가다. 다수 시민들의 건강한 소득증가는 임금인상을 통해 이뤄진다. 노조 조직률과 임금 수준은 세계 어느 곳을 봐도 비례관계에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업생태계'라고도 불리는 산업구조 차원에서 강한 노조가 많아야 국내 생산과 고용에 유리하다. 기업들의 공장 이전은 기업 하나가 덜렁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자재·부품부터 물류·판매까지 이어지는 공급사슬이 해외에도 존재해야 한다. 대기업이 해외로 나갈 때 국내 중견·중소 부품사들이 함께 해외에 공장을 짓는 이유다. 산업 내에 여러 노조가 공장 해외이전을 견제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업들이 함부로 국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지 못하게 하는 큰 힘이다.

세계적으로 자동차산업과 비교해 전자산업에서 극단적으로 해외생산이 확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노조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은 20세기 초부터 산업노조가 각국에서 발달했지만, 노동운동 쇠퇴기인 70년대 이후 급성장한 전자산업에는 시작부터 노조가 매우 약했다.

한국 기업들의 가장 좋은 핑계는 언제나 노조였다. 심지어 노조가 없는 회사의 경영진도 노조 탓을 이러쿵저러쿵 해 댈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노동현장에서 경험하고 시민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것은 강한 노조가 아니라 약한 노조가 문제라는 사실이다. 노조가 많아서가 아니라 노조가 너무 적어서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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