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한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서울본부)

#1. 고용노동부의 상반기 근로감독 결과 감독 대상 사업장 314곳 중 272곳(86.6%)에서 근로기준법 제53조 연장근로 한도(주 12시간)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운동의 가장 오래된 요구가 아니었나. 하루 8시간만 일해도 생활임금을 벌 수 있는 세상. 그러나 현실은 이 모양이다. 감독 대상 사업장 86.8%가 주 52시간을 넘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니, 주 40시간제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필자는 미조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법 교육에서 연장노동은 근기법 제53조에 따라 반드시 노동자의 동의가 있어야 시행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회사에서 갑자기 ‘김 대리, 오늘 남아서 야근 좀 해야겠어’라고 하면 ‘싫은데요’ 하고 집에 가셔도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예외 없이 실소가 터진다. 그리고는 ‘저 세상 물정도 모르는 민주노총 노무사’란 표정으로 필자를 바라본다. 우리 사회 미조직 노동자 대부분은 야근을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성실성을 증명하는 절대지표로 여긴다. 야근이 많아 힘들면 회사를 옮길지언정 이의제기를 할 줄 모른다.

#2. 근기법 제54조는 노동시간이 8시간 이상인 경우 도중에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본래 취지는 장시간 노동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휴게시간 규정이 임금삭감을 위해 악용된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예를 들어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하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만약 저녁 7시까지 연장노동을 시키면 마지막 1시간에 대해서는 연장수당을 줘야 한다. 이걸 안 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간단하다. 앞으로 우리 회사는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가 휴게시간이라고 적은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게 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되면 마지막 1시간도 1일 8시간의 한도에 포함되기 때문에 수당 지급의무가 없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더 심각하다. 매년 최저임금은 오르는데 임금 총액은 그대로다. 해마다 휴게시간을 조금씩 늘려 왔기 때문이다. 어떤 노동자는 회사에 머물며 일하는 시간은 9시간인데 근로계약서에 기재된 휴게시간이 4.5시간이나 된다.

휴게시간이 무급으로 처리되니 이렇게 장난을 치는 건데, 문제는 휴게시간이 진짜 휴게시간이 아니라 일을 하는 시간이라는 거다. 법으로는 간단하다. 휴게시간에 일을 했다는 걸 입증해서 추가 수당 지급을 요구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간단하지 않다. 휴게시간에 일을 했다는 걸 주장하고 입증할 배포(?)를 가진 미조직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3. 정권 초부터 대체휴일제 도입으로 말이 많더니 결국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설·추석 연휴를 포함시키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듯하다. 안전행정부 담당자는 “민간부문도 근기법에 따라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서 해당 규정을 준용하기 때문에 공공부문과 마찬가지로 대체휴일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거 웬 순진무구한 소리인가. 조직 노동자들이나 일부 대기업에서는 그렇게 되겠지만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이른바 법정공휴일은 근기법상 휴일이 아니다. 휴일이 아니니 근로일이 될 수 있고, 근기법 제62조에 따라 법정공휴일 모두를 노동자의 연차휴가일로 사전에 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노무관리 좀 한다는 업체는 죄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것 역시 업계(?)에선 모두 아는 얘기 아닌가. 법에서는 미조직 사업장의 경우 근로자대표가 서면합의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실효성이 떨어지는 요건이다 보니 노동자들이 연차 지정에 제대로 관여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남들 다 쉴 때 나도 쉬었을 뿐인데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은 연차휴가도 쓸 수 없다.

#4. 연장근로·휴게시간·연차휴가…. 머리 좋고 여유 많은 회사가 밤낮 연구해 근기법을 위반하고 악용하는 사례는 이 밖에도 부지기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노동법 어떤 책을 펼쳐 봐도 근기법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실제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근기법조처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방법은 넷 중 하나다.

첫째, 참고 다닌다. 둘째, 때려치운다. 둘 다 대안이 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셋째, 돈키호테처럼 회사와 법으로 붙어 본다. 왕따 되기 십상이다. 결국 유일한 대안은 노동 3권이다. 본질적으로 회사에 대해 약자인 노동자가 근기법만이라도 제대로 보장받자면 노조로 단결하는 수밖에 없다.

대체 노동 3권 없이 노동법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액정 깨진 스마트폰과 진배없다. 제아무리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이 깔려 있어도 작동조차 불가능한 스마트폰일 뿐이다. 제도개선? 작동을 할 수 없는데 애플리케이션만 새로 깔면 뭐 하나, 액정을 고쳐야지.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않는다면 노동현실 개선은 영원히 먼 나라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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