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발전재단

잦은 초과근로나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일하게 하는 것은 ‘정신적 학대’일까. 최근 삼성전자 브라질 현지법인이 1억달러 규모의 피해보상 청구소송에 휘말린 것을 두고 정신적 학대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 삼성전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정신적 학대에 해당한다는 게 브라질 노동검찰의 기소 이유이기 때문이다.

과거 브라질 노동검찰은 외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과정에서 조직을 불법적으로 이용했다는 이유로 포드자동차에 1억7천달러 규모의 벌금형을 구형하고, 토양을 오염시켰다며 4억6천달러의 벌금형으로 기소해 승소를 이끌기도 했다.

노사발전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헤나토 엔히 상트아나(Renato Henry Sant’Anna) 상파울루주 제1노동법원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오후 노사발전재단에서 열린‘한-브라질 국제포럼’에서 정신적 학대를 이렇게 정의했다.

“(정신적 학대는) 수직 또는 수평적 관계에서 고용인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이뤄진 괴롭힘으로 정신적인 상태가 영향을 받는 경우를 말하며, 대개 이를 유발하는 고용인의 반복되는 습관이나 행동을 의미한다.”

상트아나 부장판사의 정의는 2004년부터 브라질법원의 일관된 판례 경향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그는 "노동자들이 모욕이나 난처한 상황에 처하거나, 또는 업무를 수행 중이거나 일과시간 중에 지속 및 반복적으로 상황에 노출되는 경우도 정신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상트아나(사진 가운데) 부장판사와 박인상(사진 맨 오른쪽) 노사발전재단 이사장의 대화에서도 초과근로시간과 정신적 학대의 연관성이 화제가 됐다. 상트아나 부장판사는 "특정 기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문제가 된 초과근로는 초과근로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에 관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상트아나 부장판사와 박 이사장이 21일 오전 서울 공덕동 재단 사무실에서 나눈 대담을 지면에 소개한다.

박인상 : 브라질에 한국기업이 많이 나가 있다. 한국기업들이 환경이나 노동법 내용을 인식하지 못해 법원에 제소됐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나.

상트아나 :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기업들은 외국기업처럼 굉장히 큰 법무법인에서 조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기업은 50~60년 전에 브라질에 진출했다. 한국은 5년 미만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도 꽤 큰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10년 정도면 완벽하게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인상 : 노동강도가 세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트아나 : 브라질 노동법상 하루 초과근무는 2시간까지 가능하다. 특수한 경우에만 2시간에 추가로 2시간을 허용해 4시간까지 가능하다. 기계결함이나 고장 등 문제가 있을 때만 특수한 경우로 인정한다. 브라질 기업도 다반사로 2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버타임을 일상화할 경우다. 2시간 넘게 매일 일하면 문제가 된다.

박인상 : 매일 2시간씩 상습적으로 초과근로를 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나.

상트아나 : 그렇다.

박인상 : 법에서 허용한 2시간 테두리에서 했는데 매일 계속했다고 제재대상이 되면 이율배반적이지 않나.

상트아나 : 보통 2시간 초과근무가 문제가 아니라 상습적으로 2시간 넘게 일을 시키는 게 문제다. 초과근무라는 것이 평범하지 않은 시간이라는 뜻이다. 브라질 사법부와 노동검찰이 걱정하는 것은 초과근무가 아니라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이다. 전 세계적으로 근무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질병을 얻고, 산업재해를 당한다면 안타까울 것 같다.

박인상 : 한국기업들이 브라질에서 사업을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상트아나 : 브라질 법률에 대해 자문을 받는 것이 좋다. 브라질은 사업하기 어려운 국가가 아니다. 한국기업도 자신들의 이미지를 제고하면 좋겠다. 한국제품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이탈리아 기업처럼 경쟁력을 높이려면 사회적 책임을 다해 이미지를 제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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