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변호사
(법무법인 지향)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3구합1393 명예회복신청 기각결정 취소

1. 사건의 경과

원고들은 1978년 4월과 1979년 5월 당시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주식회사 남화전자에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해 1980년1월 결성한 전국연합노조 서울지역본부 남화전자분회(남화전자노조)의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2000년 1월12일 법률 제6천123호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보상법)이 제정되고, 원고들은 2007년 11월24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피고)에 자신들이 민주화운동보상법에서 정한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해직된 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명예회복신청을 했다.

그런데 피고는 2012년 6월18일 “남화전자는 경영악화로 부도가 발생해 사장이 구속됨에 따라 폐업에 이르게 됐다”면서 “원고들은 그 때문에 퇴사했을 뿐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해직됐다고 볼 수 없다”며 이를 모두 기각했다. 원고들은 곧바로 재심의 신청을 했으나 역시 기각됐다. 원고들은 피고의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기각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1980년대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고 노동자의 인격권과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남화전자노조를 결성해 활동하다가 노조의 활동을 탄압하고 와해할 의도로 투입된 공권력에 의해 남화전자가 강제로 폐업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해직됐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민주화운동보상법 제2조 제2호 라목에서 정한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해직된 자’에 해당하고, 피고가 남화전자노조의 위원장으로서 원고들과 함께 노조활동을 하다가 해고된 ○○○에 대해서는 민주화운동관련자로 결정했음에도 원고들의 명예회복신청을 기각한 이 사건 처분은 형평에도 어긋나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는 해직의 경우 민주화운동과의 단순한 관련성 또는 인과관계만 있으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이 직접적인 해직사유로 인정돼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따라서 남화전자는 경영난 악화를 가장 중요한 이유로 폐업에 이르게 된 것이므로 원고들의 해직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2. 판결의 주요내용

법원은 우선 원고들의 해직경위와 관련해 ① 남화전자의 당시 경영상태 ② 남화전자노조의 결성과 원고들의 활동 ③ 신군부의 노동계 정화조치 ④ 남화전자노조 위원장 ○○○의 해고 경위 ⑤ 남화전자의 부도 ⑥ 남화전자의 회생 노력 ⑦ 정부의 도시산업선교회(도산)계열 노조 제거를 위한 폐업으로의 방침 변경 ⑧ 폐업 후 경과와 블랙리스트 관리 사실을 차례로 확인했다.

또한 법원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정리위)가 남화전자노조 위원장 ○○○의 신청을 받아들여 7개 유사 사건과 병합해 ‘청계천 피복 노조 등에 대한 노동기본권 등 인권침해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조사한 끝에 2010년 6월30일 남화전자노조 사건을 부당한 공권력 개입에 의한 노조의 와해 사례로 폐업 및 부도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라고 규정한 진실규명 결정을 들었다. ○○○가 원고들과 마찬가지로 피고에게 명예회복신청을 했는데 피고는 원고들에 대한 처분과는 달리 2006년 9월4월 ○○○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한 사실도 확인했다.

법원은 이 같은 인정 사실과 더불어 민주화운동보상법 제2조 제2호 라목에서 규정한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해직된 자’의 의미에 관해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해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킬 동기 내지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치·사회·문화운동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그 구체적인 행위 형태는 작위, 부작위를 막론한다) 참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해직된 자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자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그 민주화운동이 그 자체로 해직의 이유가 됐거나 해직의 이유로 된 사실에 대한 동기 내지 그 행위유발의 적극적 동인(動因)으로서 작용했음이 객관적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법리(대법원 2007.5.11 선고 2006두20228 판결 참조)를 토대로 판단해야 함을 전제했다.

결국 원고들의 해직 이유, 적극적 동인이 무엇이었는지가 쟁점이 된 본 사안에서 법원은 ① 원고들이 도산계열의 ○○○가 결성한 남화전자노조에 가입해 단체행동을 했고, ○○○가 해고된 이후에는 남화전자노조의 핵심 간부로 활동하면서 남화전자의 회생을 위해 노력하고 공권력에 의한 남화전자의 강제폐업에 반대하는 농성 등을 주도한 점 ② 남화전자가 결국 부도상황에 이르렀으나, 당시 노사가 협력해 남화전자의 회생을 위해 노력했으며, 노동부를 비롯한 관계기관 역시 남화전자를 정상화시키는 방향으로 합의한 상황이었으므로, 노·사·정의 노력이 현실화됐더라면 남화전자가 정상화되거나 적어도 곧바로 폐업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 ③ 그럼에도 정부는 도산계열의 남화전자노조를 해산시키기 위해 조직적·체계적으로 남화전자노조의 활동을 탄압하고 종국적으로는 남화전자노조를 해산시킨 점 ④ 원고들은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남화전자를 사직할 수밖에 없었던 점 ⑤ 그 후 정부는 도산계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원고들을 비롯한 남화전자노조 조합원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그들의 동향을 살피면서 정상적인 취업까지 방해한 점 ⑥ 여기에 과거사정리위가 남화전자노조 사건을 부당한 공권력 개입에 의한 노동조합의 와해 사례로 폐업 및 부도 과정에서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진실규명 결정을 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남화전자의 폐업이 경영상의 어려움보다는 원고들의 노조활동을 막으려는 방편으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으므로 원고들의 해직을 민주화운동으로 판단하고,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뤄진 피고의 각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3. 쟁점 및 판결의 의의

원고들은 (회사로부터 직접 해고된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회사가 폐업되면서 해직된 경우로, 이 사건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여부에 있어서 원고들의 항거행위와 회사 폐업 경위에 공권력이 개입한 사실 사이의 관련성이 핵심 쟁점이었다. 그런데 이미 과거사정리위 조사결과, 국가 공권력이 도산계열 노조 제거 차원에서 남화전자를 강제폐업하도록 적극 개입한 사실은 확인됐다. 피고도 이러한 과거사정리위 조사결과를 토대로 당초 심사 단계에서는 원고들의 항거행위와 민주화운동관련성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피고는 남화전자의 경영난 악화로 인해 폐업에 이르게 된 것이므로 원고들의 해직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피고가 원고들에 대한 심사 내용과 정반대의 결론으로 결정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피고가 회사의 경영난 악화라는 명목상의 폐업 원인만을 주목한 나머지 원고들의 실질적인 해직사유를 간과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피고의 이러한 판단은, 피고가 이미 원고들과 함께 노조활동을 전개했던 남화전자노조 위원장 ○○○에 대한 심사에서는 실질적인 해직사유를 중요하게 다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한 선례와 비교해도 그 부당함을 알 수 있다.

법원도 “원고들의 해직이 사용자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남화전자의 폐업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의 해직 경위에 비춰 보면 남화전자의 폐업이 경영상의 어려움보다는 원고들의 노조활동을 막으려는 방편으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고 판시해 이러한 피고 처분의 위법성을 적절히 지적했다. 법원은 법이 정한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해직된 자’의 해석 법리에 따라 “원고들의 해직 이유에 대한 동기 내지 그 행위유발의 적극적 동인으로서 작용했음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에 주목해 판단한 것이다.

법원의 지극히 상식에 부합하는 이 사건 판결로, 원고들은 회사 폐업으로 직장을 잃은 후 32년 만에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다만 안타깝게도 피고는 이 사건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해 그 결과가 확정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처음으로 민주노조를 결성해 구로지역 뿐만 아니라 인천·경기 지역 노동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남화전자노조. 그 험난했던 결성에서부터 폐업으로 와해되기까지 원고들이 겪은 고통과 그 후로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한참을 흘린 눈물이 법원의 판결로 조금이나마 위로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