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일하고 싶었습니다.”

19일 해고된 지 1년4개월 만에 원직에 복직하는 김은석(42·사진) 전 사무연대노조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지부장의 소감은 여느 해고자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입사 뒤 매출을 매년 3배씩 늘리며 2007년 우수사원 표창까지 받았던 그가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한 그 회사로 돌아가면서 한 얘기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사무금융연맹 사무실에서 김 전 지부장을 만났다.

2010년 8월 처음 노조를 만들었을 때 지부 조합원 중 누구도 이런 상황에 처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독일에서도 ‘일하고 싶은 기업’을 조사하면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복지혜택이 훌륭하고, 노사관계도 좋은 기업이니 한국에서 노조를 만드는 게 큰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게다가 국내에서 모회사 역할을 하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설립 4반세기에 달하는 한국노총 소속의 노조가 존재하고 있었다.

30명의 직원 중에 조직대상인 21명 모두 노조에 가입한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노조를 만들면서 내건 요구도 매출액 증가세를 감안했을 때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세일즈와 마케팅만 달리할 뿐 사실상 같은 회사인 베링거인겔하임과의 임금격차를 없애고, 직원 복지 같은 부대적인 혜택을 맞춰 달라는 내용이 다였다.

그러나 회사는 노조가 생기자 돌변했다. 관리자들은 직원들을 옥죄기 시작했다. 근무시간을 통제하고 엄격한 룰을 정해 영업사원들을 곤란하게 했다.

이를테면 수십년 거래하던 거래처가 수금을 2~3일 미룬다고 하면 공급하는 약품을 끊도록 했다. 전에는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거래방식이었다. 거래처 사장은 ‘열’ 받고, 직원들은 난감해했다.

직원들은 1년도 안 돼 하나둘 노조를 탈퇴했다. 탈퇴는 2011년 4월부터 6월에 집중됐다. 사측이 100번 넘는 교섭요청에도 무성의하게 대응하자 지부가 파업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21명 중 7명이 남았다. 게다가 남은 조합원 중 3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뒤에 드러났지만 회사는 은밀히 조합원들을 만나 “노조를 탈퇴하면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종용했다.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다.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녹취파일까지 나왔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을 통해 회사 경영진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남은 조합원이 지부장을 포함해 4명으로 줄자 감시가 집중됐다. 회사는 툭하면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김 전 지부장은 2011년 1월과 6월, 11월에 정직처분을 받았다. 회사는 지시거부·근무태만·부적절한 업무수행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노동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8월, 중앙노동위원회는 그해 11월 김 전 지부장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부당해고에 부당노동행위까지 회사의 처분은 모두 위법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무단협과 해고상태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김 전 지부장은 본사 복도에서 연좌농성을 하고, 중식집회도 계속했다.

물꼬는 의외의 상황에서 터졌다. 경영진 교체가 그것이다.

“노조를 깔보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강경한 경영진이 지난해 말 갑자기 바뀌었어요. 사장은 헝가리로 인사가 났는데 좌천이 분명합니다. 한국에서 잘나가는 사람이 동유럽으로 갈 이유가 없거든요. 강경하던 한국인 부사장도 영업 쪽으로 갔습니다. 제가 잘 싸워서 해결된 게 아닌 거죠. 그렇지만 회사측의 행위가 위법으로 판명된 것이 경영진 교체에 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사 윤리강령에는 진출한 국가의 국내법을 준수하도록 돼 있으니까요.”

실제로 김 전 지부장은 올해 4월 해고 1년 즈음에 집회를 준비하면서 교섭을 요청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독일 본사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려는 계획도 세웠다. 다행히 새 경영진이 교섭을 수용하고 임원진이 교섭에 참여하면서 논의가 급속도로 진전됐다.

결국 이달 14일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단협은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수준에 맞춰졌다. 김 전 지부장의 원직복직과 해고기간 임금을 지급하고 해고기간에 받을 수 있었던 혜택을 금전으로 보상한다는 합의도 이뤄졌다. 지부는 민형사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회사는 노조를 사업 파트너로 인정해야 합니다. 노조가 적은 아니잖아요. 이번 사태 해결로 다른 투쟁하는 동지들이 기쁨과 희열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입니다. 적극적으로 연대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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