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지엠의 한국 철수설이 다시 뉴스에 올랐다. 1년 새 벌써 세 번째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1일 기사에서 지엠이 인건비 증가와 금속노조의 파업 위협으로 한국 공장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차세대 크루즈의 군산공장 생산 취소를 둘러싸고 한국 철수설이 나왔고, 올해 초에는 애커슨 회장이 한반도 안보 위협을 들어 임직원 철수 시나리오가 있다는 인터뷰를 해 지엠의 한국 철수설이 외신을 탔다.

조그만 공장도 아니고, 80만대의 완성차와 120만대의 반조립차(CKD)를 생산하는 공장에 대해 이렇게 집요하게 철수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고, 지엠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한국지엠에 관해 뭔가 중대한 결정이 이뤄진 것인가.

이번 로이터통신 기사부터 살펴보자. 아시아 자동차 시장 관련 기사를 주로 쓰는 일본인 노리히코 시로주 기자와 한국 기업 관련 기사를 주로 쓰는 진현주 기자가 쓴 이번 기사에 새로운 팩트는 하나도 없다. 신차 관련 계획이 변경됐다든지, 지엠 주요 임원이 인터뷰를 했다든지, 노사가 임금교섭 타결에 실패했다든지 하는 기사를 쓰기 위한 계기가 없다는 것이다. 단계적 철수와 관련된 내용을 인터뷰한 사람도 지엠 내부결정에 은밀하게 관여(privy)하고 있다는 사람들로서 실체를 알 수 없다. 두 기자의 활동범위상 디트로이트 관계자는 아닐 것이다. 여기에 노조 관계자 인터뷰는 이번이 아니라 수개월 전에 한 것을 짜깁기한 것이다.

이 기사는 이런 점에서 ‘내용’보다도 보도 ‘시점’에 큰 의미를 둔 것으로 보인다. 기사가 나간 지난주부터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사실상 임원선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지엠이 한국공장을 유지하려면 조합원들이 고분고분한 노조를 선택하고 (통상임금 소송을 포함한) 임금성 요구를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히는 기사가 노조 임원선거 시점에 맞춰 나온 것이다. 굳이 특별한 계기가 없이 이런 기사가 나온다면 보통은 임금교섭 시기나 중요한 노사분쟁이 있을 때인데, 이번 기사는 임금교섭도 끝나고 새로운 노사분쟁도 없는 가운데 느닷없이 나온 것이다. 노조 임원선거가 아니면 이 기사의 보도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조합원들에게 회사에 친화적인 집행부를 선출하라는 압박성 기사로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지엠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세대 크루즈 생산 취소부터 최근 차세대 아베오 생산 취소까지,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어떤 차를 생산하겠다는 것인지 매우 불투명하다. 한국지엠은 ‘GMK20XX’라는 계획을 발표하고, 본사는 한국에 5년간 8조원 투자를 약속했지만 계획과 투자약속 모두 구체성이 떨어져 신뢰하기 힘들다. 지엠에 매각된 이후 2009년까지 쉐보레 브랜드의 중소형차를 세계에서 거의 독점 생산하다시피 했던 한국지엠은 이제 지엠 본사가 세계시장 변화에 맞춰 중소형차를 전략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병행 생산하기로 한 만큼 다른 공장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됐다. 근 100년간 세계 곳곳에서 차를 생산하며 각국 정부, 노조와 ‘밀당’을 해 온 지엠인 만큼 이제 한국지엠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들을 본격적으로 벌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지엠이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당장 공장 철수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니다. 차세대 크루즈 생산이 취소됐다지만, 실제 상황을 보면 차세대 크루즈 한국 생산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전체 생산이 보류 상태가 됐다고 봐야 한다. 새로운 글로벌 플랫폼 위에서 생산되는 차세대 크루즈는 여러 문제점이 발견돼 1년 이상 출시가 연기된 상태다. 차세대 아베오 역시 글로벌 소형 차종으로 밀지, 아니면 일부 국가에서만 판매를 할 지 정확하게 판단이 안 된 상태로 보인다. 한국에서 생산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차종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지엠은 이런 전략 변화 시기, 즉 신차 공백기에 한국 금속노조에 대해 많은 양보를 얻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한국지엠은 1만5천여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고, 16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200여 개 한국 부품사와 거래를 하고 있다. 인천·군산·창원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크다. 이런 기업이 허구한 날 철수 협박에 시달린다는 것은 국민경제 차원에서도 큰 위협이다. 정부는 애커슨 지엠 회장의 통상임금 소송 청원에 굽실굽실할 것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와 시민들의 편에서 단호하게 한국지엠의 미래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대응할 것임을 밝혀야 한다. 또한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이런 때일수록 우왕좌왕 할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노조를 강화할 고민을 진척시켜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