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영
공인노무사
(노동건강연대)

미친 듯이 덥다. 계속되는 폭염 속에 뇌가 녹아내릴 즈음, 전화 한 통 받았다. 제주 여미지식물원. 제주도 관광 가면 반드시 들르게 되는 대표 관광지. 상상만 해도 시원한 바다가 연상되는 제주의 식물원에서 왜?

일터의 온도가 섭씨 45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 안에서 온종일 일하는 사람은 오죽할까. 이 살인적 환경을 개선할 수 없을까 하는 내용이다. 살려 달라는 애원이다. 지침과 법을 검토하고 노동부에 전화를 걸었던 노무사와 여미지식물원노조는 각각 담당자가 출장 중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식물원측에선 답이 없다고도 했다. 나중에 노동부가 식물원에 전화를 넣었다고 들었다. 노동부는 ‘쿨’하게 전화 한 통으로 마무리한다. 시급한 사안이라는 것은 노동자의 입장일 뿐인가. 이 식물원엔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그나마 노조가 있으니 이런 전화라도 오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작년 이맘 때였던가, 한 신문사에서 고온의 용광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그 곳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고, 체감온도는 아마 섭씨 50도쯤 된다고 한다. 너무 고된 일이라 젊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지만, 물량이 밀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런데 올해 그와 같은 내용의 기사를 다시 보게 됐고, 심지어 라디오에도 현장의 소리라면서 방송됐다.

화가 났다. 물량이 밀려 못 쉬는 상황이라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전날 건설현장 노동자와 농촌 노동자가 폭염에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선 엔진이 과열되고 타이어가 터져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데, 기온을 보니 남의 일이 아니다. 아니, 이미 한국에서도 엔진과열로 폭발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유 없이 자동차 유리가 깨졌다는데 폭염을 의심하는 뉴스도 있었다. 노동현장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정도 심각성이면 작업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부가 마땅히 대책을 내놔야 한다. 물론 노동부에서 내놓은 것이 있다. 폭염대비 사업장 행동요령. 적절한 휴식을 취하고, 소금이나 음료수를 구비할 것. 또 폭염특보가 발령될 경우 오후 2~5시 쉬게 하는 ‘무더위 휴식 시간제’도 운영한단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지침은 강제성이 없고, 노동부 공무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인형 탈을 쓰고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들, 공사기간에 쫓기는 건설노동자들,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숯불갈비 집에서 숯을 나르는 노동자 등 폭염 속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많을까. 당장 사업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회사에게 적절한 휴식시간 ‘제안’은 의미가 있을까.

건설업에 종사하는 친구를 만났다. 대기업 건설사에 다니는 그에게 노동부 권고사항을 물었다. 전혀 모른다. 그게 강제사항이냐고 오히려 묻는다. 그러면 좀 어찌해 볼 수 있지 않겠냐고. 적절한 휴식을 취하냐고 물으니 노력은 하는데 정해진 공사 기일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 역시 폭염에 안전벨트도 안전모도 참아낼 방법이 없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단다. 한마디로 무더위에 건설현장은 속수무책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나조차도 산업안전보건법이나 노동부 지침을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노동부 공무원이 총출동해서 전국의 사업장 안전점검을 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에서 안전을 위해 가능한 조치는 정말 이렇게도 없구나.

언젠가 대기업의 산재사망을 고발할 때 만난 한 근로감독관은 “그나마 사고가 나야 우리가 들여다 볼 수라도 있지, 아니면 불가능하다”며 “감독관이 얼마나 부족한데”라고 하소연을 했다. 일찌감치 일상적인 안전관리 업무조차 버거운 분들이 아니던가.

안전보건은 비용이다. 회사에서는 그 비용을 줄이려고 애쓴다. 더구나 줄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계는 늘 노동부가 안전을 강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고 한다. 사실 노동부도 알고 있다. 그럼 폭염 등의 자연현상에 대해선 어떨까. 아무리 사업이 중요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할 수 없다. 정말 폭염에 속수무책 쓰러져 가는 노동자들에게 국가에서는 해 줄 것이 없는 건가.

무엇보다 관련법을 강제사항으로 시급히 정비하고 회사가 아닌 노동자를 위해 정책을 만드는 노동부가 돼 주길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