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쟁의기간 무노동무임금 판결이 잘못됐다. 임금은 현실적 근로제공에 따른 교환적 부분과 근로자 지위에 따른 생활보장적 부분으로 나뉜다는 임금이분설을 폐기한 판결, 모든 임금은 근로제공에 대한 대가라며 쟁의기간 중 무노동에 따라 지급받지 못하게 되는 임금은 모든 임금이라고 한 대법원의 판결, 1995년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1995.12.21 94다26721 전원합의체 판결)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따라 199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변경해서 임금이분설로 돌아간다면 앞으로 이 나라 노동자는 파업하더라도 적어도 생활보장적 부분의 임금은 지급받을 수가 있게 된다. 노조가 주장해 왔던 거다. 바로 이 주장을 노동자를 대리한다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하고 있다. 조경배 교수 등 노동자편이라는 노동법 학자 논문까지 참고자료로 인용해서 주장하고 있다. 공개변론이 열리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서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에서 김앤장 변호사들은 이렇게 쓰고 있다.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을 앞두고 이전에 자신이 어떤 주장을 했건 관계없이 승리를 위해 달려가고 있다. 논리는 승리를 위해서만 바쳐져야 하고, 그 반대는 아니라고, 누가 누구를 위해서 주장했건, 사건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주장의 근거로 인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통상임금 변론전쟁이 시작됐다.

2.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 모두를 보게 됐다. 통상임금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회부돼서 다음달 5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리는 공개변론이다. 갑을오토텍의 생산직과 관리직 두 개의 사건이다. 대법원이 대여섯개 통상임금 사건을 두고서 공개변론을 고민한다더니 한국지엠 등 사건은 부담스럽다고 이 사건들로 진행하기로 했나 보다. 어찌됐건 이제 갑을오토텍 사건으로 대법원은 기존 판례의 법리를 유지하든 변경하든 통상임금의 판례법리를 판시해서 정리하게 될 것이다. 갑을오토텍 사건의 결과는 지금 진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진행할 수많은 통상임금 소송사건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 노동자 모두의 임금과 노동시간 등의 권리에 영향을 줄 것이다. 사실 갑을오토텍 사건의 대리인도 아닌 나는 공개변론의 결과를 주시하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서 그 결과에 따라 사건을 고민하면 됐다. 그 판결의 법리를 두고서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현대삼호중공업·볼보·엘에스산전 등 내가 담당하고 있는 통상임금 사건에서 어떻게 주장할 것인지 방법을 찾으면 됐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게 됐다.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을 대리해 왔던 변호사로부터 요청이 왔다. 결국 나는 두 사건들의 대리인으로 선임돼서 공개변론에 참여하게 됐다. 보수 없고 부담은 태산 같은 사건이다. 하지만 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뭐 편히 살 팔자가 아니니 별 수 있냐고 팔자타령을 하면서 졸지에 사건을 맡게 됐다. 그리고서 지난 9일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을 위한 준비절차가 열렸다. 이날 나를 포함한 원·피고의 대리인 변호사들은 공개변론에 관한 절차와 준비사항을 설명 듣고 본격적인 변론 준비에 들어갔다.

3. 지난달 31일이었다. 나는 메시지를 받았다. “통상임금의 산정범위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루겠다고 발표를 했던데요. 관련 보도도 별로 없고 내용도 시원찮고 매우 불길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신규 노조 현장조직화의 매개로 소송인단을 조직하고 있는데, 엄청나게 술렁이고 있습니다. 재계가 요구하고 바로 다음날 대법원이 이같이 발표를 하는 걸로 봐서는 이미 모종의 담합이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사법부의 판단을 계속 무시해 온 행정부(노동부지침)에 대해서 쐐기를 박으려고 하거나, 날로 범위가 확대되는 양상이기 때문에 이에 제동을 걸기 위해 보수적인 대법관들이 나서는 것인지. 영 찜찜합니다.” 대법원의 공개변론을 앞두고 있는 지금, 노동자들의 심정일 것이다. 그동안 통상임금 사건에 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로 회부해서 판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것은 사용자와 사용자단체, 그리고 노골적으로 사용자편을 들어온 보수언론이었다. 이에 대해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이 나라 노동자단체는 반대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재판부로 회부했으니 노동자들은 당연히 불길한 것이다. 이것은 사용자들을 대리한 변호사들이 대법원에 계속해서 요청했던 사항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통상임금 사건을 전원합의체 재판부에서 공개변론을 연다니 노동자들은 당연히 영 찜찜한 것이다. 노동자를 대리한다는 변호사인 나조차도 아니라고 확신에 차서 걱정하지 말라고 답신을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섣부른 비관은 공개변론을 앞둔 대리인의 자세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통상임금 주장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제 권리를 더 달라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근로의 대가인 법정외근로에 대한 임금을 제대로 산정해서 지급해 달라고 제 권리만큼이라도 보장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임금은 법에 따라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이 나라에서 법을 확인해 줘야 할 법원의 일이다. 그럼에도 통상임금제도가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의 근로시간과 임금에 관한 권리, 법정외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을 제대로 산정해서 지급하지 않는 임금제도로 활용돼 왔다. 그것은 고용노동부의 예규 등 행정해석뿐만 아니라 법원에 판결에도 기인했다. 오늘 이 나라에서 복리후생명목의 금품, 정기상여금 등에 관해서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속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법정근로의 대가로서의 임금을 기준으로 해서 각 50% 가산해서 법정외근로의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지 못하다. 법정근로의 대가로 지급하기로 정해진 임금, 이것을 통상임금으로 파악해서 지급해야 노동자는 법정외근로의 대가인 임금을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임금권리대로 보장받는 것이다. 비록 일정한 지급기준의 복리후생명목의 금품, 정기상여금 등에 통상임금에 속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지만, 그래서 노동자들은 다들 들떠 있지만 아직은 그 지급기준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기본급과 동일한 경우에 한하는 예외적으로 인정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도대체가 무엇인가 확보한 제 권리를 빼앗길지 모른다고 불길해하고 찜찜해야 할 때가 아니다.

4.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 사건.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부의 재판부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거나 종전에 통상임금 법리를 대법원에서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 전원으로 구성되는 전원합의체 재판부에서 심리해서 판결하게 되는 사건을 말한다(법원조직법 7조 1항). 무엇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건지 아니면 종전 통상임금 법리를 어떻게 변경해야겠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무엇이든 전원합의체 판결은 노동자 임금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어야지 더욱 제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까지 이 나라 노동자의 법정외근로의 대가로 지급돼 온 임금을 법정근로의 대가로서 지급돼 온 임금을 기준으로 해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각 50%의 가산율을 적용해서 지급하도록 전면적으로 통상임금의 산정범위에 관한 법리를 재정립해야 한다. 기존 통상임금에 관한 판례 법리를 폐기하고 대법원은 주 40시간의 법정근로(물론 그 보다 단축한 소정근로시간을 정하고 있는 경우는 그 소정근로시간.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이런 경우는 드물다)에 관해 지급하기로 정해진 김장비·체력단련비·귀성여비·하기휴가비·명절 선물비·개인연금보험료·상여금 등 일체의 임금은 통상임금의 산정범위에 속한다고 새로이 판례 법리를 세워야 한다. 기존 판례의 법리까지도 변경할 수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에 회부된 마당에 통상임금에 관한 기존 판례의 법리를 내세워 주장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오히려 기존 판례의 법리가 제한하고 있던 노동자임금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사실 통상임금 문제는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시간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판도라 상자이다. 봉인을 푸는 순간 상자에서는 그동안 감춰졌던, 이 나라 노동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해 온 괴물들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 괴물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그동안 노동자권리가 어떻게 부당하게 법의 이름으로 짓밟힌 것인지 생긴 모습 그대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사용자 대리인 변호사들이 쟁의시 무노동무임금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주장 앞에서 노동자, 노조를 대리해 온 나는 어찌해야 할까. 그냥 통상임금 포기하고 무노동무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을 변경해야 한다는 사용자대리인의 주장이 맞다고, 판례 변경하고서 새로 판결 법리를 정리해 달라고 대법원장, 대법관 13명 앞에서 함께 읍소해야 할까. 생활보장적 부분은 현실적 근로제공에 따라 지급받는 임금이 아니므로 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해진 통상임금에 속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김앤장의 변호사들은 이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이기겠다고 이렇게 상고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노동무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임금이분설을 폐기하고 임금일분설로 정리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통상임금 법리와 연동되는 것이 아니다. 잘못 이해하고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파업을 많이 하지 않고, 그보다는 잔업·특근에 연차휴가도 쓰지 않고 일하는 것이 많으니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사용자에겐 이익이라고 셈해 보고서 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노동자의 대리인까지 이렇게 주장할 일은 아니다. 판도라 상자는 노동자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 봉인된 것이고 그 속의 괴물은 노동자를 주인으로 길들여진 개가 결코 아니다. 괴물은 괴물이라고 말하고 괴물로 취급해 주면 된다. 물론 이것은 통상임금 공개변론 사건에서 노동자를 대리하는 나의 일이기도 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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