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의 갈지자 행보를 두고 항간에 여러 말이 돌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설립신고서 반려조치에 관한 얘기다. 노동부는 지난 2일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노조의 규약 단서조항을 보면 노조 가입이 허용되지 않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게 반려조치의 근거였다. 노동부는 지난달 25일 설립신고증 교부를 돌연 연기하더니만 결국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간 노동부와 공무원노조가 10여 차례 협의를 진행했고, 방하남 노동부 장관이 긍정적인 언급까지 했음에도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노동부가 손바닥 뒤집듯 변심한 이유는 뭘까. 사태를 복기해 보자.

공무원노조는 2009년 옛 전공노·민주공무원노조·법원공무원노조가 통합해 출범했다. 당시 공무원노조는 설립신고서를 세 차례나 제출했으나 노동부는 모두 반려했다. 소속 조합원 가운데 해직공무원이 포함됐다는 이유였다.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에 따르면 해직공무원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이 있을 경우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조합원의 지위를 갖는다. 노동부가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면서 내세운 법 조항이다. 14만명의 공무원노조 조합원 가운데 해직공무원은 135명에 불과하다.

새 정부 출범 후 공무원노조는 5월27일 네 번째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이후 방하남 장관은 민주노총을 방문해 공무원노조 설립신고에 관해 긍정적인 언급을 했다. 이어 노정 간 대화를 주선했다. 이때부터 공무원노조와 노동부는 설립신고와 관련해 협의를 진행했다. 양쪽 법률자문단이 법적 뒷받침을 하면서 노동부가 문제 삼았던 노조 규약을 손질했다. 내부 반발을 고려한다면 노조로선 어려운 결정을 한 셈이다. 규약은 “조합원이 부당하게 해고됐거나 해고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경우 관련법령에 따라 조합원의 자격을 유지한다"로 바뀌었다. 물론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구체적인 조합원의 적격에 대한 해석은 중앙집행위원회에 위임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공무원노조와 노동부 사이에 이견은 없었다. 단서조항은 그리 주목받지 않았다. 단서조항은 노조의 유권해석일 뿐 해직공무원의 자격 여부는 본문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양측 법률자문단의 해석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방 장관은 지난달 23일 국무회의에서 안전행정부가 반대하자 “설립신고를 수리한 후 사후관리를 하겠다”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지난달 25일 설립신고증 교부를 돌연 연기했다. 느닷없이 단서조항이 문제가 됐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달 22일자에 게재한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위한 규약개정안 가결’이라는 기사에서 임시대의원대회 상황을 보도했는데 이것이 근거가 됐다. 김중남 위원장은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조의 투쟁과 협상을 통해 정부의 부당한 요구를 막아 냈다”며 “규약개정이 해직자를 내치는 것으로 보는 분들이 있는데 집행부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설립신고 반려를 통보하면서 내세운 이유도 이 부분이다. “대의원대회에서 해직자의 신분을 보장한다고 밝힌 바 있어 향후 해직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소지가 크다”고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노조의 법내 진입 좌절은 노조 규약이나 단서조항 때문이 아니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나온 노조 관계자의 발언과 이를 보도한 노동언론 탓이 된다. 노동계가 “노동부가 사기를 쳤다”고 비난할 만하다.

사실 노동부의 허술한 변명은 핑계에 불과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달 2일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를 통보한 데 이어 5일에는 집권 6개월 만에 청와대 인사를 단행했다. 비서실장과 4명의 수석이 바뀌었는데 여기에는 고용복지수석도 포함됐다.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를 대처하기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청와대 인사개편을 단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부가 인사개편을 상당기간 준비했고, 발표할 시점을 모색하던 와중에 공무원노조 합법화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안행부의 반대는 이미 예고된 것이어서 반려통보의 좋은 소재가 됐다. 노동부가 지난달 25일 설립신고 통보를 연기하고, 청와대 인사 발표에 앞서 반려를 확정한 것은 이런 기류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노동계도 “노동부가 아닌 청와대 윗선의 개입”이라고 반발했다.

노동부의 변명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공무원노조 합법화는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적어도 노사관계 영역에선 그렇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차별화에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의 관성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여전히 ‘이명박근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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