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정 기자

"당연히 철도 민영화 예찬론자가 바지사장으로 오지 않겠습니까?"

최근 철도공사 신임 사장 공모에 22명이 지원했다는 소식에 한 철도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뻔한 걸 묻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며칠 뒤 코레일 임원추천위원회 면접 결과 최종 3인으로 압축된 이들의 면면을 보니, 정말 뻔한 그림이 나왔다. 공기업 사장 선임 추천기구인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에 이름이 올라갈 3인은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이재붕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장·팽정광 코레일 부사장이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들 중 정일영 이사장의 낙점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정일영 이사장이 확실하다"며 "이재붕 원장은 현재 뭇매를 맞고 있는 4대강 사업 담당 부본부장이었던 만큼 선택될 리 만무하고, 팽정광 부사장은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의 낙점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그의 인맥·이력이 화려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공공기관장 자리를 줄줄이 꿰차고 있는 국토해양부 행시 23회 출신인 데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철도 민영화 설계자로 알려진 정종환 장관에 의해 국토부 교통정책실장에 발탁되기도 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과는 연세대 경제학과 1년 선후배 사이다. 철도 민영화를 빈틈없이 추진해야 하는 국토부로서는 이만한 적임자가 없는 셈이다.

철도공사 사장이라면 어느덧 114년의 역사를 가진 철도의 장기적 발전전망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치권이나 토건 자본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뚝심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3인 가운데 그러한 자질과 능력, 비전과 소신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차기 사장으로 유력하게 꼽히고 있는 정 이사장이 면접자리에서 "9월 초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했다는 소문은 그래서 더 우려스럽다.

앞으로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거쳐 국토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철도노조는 "학연과 지연, 국토부 퇴직관료들의 공공기관 알박기로 진행되는 철도공사 사장 공모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난을 듣지 않으려면 노조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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