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생물체의 전체 또는 일부분에 육체적·정신적 이상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게 되는 현상을 ‘병’이라고 한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아픈 병은 뭐라고 부를까.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CRPS)이 바로 그런 병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붓이 닿기만 해도 극심한 통증(이질통)을 느끼기 때문이고, 그런 통증이 괴로워서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극심한 통증을 주는 CRPS가 유독 산재 문제에서 많은 노동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의학적으로 CRPS는 반복적인 외상 등으로 인해 신체의 말단 부위에 발작적이거나 지속적인 통증을 느끼는 만성통증 질환의 일종이다. 통상 골절·화상 등 외상에 의한 신경손상 이후나 환지통(절단 후에 생기는 통증)·척추수술에 의해서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으로는 이질통·통각 과민(통증에 대한 과민반응)·작열통(불에 타는 듯 한 아픔)·부종(붓는 것)·이상발한·국소피부변화·운동장애 등이 있다. 신경손상이 없는 것이 특징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 1형’과 이질통·작열통 증상을 보이면서 신경손상이 있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 2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비교적 간단하다. CRPS의 산재 인정에 있어 근로복지공단이 가진 기준이 의학적 합리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단은 CRPS 산재사건(추가상병 신청·재요양 신청·장해등급 등)에서 미국의사협회(AMA) 진단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AMA 진단방식은 CRPS를 진단함에 있어 11가지 임상증상 (① 피부색 변화 ② 피부온도 차이 ③ 부종 ④ 피부의 건조함·축축함 ⑤ 피부탄력 ⑥ 연부조직 위축 ⑦ 관절 강직 ⑧ 손·발톱 변화 ⑨ 피부털 변화 ⑩ 방사선 사진상 골다공증의 변화 ⑪ 방사선 동위원소 검사상 혈류증가 소견) 중 8가지 이상이 진단돼야 한다.

문제는 AMA 진단방식이 장해평가를 위한 것이지 임상적 진단을 위한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 의사들이나 미국 법정에서도 CRPS를 진단하기 위해 AMA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는 않다. 즉 장해평가를 위한 엄격한 방식이 유달리 한국의 산재 인정기준으로 채택돼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는 CRPS 진단을 위해 AMA 방식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통증연구학회(IASP :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ain)의 진단기준이 폭넓게 사용된다. CRPS 진단 자체도 IASP를 통해 94년에 정립된 병명이다. IASP에서는 △신체에 유해한 사건 △지속적인 통증과민 △통증 있는 부위에 부종 존재 △당뇨 등의 원인질환이 없는 경우 CRPS로 진단한다. 결국 공단이 AMA 방식을 내세워 불승인한 사안은 거의 법원에서 패소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전주지법 2012구합659 판결, 서울행법 2009구단11136 판결, 서울행법 2008구단9013 판결, 서울행법 2008구단11603 판결 등)

CRPS 산재 노동자들은 대부분 외상사고 후 수술 등 각종 치료를 받기 때문에 외상으로 인한 통증으로 생각하지, CRPS가 뭔지도 모른다. 또한 외상사고 처치는 정형외과 전문의들이 하고 있어 재해 초기에 CRPS를 진단·치료하는 통증의학과에 협진과 진단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로 인해 사고 이후 수개월 또는 수년이 지나 통증의학과에서 CRPS로 진단해 추가상병 신청을 하면, 공단에서는 '정형외과 자문의'의 소견을 받아 불승인하기 십상이다. AMA 방식에 있어 11가지 중 8가지 이상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공단 스스로도 CRPS 연속 패소에 대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2010년 송무세미나 자료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옷깃만 스쳐도 죽을 듯 한 고통을 겪는 산재 노동자들을 행정소송으로 내모는 것은 공단의 책임방기다. 공단은 CRPS 산재사안에 대해 IASP의 진단기준에 따라 통증의학과 전문의에게 자문을 받고 이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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