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지금 대기업 정규직노조의 안락한 삶은 그냥 이뤄지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 흘린 대가다. 현대자동차만 해도 서영호·양봉수 등 수많은 열사를 만들어 냈다.

2000년대 들어 노동운동의 양상은 바뀌었다. 싸우다가 자살하거나 타살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그 변곡점은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광주본부장이었던 고 이용석씨다. 이씨는 2003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해 같은달 31일 오후 3시께 운명했다. 고인의 분신사망은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투쟁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 싸움의 결과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 노동자 몇몇이 정규직으로 전환돼 지금도 일하고 있다. 그들이 일하는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를 담당하는 중요한 공공기관이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의 전 지사장과 보상부장, 부상과장 등이 낀 대규모 산업재해 사기단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2002년 공단 근무 때 뇌물을 받아 공단에서 파면됐다. 그러고도 이들은 브로커들에게 수천만원씩 돈을 받고 산업재해 요양급여를 받도록 해줬다.(중앙일보 7월30일 12면)

일반적인 경우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 공단과 험난한 싸움 끝에 겨우 산재를 인정받고 있다. 외곽의 산재단체들은 불합리한 산재 승인제도의 개선을 몇십 년째 요구하지만 갈 길은 멀다. 가끔씩 제도는 뒷걸음치기도 했다.

비정규 노동자가 목숨 걸고 싸운 결과가 뇌물 받고 파면돼 또 뇌물 받는 썩은 공공기관의 안락한 정규직 자리일 순 없다. 철도노조 비정규직 싸움의 결과도 비슷했다. 죽을 고생 끝에 정규직으로 전환한 뒤 투쟁의 기운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어렵사리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복지공단의 몇몇 노동자들은 우선 공단 노조 개혁부터 시작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직은 중과부적이지만 그들은 고 이용석씨의 죽음을 여전히 가슴에 새기고 산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비정규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스스로 “우리가 정규직이 되고 나면 과연 몇 명이나 남아 노조 일을 하겠느냐”고 점쳐보기도 한다. 대부분 5명도 안 될 것이라고 스스로 답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무랄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 먼저 해결돼야 그들보다 열악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희망을 갖고 노조라도 만들어 보자고 동료들을 설득할 것이 아닌가.

노조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눈에 선하다. 지난 겨울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으로 일하다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 신청도 못한 채 쫓겨난 30대 초반의 노동자가 더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하다 고시원 생활 끝에 자살했다. 이 노동자는 자신의 차에 번개탄을 피우는 방식으로 자살했다. 곳곳에서 번개탄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4년 사이 번개탄 자살이 17배나 급증했다.(조선일보 7월30일 10면)

국무총리와 부처 장관들이 모여 앉아 국가정책조정회의를 하면서 자살을 막기 위해 번개탄을 규제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타조처럼 머리를 처박고 있는 고급 관료들의 ‘탁상공론’을 보노라면 한숨만 나온다. 번개탄 자살자 대부분이 비정규 노동자다. 더 위험한 곳에서, 더 많이 일하는 그들이 정규직보다 시급이라도 더 많아야 하지 않겠나.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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