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욱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국민학교의 기억

내가 다닐 적만 해도 이름이 국민학교였다. 현재와 같이 초등학교로 바뀐 것은 1996년께의 일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때 일본왕(천황)의 신민이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던 말이다. 해방 이후에도 지배계층의 필요에 의해 계속 사용되던 단어다. 어쨌든 그 국민학교 시절 익숙했던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담임 선생님이 반장에게 떠드는 학생 이름을 적게 시키는 것이다. 교실이 시끄러운데 아무 이름도 안 적으면 반장이 질책을 당하고, 그렇다고 정말로 이름을 적으면 배신자가 된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학교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손쉬운 방법이면서 동시에 그에 따르는 학생들을 소위 학교라는 체제에 편입시키는 통로였던 것 같다.

유수의 자동차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

그런데 위와 같은 일이 대한민국 2위 자동차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다. PIP교육이라고 해서 간부사원 중 저성과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교육인데, 그 교육방식을 보면 참으로 모멸감을 준다.

“미션 완료 후 잡담”,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반응 없음”, “상체를 너무 뒤로 하고 팔짱을 낌”, “강의 도중 전화벨이 울림”, “교수에게 요구받은 사항을 끝내고 교육 외 주제를 나누고 있음”, “팀별 발표시간에 발표자에 주목하지 않고 핸드폰을 만짐”, “책상 밑을 봄”, “조별 토론 중 어깨를 움직이는 버릇이 있음”….

교육시간에 감시하는 사람들이 교육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적은 내용들이다.

과거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도 반장에게 세세하게 고자질(?)을 하게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나이 50이 넘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일을 하다니 그 발상이 놀랍다. 교육자세가 정말 문제이고, 개선이 목적이었다면 당연히 이를 교육생들에게 알려 주고 고치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과정은 전혀 없었다. 오직 감시하고, 기록하고, 이를 평가점수에 반영하는 일뿐이었다. 모멸감을 주는 방식을 통해 이뤄지는 교육의 내용도 가관이다. 매일 야간공부를 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려운 수업과 과제물, 주말에도 해야 하는 독후감, 실제 그 교육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굴욕감을 느끼더라도 회사에서 시키는 일에 복종하느냐 마느냐만을 보는 것 같다.

독후감 대상이 되는 책들은 온통 “법은 당신을 지켜 주지 못한다”,“회사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정리해고 대상이다”,“직장에 언론의 자유는 없다”,“회사는 독재국가이다”,“회사는 ○○직원들을 스스로 나가게 만든다”등의 내용뿐이다. 이쯤 되면 PIP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뫼비우스의 띠

앞면과 뒷면이 구별되지 않고 시작점과 끝점이 구별되지 않는 것이 뫼비우스 띠의 특징이다. PIP교육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PIP교육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징계를 받고 있는 만큼 교육의 목적이 징계를 하기 위한 것이냐고 물으면, 회사는 원래 저성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니 징계대상자가 많은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그런데 반대로 이 사람이 왜 업무능력이 부족한가라고 물으면 PIP교육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참으로 혼란스럽다. 결국 원인과 결과가 별로 구별되지 않는 평가, 일정한 징계대상자를 정해 놓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실시하는 교육이 아닐 수 없다.

이젠 사회 통념을 바꿔야 할 때

PIP교육은 여러 회사에서 실시되고 있다. 교육의 구체적인 목적과 의도가 적혀 있는 서류들이 증거로 발견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육 자체가 부당하다고 판단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법적으로 다퉈야 할 많은 쟁점과 사건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충성스러운 국민'을 키우기 위해 국민학교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통제에 익숙해져 있다. 사회 통념 자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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