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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보다 못한 을
이남신
한국비정규
노동센터 소장

“손해배상을 물리겠다. 회사를 폐업한다.”

“다른 직장으로 가라. 가만두지 않겠다.”

노조를 결성하자 이렇게 노골적으로 협박한 사장이 있다. “내 허락도 없이 교섭에 참석하다니 용납 못한다”며 노조가 절차를 밟아 선임한 정식 교섭위원을 부정하며 교섭장에서 뛰쳐나가는 몰지각한 만용을 부린 사장이 있다. 수도권 최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주)씨앤앰 협력업체인 오렌지정보통신기술의 사장이다.

자신을 갑으로 착각하고 어처구니없는 행태로 케이블방송 비정규 노동자들의 원성을 한 몸에 사고 있는 그를 통해 약자에게 강한 한국사회 기득권자들의 음울한 단면을 본다. 헌법과 노동관계법조차 모르는 무지야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공연한 부당노동행위와 악질적인 노조탄압은 엄벌을 받아 마땅하다.

갑보다 못한 을이 말썽이다. 한국사회에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갑을관계. 재벌대기업 같은 슈퍼갑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다단계 하도급 구조 아래 기생해 온 악덕 을의 중간착취와 노동탄압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양단된 노동시장 양극화를 극복하고 합리적인 노사관계가 노동현장에 안착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남용의 온상이 돼 온 원·하청 구조를 혁파하는 것과 함께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을 조장하며 이윤을 갈취해 온 악덕 협력업체 사장들도 응징해야 한다.

사실 을에도 끼지 못한 채 병·정의 지위에 있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그중 대표적 집단이 노동기본권조차 박탈당한 1천만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슈퍼갑인 재벌대기업 입장에서 바지사장은 을에 속하지만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은 아예 열외로 치부된다. 오랫동안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온 케이블방송 비정규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월 2~3일밖에 쉬지 못하고 주당 평균 60시간을 일해도 150만원 남짓한 월급만 가져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업무비용까지 노동자가 부담하거나 월급에서 차감당해야 했고, 영업 할당을 채우기 위해 지인의 명의로 케이블방송에 가입하고 자신이 시청료를 대납하면서 심지어 개인파산에 이르는 경우까지 생겼다. 따라서 불법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있는 갑의 횡포 못지않게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악덕 을의 중간착취 또한 시정돼야 한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악덕사장의 행태를 열거해 보겠다. 이 회사 사장은 오렌지 소속 노동자들과 사사건건 대립과 갈등을 빚어 왔다. 여직원 3명을 강제로 권고사직했다가 고용노동부의 도움을 얻어 복직이 되자 기존 업무와 전혀 다른 업무로 발령을 내 퇴사를 강요했고 결국 사직시켰다. 또한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업 실패의 책임을 일개 팀장에게 물어 보직해임을 하기도 했다. 관리지표 개선을 앞세운 강제영업 압박과 잇따른 부당노동행위와 욕설 등의 인격적 모독으로 오렌지는 노동조건과 생산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를 만들 때 울분에 찬 오렌지 소속 노동자들이 앞장선 이유다.

그러나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속담처럼 노조가 만들어진 후에도 사장은 교섭회피와 함께 일방적인 근무시간 변경, CCTV 설치 등 인권침해를 일삼았고, 업무차량을 오토바이로 바꾸려고 시도해 노사갈등을 심화시켰다.

심지어 원청인 씨앤앰이 희망연대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도급단가 인상 명목의 동반성장 비용 50억원과 관련해서도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며 도리어 소속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 폐업 운운하며 협박을 했다. 지금까지도 그는 협력업체 사장으로서 씨앤앰 원청을 무색하게 하는 오만방자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며 전근대적이고 독선적인 노사관을 고수하고 있어 전체 노사관계에도 시종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오렌지지회만 독자파업을 2주 동안 진행한 데서 확인되듯 악질 협력업체 사장의 탄압과 독선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고객에게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지고 보면 원청업체로부터 괄시받아 온 하청업체 바지사장으로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조건 개선과 하도급 구조 혁파 요구에 힘을 보태야 할 이해당사자임에도 그는 끝까지 농간을 부리고 있다. 갑보다 못한 을로 지탄받는 악질 협력업체 사장을 퇴진시키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합리적인 노사관계 형성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이남신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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