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아산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인 박정식 열사가 목숨을 끊은 지 1주일이 넘었다. 그를 아끼고 함께 싸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를 볼 수도 없고 함께 술도 마실 수 없다. 사내하청 노동자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30대 중반의 소중한 생명이 죽음을 택했고, 자신은 죽어 가면서도 다른 이들에게는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박정식 열사를 비롯해 지금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겪는 아픔과 투쟁은, 이들이 지난 10년간 어떻게 저항해 왔는가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2003년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월차를 쓰겠다고 했다가 관리자에게 떠밀려 머리를 다쳤다. 그 관리자는 병원에 실려 간 노동자를 찾아가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그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군대식으로 관리하는 데 익숙한 관리자의 행위였다. 그러자 월차를 쓰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이 상황을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틀간 라인을 세웠다. 그 힘으로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현대차 울산과 전주공장에도 사내하청지회가 만들어졌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10년간의 저항'은 그렇게 시작됐다.

10년간의 저항이 진행되는 동안 벌어진 현대차의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수배된 사내하청지회 간부는 공장 안에서 용역경비들에게 끌려 나와 경찰에게 넘겨지기도 했고, 파업을 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관리자들과 용역경비들의 폭력에 머리가 찢어지고 팔다리가 꺾였다. 100명이 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해고돼 쫓겨났다. 우리는 그 폭력의 단면을 다른 곳에서도 얼핏 봤다. GM대우 사내하청노조가 공장에서 선전전을 하다가 사측관리자들에게 맞아 안구가 파열됐을 때 1천여명의 컨택터스 소속 용역깡패들이 SJM 노동자들을 쇠파이프로 몰아칠 때였다. 민주주의는 공장의 담벼락을 넘지 못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저항하지 않고 침묵했다면, 월차 하나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일하다가 다쳐도 산업재해 신청은 꿈도 못 꿨겠지만 그럭저럭 공장에서 일하며 먹고살 수는 있었을지 모른다. 고용은 불안하지만 회사 관리자에게 잘 보이고 납작 엎드려 있으면 그래도 일은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억압과 폭력을 견디며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처럼 계속 저항했다. 그러다가 기적처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이니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저항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현대차왕국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억압이 결코 정당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신하게 됐다.

하지만 법의 힘을 믿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몽구 회장이 법 위에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사측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신규채용 운운하면서 노동자들을 기만했다.

노동자들은 잠깐의 기대와 환호를 접고 다시 저항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단순한 저항에 머물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했다. 법적으로 유리한 수천명의 노동자들만 정규직이 돼 신분상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침묵의 공장에서 고통 받아 온 사내하청 ‘모두’가 정규직이 돼야 한다고 결심했다. 잘못된 구조로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착취해 온 정몽구 회장이 처벌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기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더 많은 희생을 감내했다. 2010년 추위와 굶주림과 싸워 가며 25일간 점거파업을 했고, 관리자들의 폭력으로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현장파업을 조직했다. 최병승·천의봉 동지는 300일 가까이 철탑 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싸움은 길고 무겁다. 불법을 저지른 정몽구 회장이 오히려 불법 운운하고, 한국전력은 철탑 위의 노동자들에게 수억원대의 손해배상금을 물리고, 언론과 일부 지식인들은 ‘모든 사내하청의 고통을 지속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절규를 ‘무모한 요구’라며 점잖게 타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식 열사는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희망버스가 가던 날, 울산 현대차 앞에서의 폭력상황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희망버스가 평화적이기를 원했던 분들의 마음을 존중하며, 노동자의 요구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지만 그분들께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10년간 견뎌 왔던, 사측의 구조적이며 직접적인 폭력을 기억해 주시기를 요청드린다. 다만 현대차자본의 폭력에 침묵하고 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에 대해 ‘폭력’ 운운하는 이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하고 낫이 달린 대나무와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소화기를 쏘아 댔던 현대차 용역경비들의 폭력에 대한 침묵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몽구 회장의 지난 10년간의 불법과 폭력에 동조했던 경찰·경총·정부·언론, 이제 당신들의 입을 다물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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