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연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법률원
대전충청지부)

필자는 각 단위 노조와 노동·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법규활동가, 노동자·노조 지원활동만을 전담하는 개업노무사들로 구성된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에 소속돼 있다. 노노모 소속 노무사들은 법·제도적 한계와 정치적 현실 속에서 이길 때보다는 질 때가 훨씬 많은 사건 결과에 수없이 자책하고 힘들어한다.

필자 역시 대리인 노무사 역할과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법규부장으로서 노동위원회 개혁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노동위는 자본과 노동의 힘의 관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전쟁터이다. 하지만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자긍심으로 가득 찬 사용자위원과 친자본 성향의 공익위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개혁’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암담한 상황이다. 그런 구조하에 개별 사건에 있어 노동자·노조의 대리인이자 대변자인 노동자위원(법문상 근로자위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올해부터 지방노동위에 민주노총 추천 노동자위원으로 위촉돼 활동 중이다. 첫 번째로 맡은 사건은 부당전보였다. 신청인은 대리인 노무사를 선임하지 못한 미조직 노동자였다. 노동자위원의 역할이 중요했다.

신청인은 전국적으로 꽤 잘 알려진 시설·미화 용역업체의 대전지역 현장에서 팀장으로 근무했다.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기간제 노동자였는데, 2013년도 재계약을 하면서 사용자가 월 26만원 정도의 임금삭감을 요구했다. 신청인은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사용자는 임금삭감을 수용하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강요했다.

통상의 노동자가 그렇듯 신청인은 이를 해고로 받아들여 출근하지 않았다. 며칠 후 회사에서 업무복귀명령을 했다. 신청인은 서로 다툼이 있었지만 잘 해결해 보자는 뜻으로 생각하고 반가워서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불과 1주일 만에 신청인을 대신해 신규채용을 했고, “용역회사의 특성상 도급비 내에서 인건비가 정해지므로 이젠 신청인의 자리가 없다”며 신청인을 서울 본사로 전보발령해 버렸다.

공익위원들과 사용자위원들은 해고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상황에서 출근하지 않은 신청인에게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공격했다. 어떤 공익위원은 이런 상태에서 복직한들 함께 일하긴 무리가 아니냐며 금전보상으로 화해를 해 보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사업주는 원래부터 신청인과 재계약 의사가 없었다. 해고할 만한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하자 신청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다. 거기에 여러 가지 치사한 이유를 추가해 신청인을 농락하고 인격적으로 비난했다.

신청인은 당당하게 “나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겠고, 170만~180만원에 불과했던 전년도 임금에서 26만원을 삭감하라는 요구는 너무나 부당하다”고 거듭 얘기했다. 노동위의 화해 종용도 꿋꿋하게 물리쳤다. '근로자위원석'에 앉아 바라본 노동자의 모습은 마치 의로운 분노를 터뜨린 어느 성인과도 같았다.

우리는 노동력을 팔 뿐이지 인격과 인권까지 파는 것은 아니다. 같은 노동계급이자 노동자위원인 나의 ‘자존심’까지 지켜 준 노동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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