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섭섭하죠.”

23일 현판식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한화생명 본점에서 만난 허창수(49·사진) 한화생명노조(옛 대한생명노조) 위원장은 소회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대한생명노조는 지난 18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한화생명노조로 이름을 바꿨다. 창립 26년 만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에 창립했습니다. 9월이면 창립 26주년을 맞아요. 선배님들은 당시에 힘들게 설립신고증을 받았고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고 해요.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노조가 있는 거겠죠. 대한생명노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하지만 사명이 바뀌었으니….”

허 위원장의 말대로 대한생명은 지난해 한화생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2002년 한화그룹에 인수됐으니 꼭 10년 만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대한생명이라는 이름이 가진 저력이 컸다는 얘기다.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63빌딩을 소유했던 때도 있었으니 과거의 영화는 대단했으리라.

노조가 사명 변경시도에 펄쩍 뛴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지난해 6월 주주총회에 앞서 노조는 ‘개명’에 반대하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청와대 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고,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에 가서 주총에서 반대의견을 펼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분을 소유한 외국인들도 만났다. 우리사주조합 지분 4%를 행사하기 위해 위임장을 하나하나 받았다. 24.7%의 지분을 보유한 예보는 한화가 사명 개명을 추진할 때마다 “기업가치가 더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주총 분위기는 달랐다. 노조의 주장과 반대되는 결론이 나왔다.

“어깨가 무거웠죠. 노조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결과는 아쉽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임시대의원대회에서도 노조 명칭 변경안건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어요.”

이름이 바뀌었다고 노조가 할 일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허 위원장은 벌써부터 임기 마지막해인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은 단체협약을 갱신하는 해다. 그는 단체교섭에 대비해 기초체력을 만들고 있다고 했는데, 그중 하나가 정년연장이다.

“회사 정년이 55세예요. 정년연장이 적용되는 2016년 이전에 정년퇴직하는 분들은 정부도 해결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올해 임금교섭을 하면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습니다. TF를 구성해서 논의를 하자는 정도만 얘기했죠. 은행권을 비롯해 먼저 정년연장을 한 사례를 살펴봤는데 임금피크제가 썩 좋지는 않더라고요. 정년연장에만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컨설팅도 하고 연구도 하고, 다른 업체 방문조사도 해서 논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서두르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서 허 위원장은 "마무리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아직 협상을 마치지 못한 사내근로복지기금 도입 문제, 일주일에 하루 정시퇴근하는 가정의 날 정착, 3분의 2에 달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업 등이다.

“욕심인지는 모르겠는데 모든 조합원이 만족할 수 있는 사업, 나아가 비조합원이나 소수 직책에 속한 직원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고 만족하는 사업을 하고 싶어요. 소수의견도 존중하고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일을 해야지요. 있는 그대로 현장에 알리고 빠르게 현장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노조 명칭 변경은 100년 가는 노조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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