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법의 장단에 춤추는 세상이다. 법치주의. 그것은 국가의 힘·권력이 법의 장단에 맞춰 춤춰야만 한다는 국가의 원리이다. 이 세상에서 법은 자본의 힘, 소유와 권리에 대해서도 그 존부와 크기를 부여하고 있다. 권력과 자본이 아니라도, 인민과 노동이 가진 힘조차도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법의 장단에 따라 춤춘다. 오늘 우리가 부르는 희망의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라. 절망의 세상에서 희망은 법의 장단에 따라 노래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도 그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비정규직·통상임금·최저임금·산별교섭·복수노조·전임자급여·정년연장…. 절망의 현실을 넘어서고자 노동운동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는 법의 장단에 맞춰 부르는 것들이다. 정리해고·비정규직의 절망의 노동현장에서 부르는 노래도, 거기로 향하는 희망버스에서 부르는 노래도 그렇다. 희망의 법, 오늘 노동운동의 모든 몸짓은 거기로 향하고 있다. 아무리 법을 자본의 편이라고 비난해도 그렇다. 그런 비난조차도 달리 보면 법이 노동을 위한 희망의 법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에서는 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은 어쩔 수 없이 날마다 이 세상에서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를 선언한다. 결코 노동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는 크기의 것이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판결한다.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이 현대자동차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라며 현대차 생산공장에서 2년 넘게 일해 온 사내하청근로자는 옛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라고 판결했던 것처럼. 때로는 희망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선언한다. 그것으로 현대차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꿈꿀 수 있었고, 비정규직노조 활동은 다시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으며, 희망버스는 현대차 울산공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2. 그 법이 말하고 있다. 희망버스를 말하고 있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지난 2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벌어진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시위와 관련, 불법·폭력행위 주도자를 가려내 처벌할 방침이라고 22일 밝혔다. 현대차도 자체 확보한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폭력 시위를 주도한 민주노총과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희망버스 기획단 관계자 10여명을 이날 오후 경찰에 고소·고발하겠다고 했다. 불법·폭력행위·고소고발·처벌…. 법을 파괴한 자에 대해 처벌 등으로 법을 회복시키겠다며 국가와 피해자가 사용하는 법의 언어다. 법의 파괴를 법은 불법, 범죄라고 부른다. 그런데 경찰은 불법·폭력행위 주도자를 가려내 처벌함으로써 울산 희망버스행사에서 발생한 불법, 범죄로부터 법을 회복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것이고 이날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자, 시위를 주도한 자를 선별해서 검사는 기소할 것이고 판사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판결을 선고해서 처벌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법의 파괴에 대응해 국가권력이 신속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서 법을 회복해 온 것은 아니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로 확인한 파견법 위반의 범죄행위를 사용자인 현대차가 하고 있는데도 이 나라에서 권력은 아직도 법을 회복하겠다고 법집행을 하고 있지 않다. 법적으로는 파견법을 위반해서 파견근로를 사용하는 사용사업주여서 분명히 범죄자인데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자본과 노동이 부딪치는 이 나라 노동현장에서는 흔하다. 노조활동 방해 등 부당노동행위가 심하다. 그래서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는 사용자를 처벌해 달라고 고소고발하고 근로감독관,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에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항의하는 게 일이다.

3.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여러 사람이 함께 횡단하면 무법자로 무단횡단하고 있다고는 잘 여겨지지 않는다. 수천명이 함께 횡단한다면 무단횡단이라는 비난에 무단횡단이냐고 물을지 모른다. 아예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이 문제라고, 수천명이 도로를 건너는데 신호등을 조정하지 않은 교통경찰의 문제라고 여기게 된다. 너무도 흔한 일이다. 혼자나 소수가 하면 불법이고 범죄여서 꺼리는 것도 여럿이 하면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세상의 대다수가 하면 그것을 불법이라 범죄라 규정짓고 있는 법이 문제가 돼 버린다. 인간의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절대다수의 불법은 이미 불법이 아니다. 그것을 불법이라고 정한 법이 위헌이든 뭐든 법의 폐지가 문제될 뿐이다. 그러니 절대다수의 범죄는 이미 범죄가 아니다. 그것을 범죄라고 처벌하는 법이 위헌이든 뭐든 폐지해야 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뭔가. 지금 노동운동의 어떤 행동이 불법으로 범죄로 다스려진다는 것은 그 행동이 아직은 대다수 노동자의 행동으로 적어도 대다수 인민의 일상적인 행동으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절대다수는 아니라도 수백만의 행동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법으로 다스려질 법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서는 빨간불이라도 노동자는 횡단보도를 건너도 불법이라 범칙금 통지를 할 수 없고 거기서는 빨간불이라도 인민은 도로를 점거하며 행진을 해도 범죄로 처벌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무법이 질서가 되는 세상이다. 거기서는 절대다수의 의지만이 모든 것이다. 그러니 노동운동의 문제는 법이 아니라 대다수 노동자와 인민을 노동의 편, 노동의 행동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하긴 법이 노동운동이 다수가 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으니 법의 문제이기도 하다. 뭐 이것도 그런 법조차 폐지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을 말하게 되니 뭐가 됐든 노동운동이 다수가 되지 못하니 문제인 건 분명한 것이겠다. 어쨌든 골치 아프다. 이 나라에서 법이 노동기본권 행사는 제한과 금지가 원칙이고 허용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야말로 빨간불 앞에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전개될 수밖에 없으니.

4. 법의 장단에 춤춰야 하는 세상, 어쩔 수 없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노동운동이 꿈꾸는 희망조차도 그 법으로 말해왔다. 그래서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운동은 수많은 희망의 법을 말해왔고, 오늘도 말하고 있다. 노동자는 노동자권리를 선언하는 법원의 판결에 희망을 찾고 노조는 노조활동 등 노동기본권을 선언하는 법원의 판결에 희망을 꿈꾼다. 법은 자본과 노동 사이에 권리의 경계를 긋고 있다. 자본에 대한 노동의 권리는 너무도 작다. 그런데도 그 작은 권리로 노동자는 절망의 세상에서 희망을 바라보고, 노동자권리를 위해 달려가는 노동운동은 희망의 법을 말한다. 그러니 별 수 없다. 노동의 작은 권리는 자본의 큰 권리 앞에 무력해도 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작은 권리조차도 사용자에 짓밟히기 일쑤다. 노동의 권리, 노동기본권 행사를 침해하는 사용자의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의 법집행은 신속하지도 엄정하지도 않다. 노동자권리를 향해 나아가는 노동운동 앞길에는 온통 불법과 범죄의 낙인, 빨간불이 켜져 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노동자권리를 위한 희망을 말하는가. 노동운동은 노동자 대중의 운동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전개하는 운동이다. 몇 천이 아니라 몇 백만으로 전개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해야 하는 운동이다. 몇 천의 시위는 처벌할 수 있을지 몰라도 몇 백만의 시위는 더 이상 법은 그것을 범죄라고 처벌할 수가 없다. 그때는 부당한 법에 맞선 정당한 노동자 대행진으로 평가 된다. 지금 희망버스가 이 나라 법 앞에서 문제라는 것도, 비정규직 투쟁이 이 나라 노동운동이 불법·범죄로 문제라는 것도 아직 그 투쟁이 노동운동이 본래 전개돼야 할 규모로 노동자 대중의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저 절망의 세상에 절망하고 희망을 짓밟는 법에 분노하며 희망의 법이 아닌 절망의 법이라고 좌절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 분명히 노동자는 세상의 주인이 아니다. 법은 사람과 사물에 대한 힘, 권력과 권리를 선언하고, 그렇게 법은 세상의 주인을 규정지어 왔다. 법은 노동자에겐 아직 희망의 법이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권리를 위해 나아가는 노동운동은 희망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하고, 결국은 희망의 법을 세워낼 수 있어야 한다. 비록 현실의 법이 이런 노동운동을 비난해도 노동운동은 어차피 노동자 대중의 것으로 전개돼야 하는 것이고, 이 나라에서 수백만 노동자의 것으로 전개된다면 법의 비난은 법에 대한 비난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러니 뭐라 해도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를 위한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법의 비난 앞에선 노동운동, 문제는 법이 아니라 노동자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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