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법률원)

근로기준법에서는 간주근로시간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근기법 제58조(근로시간 계산의 특례)에 따르면 근로자가 출장이나 그 밖의 사유로 근로시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업장 밖에서 근로해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소정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 다만 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소정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그 업무의 수행에 필요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

이 같은 단서에도 그 업무에 관해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한 경우에는 그 합의에서 정하는 시간을 그 업무의 수행에 통상 필요한 시간으로 보고 있다.

근로자 A씨는 운송서비스업체 B사의 화물차로 각종 물류 수송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화물차 운전기사다. B사는 매일 A씨에게 문자메시지로 업무를 지시한다.

다음은 올해 2월25일부터 28일까지 A씨에게 문자메시지로 전달된 업무지시 내용이다.


2월25일 16:00 김포 → 대전

(야간) 대전 → 부평

2월26일 16:00 김포 → 대전

2월27일 15:00 일산 → 대전

21:30 대전 → 일산

2월28일 15:00 일산 → 이천

19:00 이천 → 구로


2월25일 A씨는 김포의 모처에서 물류를 싣고 이동해 대전의 모처에 하역한 후 대전의 다른 곳에서 다시 물류를 싣고 부평으로 이동해 하역해야 한다. 마지막 하역지가 어딘지에 따라 A씨는 화물차를 회사까지 갖다 놓고 퇴근하거나 본인의 집 근처에 주차했다가 다음날 바로 이동하기도 한다. 또는 하역지와 다음날 출발지가 지방인 경우에는 인근에 주차해 두고 잠을 청한다. A씨는 3~4일 동안 연속해서 화물을 운송하고, 며칠에 한 번씩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더라도 다른 화물차에 물건을 싣거나 내리는 중이라면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해 물류를 차에 싣고 내리는 동안에도 A씨는 화물차 운전석에서 대기하면서, 내리고 싣기 편하도록 화물차를 앞으로 빼 주거나 뒤로 밀어 주거나 하는 ‘운전’을 간헐적으로 반복한다.

이런 A씨에게 적용되는 근로계약서에는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를 적용하며, 월요일부터 토요일 하루 9시간, 주 54시간”으로 하고, “실근로에 관계없이 54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며 동 시간은 실제 운전업무시간·입고·출고·준비시간 기타 운전업무에 필요한 모든 시간을 포함한 것으로 한다”고 정해져 있다. A씨의 급여는 기본급 100만원·야간수당 50만원·연장근로수당 35만원으로 포괄적으로 약정돼 있다.

○○지방노동청은 A씨가 B사를 상대로 연장·야간근로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진정사건에서 A씨에게 적용되는 간주근로시간제와 포괄임금제가 위법하지 않고, B사가 연장·야간수당 등을 추가로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A씨의 기본급은 100만원이므로, 통상시급 산정기준시간수를 최소기준인 209시간으로 잡아도 통상시급은 4천784.68원으로 최저임금 4천860원에 미달한다. 근로계약서상 근로시간으로 하더라도 주 14시간의 연장근로가 발생하고, 이를 월평균으로 나누면 60.83시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연장근로에 대해 지급할 임금을 계산해도 44만3천450원으로 근로계약서상 35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A씨가 문자메시지로 업무지시를 받고, 화물차를 운전하기 시작해 당일 마지막 목적지에서 입·출고를 끝낸 후 차고지(회사 또는 거주지 주차)에 도착하기까지 총 근로시간은 매주 다르긴 하지만 많게는 110시간, 평균적으로도 90여시간에 이른다.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했는지 여부 등 형식적 요건을 갖췄는지도 중요하지만, 실제 근로시간이 주 90시간에 이르는데도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나 근로계약을 통해 근로시간을 주 54시간으로 간주하는 것이 법률상 효력이 있을까. 간주근로시간에 대한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의 효력은 어디까지 인정돼야 할까.

A씨는 체불임금 진정사건에서 ○○지방노동청으로부터 퇴짜를 맞고 현재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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