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가 20일 다시 출발한다. 이번엔 울산이다. 100대의 버스와 두 량의 열차를 예약한 노동자·시민·학생들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최병승·천의봉 조합원이 머물고 있는 송전탑 농성장으로 간다. 희망버스·열차는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버스와 열차에선 인문학과 문화 그리고 인생 강연이 예정돼 있다. 가르치고 배우며 웃고 즐기는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의 바통을 잇는 셈이다. 그렇게 그들은 절망의 자리인 송전탑에서 절망을 직시하고 희망의 싹을 틔우려 버스 티켓을 예약했다. 때마침 22일은 대법원이 불법파견을 인정하며 현대차에게 사내하청 해고자인 최병승씨를 직접 고용하라고 판결한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한 때 희망버스는 절망버스라고도 불렸다.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가 그렇게 딱지를 붙였다. 부산 영도지역의 경제를 망친다는 의미에서다. 반면 철학자인 이진경씨도 같은 말을 했다. 물론 역설의 의미였다. 절망의 끝을 봐야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고 했다.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내려온 후 희망버스에 붙은 빨간 딱지는 떼어진 듯 했다. 그 곳엔 사람이 있었고, 희망을 나누려는 많은 사람들 덕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땅을 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자는 간절한 호소 앞에 빨간 딱지는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엔 혼란버스라는 신조어가 만들어 졌다. 행복도시울산만들기범시민협의회(행울협)는 “울산경제를 망치고 현대차 노사관계를 악화시킨다”며 희망버스를 혼란버스라고 규정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가 희망버스를 막아야 한다”며 거들고 나섰다. 희망버스가 출발할 때 매번 등장하는 시비다. 절망버스의 재판이다. 그렇다면 절망을 직시해보자.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현대차에 책임이 있다. 2010년 대법원은 “자동차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서는 도급이 불가능하다”며 최병승씨 사건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했다. 이후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현대차의 불법파견 판결 기조는 유지됐다. 그런데 현대차만 불법파견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옛 파견법 고용의제 적용에 대해 헌법소원을 할 정도로 대법원의 판결에 여태껏 불복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서 대리인인 변호사도 불법파견을 인정했는데도 정작 소송 당사자인 현대차는 이를 부인한다. 6개월 만인 지난 6월 재개된 현대차 사내하청 특별교섭에서도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공식 인정하지 않았다. '사회적 공헌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사내하청 문제 해결에 임한다'는 종전의 입장 그대로다. 신규채용 방식으로 사내하청 직원 3천500여명을 정규직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법원이나 노동위원회 판정 결과에도 못 미친다. 자동차공정의 컨베이어벨트에서 도급이 불가능하다는 대법 판결에 근거하면 직접생산공정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판결의 핵심이고 법을 지키는 길이다. 금속노조·현대차지부·현대차사내하청지회는 8천5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2·3차 하청을 제외하면 직접생산공정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약 6천800여명 정도라는 얘기도 있다. 사실상 사내하청 정규직화 규모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하지만 현대차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쟁점은 또 있다. 근속연수 인정이다. 현대차측이 제시한 방안은 신규채용이다. 사내하청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현대차가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진행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최병승씨의 대법 판결처럼 고용의제가 적용되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된다. 경력은 당연히 인정된다. 이렇게 되면 그간 받지 못한 임금은 체불임금이 된다. 현대차측이 신규채용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이를 회피하려는 것이다. 결국 혼란은 현대차의 대책 없는 버티기에서 비롯된 것이지 희망버스가 조성하는 것은 아니 셈이다.

현재 현대차 사내하청 특별교섭은 고비를 맞고 있다. 금속노조가 파업을 벌인 지난 10일 이후 특별교섭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울산발 희망버스 이후 현대차 사내하청 특별교섭이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현재로선 비관적이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난관이 많기 때문이다. 또 7월 말 8월 초 휴가시즌이 지나면 사내하청 특별교섭은 시들해질 수도 있다. 현대차측이 정규직지부와의 교섭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9월 이후엔 현대차 정규직지부는 집행부 선거에 들어간다. 자칫 사내하청 특별교섭이 안갯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희망버스는 이런 비관과 절망을 직시하고, 넘어서기 위한 몸부림이다. 목숨 걸고 하늘 길을 오른 이들을 위한 응원이자 연대다. 현대차 정규직지부와 사내하청지회의 연대가 지속되길 바라는 굿판이다. 이에 공감한다면 희망버스를 타자. 최병승·천의봉을 응원하러 울산에 가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