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대 변호사
(법률사무소 로그)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가합503088 전보처분 무효 확인 등

사건의 경위
요즘 잘 나가고 있는 한 의류업체에서 있었던 일. 그 회사의 창립 멤버로서 이전 직장에서 사장의 부하이기도 했던, 그러니까 회사 및 사장과 보통 인연이 아닌 한 근로자가 ‘폐병’(폐결핵)에 걸렸다. 그러자 사장은 냉정하게도 그 근로자를 해고했다. 그런 해고를 순순히 받아들일 근로자는 없는 법. 그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그러자 그 사장은 그 근로자에 대한 해고를 취소하고 6개월간의 무급휴직 처분을 했다. 그 근로자는 그 처분도 부당하다고 주장하다가 노동위원회의 중재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화해조서를 작성했다. 6개월 뒤 종합병원이 발행한 진단서에 근로자의 폐결핵이 완치됐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으면 회사가 무급휴직을 취소하고 바로 근로자를 원직복직 한다는 내용이다.

위 근로자는 6개월 뒤 이와 같은 내용이 기재된 진단서를 회사에 제출했다. 그러나 회사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근로자의 복직을 거부했다. 이에 근로자는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근로자의 폐결핵이 완치됐다는 내용의 진단서가 제출됐으므로 근로자는 이미 원직복직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회사는 근로자의 질병이 완치됐다고 확정할 수 없고, 동료직원이 근로자의 복직을 적극 반대하고 있으며, 휴직기간 중 사무실에 출근했던 근로자가 동료직원들의 책상을 뒤지고 절취행위를 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근로자를 해고했다. 근로자는 해고를 당하면서 그 이전의 어느 시점에 이미 복직됐음을 확인받았다. 근로자는 사용자의 해고에 맞춰 ‘근로자 지위 확인의 소’를 ‘해고 무효 확인의 소’로 변경했다.

법원의 판단

이 사건에서 법원은 당연히 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근로자가 제출한 서울대학교 병원의 진단서 및 회사의 요청에 따라 한 사실조회촉탁의 회신 결과에도 근로자의 폐결핵이 완치됐고 전염성이 없다고 기재돼 있었기 때문에 법원이 달리 판단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법원은 근로자가 한 위자료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가 근로자에 대한 해고는 폐결핵 진단을 받은 근로자에게서 다른 직원들에게로 전염가능성 등을 지나치게 우려해 행한 것이므로 회사가 “오로지 원고(근로자)를 사업장에서 몰아내려는 의도하에 고의로 어떤 명목상의 해고사유를 만들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근로자는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 법원의 판결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복직이 된 것에 만족하고 향후 일만 열심히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근로자를 가만두지 않았다. 회사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근로자를 복직시킴과 동시에 경기도 외곽의 물류센터로 전보했다. 근로자는 그 전에는 서울 강남 본사에서 유통팀장으로 근무했다. 나아가 회사는 근로자에 대해 컴퓨터도 지급하지 않았고 전산 ID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근로자는 단순 물품정리 외에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근로자는 이 전보가 자신에 대한 회사의 보복조치로서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근로자는 회사를 상대로 전보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번에도 그 전보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 판단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 사건 전직발령은 그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 반해 신청인(근로자)에게 미치는 생활상의 불이익은 상당하다고 보인다. 또한 피신청인 회사는 이 사건 전직발령을 하는 과정에서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전직발령이 이뤄진 경위 등 기록에 나타난 여러 사정에 비춰보면, 이 사건 전직발령은 신청인을 피신청인 회사의 본점으로 출근시키지 않을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도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 전직발령은 정당한 이유가 없어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다.”

회사는 근로자를 본사로 발령했지만 그 발령은 가처분 결정에 따른 잠정 처분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근로자는 회사를 상대로 전보처분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근로자는 이와 함께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하지 않은 성과상여금과 직책수당의 지급도 함께 청구했다. 공교롭게도 그 사건의 재판부는 근로자에 대한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한 그 재판부였다. 그 재판부는 가처분 사건의 재판부와 동일한 이유로 위 전보 처분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근로자의 직책수당의 청구는 받아들이면서도 성과상여금의 청구는 기각했다. 회사의 성과상여금의 경우 지급기준이나 지급액수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그와 같은 성과상여금은 “장래에도 그 지급이 계속 이뤄질지 여부가 불확실해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회사와 근로자 모두 항소하지 않아 이 사건은 확정됐다. 결국 폐병을 이유로 했던 해고와 전보는 모두 무효임이 확인됐다. 근로자는 그 당연한 결론을 얻기 위해 2년간 피 말리는 법정다툼을 해야만 했다. 근로자는 승리했지만 전리품은 화려하지 않다. 겨우 자기 자리 하나 지켰을 뿐이다. 위자료도 지급받지 못했고, 사죄나 위로도 받지 못했다. 그에 반해 재판 과정에서 받은 상처는 매우 컸다. 사장은 그 근로자만 찍어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질병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를 아무 죄책감 없이 태연히 행했다. 또 동료들은 사장의 지시에 발맞춰 복직에 반대하는 확인서에 서명했다. 그 모든 게 21세기 대한민국 사업장에서 다른 이유도 아닌 폐결핵에 걸렸다는 이유로 한 근로자에게 행해진 일이다. 근로자는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자신이 언제까지 그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회사는 호시탐탐 그 근로자를 ‘찍어 낼’ 방도를 강구하고 있다. 무던하지만 현명한 근로자는 우리 시대의 상식에 의존한 채 하루하루를 감내하고 있다. 그 근로자의 소송대리인이었던 나로서는 그 근로자를 다시 만나지 않기를 간구하고 있다.

판결의 의미와 시사점

폐결핵에 걸렸다는 이유로 한 해고와 그 해고 이후의 전보가 부당함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법원은 당연히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런 점을 계속 확인해 줬다. 그러나 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이 근로자를 보호해 주지 않았고 판결 내용도 근로자를 위로해 주기에는 매우 미흡했다. 법원은 재판 과정 내내 이어지는 회사측의 차별적 언동을 제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회사측의 병원에 대한 사실조회촉탁 신청을 받아주는 등 차별행위를 승인하거나 묵과했다. 근로자가 결핵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업주가 취업을 거부하는 행위는 형사처벌을 받는 행위임에도(결핵예방법 제32조, 제13조) 그에 대한 경각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귀결은 근로자의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 것이었다. 회사는 근로자가 폐결핵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두 번의 해고와 한 번의 무급휴직을 감행했다. 노동위원회의 중재로 작성한 화해조서도 지키지 않았다. 두 번의 해고 중 한 번의 해고는 근로자가 ‘근로자 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한 이후에 행해졌다. 그런데도 법원은 회사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회사가 근로자에 대해 한 해고는 폐결핵 진단을 받은 근로자의 다른 직원들에 대한 전염가능성 등을 지나치게 우려해 행한 것이고 근로자를 사업장에서 몰아내려는 의도하에 고의로 어떤 명목상의 해고사유를 만들었던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판단은 정당하지 않다. 전염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병원 진단을 통해 수차례 확인됐고, 사장의 질병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감은 재판 내내 넘치게 표현됐다. 그 행위는 명백히 질병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였다. 사장은 비합리적인 자신의 신념을 근거로 근로자를 사업장에서 몰아내려고 했다. 그러한 행위는 불법행위의 요건에 너무나 적합하게 부합하는 것임에도 법원은 그와 달리 판단했다. 도대체 근로자를 해고함에 있어 그 외의 어떤 더한 고의와 과실이 있어야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미국의 변호사 앤드류 배켓은 자신을 해고한 법률사무소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거액의 손해배상을 받았다. 에이즈 환자라고 해도 함부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이 ‘필라델피아’에서 창조된 미국 헌법의 정신임을 영화 ‘필라델피아’는 강조한다. 우리는 ‘필라델피아’의 상징이 없어서인가. 다른 질병도 아니고 현대 의학이 거의 정복한 ‘폐결핵’에 대해서조차 거침없는 차별이 행해지고 있다. 법원은 그런 행위에 대해서조차 최소한의 위자료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잘못을 바로 잡는데 굳이 역사적 상징까지 동원돼야 할 필요성은 없다. 합리적 이성과 공감적 감성만 있어도 충분하다. 혹 내가 그 근로자를 소송대리인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때는 법원도 불법행위의 법리 뒤에 숨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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