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국가정보원이 그야 말로 핫 이슈다. 발단은 지난 대통령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해 특정 후보 당선을 도왔다는 것이 핵심이다. 새 정부 들어 야당의 이 같은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수사망도 좁혀 들었다.

그런데 불똥은 엉뚱한 데로 튀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느냐 아니냐고 여당이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그리고는 국정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당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무단으로 공개해 버렸다. 국정원 대선 개입 공세 차단을 위해 국가기관이 해서는 안 될 ‘국기문란’ 행위를 벌인 것이다.

여야가 국정원 댓글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합의했지만 아직까지도 조사계획서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정치적 공방을 벌이고 있는 동안 국정원은 급기야 지난 10일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사실상 NLL 포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과 국정원 개혁 요구에 대한 ‘맞불’인 셈이다. 그야말로 “국정원의, 국정원에 의한, 국정원을 위한” 국가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국정원 사태를 그냥 두고만 보고 있지 않다. 노동시민사회의 잇단 시국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국정원 개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또다시 조용하지만 뜨겁게 촛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 역시 이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정통성 위협을 받고 있다. 그는 노동시민사회의 목소리에 어떤 대답을 내놔야 할까.

전교조 탄압 배후 밝혀내고 국정원 개혁안 마련해야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

민주시민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국가권력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정면 부정하는 사태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국정조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농단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태 진실을 규명하고 관련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정원은 대선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하고 전교조 등 민주세력을 종북세력으로 몰아가며 공안조작을 주도했다. 이러한 의혹을 밝혀야 하는 시점에 당사자인 국정원이 나서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것은 국민의 심판을 피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의 국정쇄신을 요구하며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과 진보정당 소액후원을 했던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대대적 징계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었다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

이로 인해 부당해임된 교사 39명 전원이 교단에 복귀했지만 전교조를 탄압한 이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다. 교사 대량징계 배후에 국정원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철저히 수사하고 불법적으로 관여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통해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계, 국기문란 사건 예의주시하고 투쟁해야

김종인
공공운수노조·연맹
수석부위원장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개입한,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

국정원의, 국정원에 의한, 국정원을 위한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 정부는 이제 '박근혜 정부'가 아닌 '국정원 정부'라고 불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명백한 국기문란 사건인 만큼 명명백백하게 조사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본질을 가리기 위해 엄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논란을 일으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만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국정원에 의해 당선된 것이니만큼 퇴진해야 마땅하다고 보지만, 최소한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에 사과하고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것이다.

노동계도 잇따라 시국선언을 하고 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결국 국정원 정부의 민주주의 말살은 공공부문 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지금도 공무원노조, 전교조 등 공공부문 노조에 대한 탄압은 물론 비정규직·특수고용직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지 않나.

정부와 자본의 공격을 받다보니 노동계가 당장의 투쟁에 매몰돼 있는데, 이런 엄중한 국가적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 투쟁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규명에 앞장서야 

황완성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 의장

언론의 끈질긴 추적보도와 검찰조사를 통해 드러난 국정원의 국기문란 행위는 엽기적이다. 원세훈 전 원장 주도하에 세종시와 4대강 사업 같은 국정현안에 직접 개입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물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이나 시민단체, 노조를 '종북좌파'로 낙인찍었다.

국정원이 작성한 '박원순 제압 문건'이 대표적이다. 최근 밝혀진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범죄일람표'에 따르면 국정원은 심지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 폄훼하고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라고 비하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국가기관이라 부를 수가 없다.

특히 대북심리전을 담당하는 사이버팀을 가동해 18대 대선에 개입한 것은 '국정원 막장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다. 지난 대선이 어떤 대선인가. 약 108만표의 근소한 차이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도움을 받은 일 없다"고 강변하기 전에 검찰이 국정원 대선 개입에 공직선거법 위반죄를 적용한 것을 되새겨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민주주의를 유린한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국정원 개혁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무한경쟁 시대에 국가정보기관은 필요하다. 이번 국정조사를 통해 국정원을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내파트는 검·경에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회 안에 정보기관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NLL 논란을 포함해 이명박 정부의 선거 개입 여부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국정원 국정조사 생중계 투쟁해야 

이희완
민언련 사무처장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국가조직이 조직적으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중대한 사태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실을 보도하고 잘못된 점을 질책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말할 것도 없고 MBC·KBS·YTN까지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이들 언론은 국정원 사태가 발발할 당시엔 침묵하더니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는 매우 과학적이고 진실한 것처럼 보도했다. 국정원이 국면 전환을 위해 내놓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사태를 덮고 가려는 행위에 힘을 실어줬다. 실질적으로 언론은 국정원 사태의 공범자였다.

80년대 안기부 등의 보도지침이 있었는데, 지금의 방송사들은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스스로 충성맹세를 하고 있다. 일련의 사태는 이명박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 더욱 심화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국정원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 과정에서 책임자 처벌은 물론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번 국정조사는 반드시 생중계 돼야 한다. 노동계와 언론단체가 당장 이를 위한 투쟁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국민이 직접 나서 국정원 국정조사 압박해야 

박주민
변호사
(민변 사무차장)

국가정보원 사태의 본질은 법을 위반해서 민주주의의 기본을 훼손한 국기문란 사건이다. 이 사태에 대해 국회에서 국정조사 실시를 추진하고 있는 와중에 보여준 국정원의 태도도 심각히 우려된다.

국정원은 최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분석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는 것 자체도 큰 문제인데, 한 발 더 나아가 정책에 대한 의견까지 낸 것이다.

국가기관이 과거 대통령의 행위에 대해 정치적 평가를 내리고, 그 평가를 근거로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상황도 답답하다. 국정원 정치 개입 사태를 NLL로 물타기 하려는 새누리당에 휘둘렸다. 이제는 국정조사도 표류하면서 새누리당이 원하는 판대로 가고 있다. 여기에 야당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남은 방법은 국민들이 직접 나서는 것 밖에 없어 보인다. 여야를 떠나 국정조사를 실시할 수밖에 없도록 강력한 메시지를 국민들이 던져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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