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오 변호사
(법무법인 여는)

대상판결 / 대법원 2013도79 모욕

1. 사건의 경위
모 협동조합중앙회 소속 기간제 노동자가 2010년 7월10일 기간만료통지를 당한 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이 노동자와 전국사무연대노조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 해고하는 ○○중앙회”를 규탄한다는 식으로 1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1인 시위가 중앙회장을 비판하는 내용을 띠기 시작하자 회사의 인사노무담당자들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정규직 노동자인 부인을 2회 찾아가 남편을 말려 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 이에 부인은 남편 문제는 남편과 상의해 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그런데 이 해고자와 노조가 공영방송이 주최하는 ○○중앙회 홍보용 녹화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인 공문을 보내자 – 당시 ○○중앙회는 전산대란을 겪고 있었다 – ○○중앙회 인사담당간부는 또다시 해고자 부인의 근무처를 예고 없이 찾아갔다.

부인은 원치 않는 면담 후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된 해고자가 위 인사담당간부의 실명을 기재한 “인간의 탈을 쓰고 가족까지 괴롭히는 ○○○는 제정신인가”라는 피켓을 들고 위 중앙회 건물에서 총 13회에 걸쳐 1인 시위를 벌였다.

이에 위 인사담당간부는 이 해고자와 해당 피켓을 든 적이 있는 노조 간부 2명을 명예훼손과 모욕으로 고소했다. 검사는 의견표명의 문제로 보고 명예훼손이 아닌 모욕으로 약식 기소(이 해고자에 대해서는 200만원 벌금 법정형 상한)했는데 피의자들은 이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2. 인사담당간부(피해자)의 증언
주지하듯이 모욕은 친고죄로서 고소인인 인사담당간부가 1심 판결 선고 전까지 고소를 취소하는 경우에는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물론 인사담당간부는 고소를 취소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적대적인 증인이었지만, 인사담당간부의 가족에 대한 무리한심리적 위협행위를 근거로 정당행위를 주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피해자라고 하는 인사담당간부에 대해 증인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사담당간부는 이 해고자 부인을 찾아간 행위에 대해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건 이전 자신의 전임자 중에는 그와 같은 행위를 한 사람이 없고, 자신 또한 피고인이 해당 피켓을 들고 항의한 이후에는 단 한 차례도 그 부인을 찾아간 일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또 인사담당간부는 피고인은 해고자이므로 ○○중앙회에 있는 노조 사무실에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했다. 피고인의 부인에 대해서는 간부사원이어서 그와 같은 부탁을 계속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부인이 정규직 노조에 가입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사용자 이익대표자와 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었다.

3. 1심 법원의 판단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근거로 이 사건 피켓 시위를 정당행위(형법 제20조, 위법성조각)로 판단,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① 피켓 시위를 하게 된 동기 : 부인이 남편의 일로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인사담당간부가 직접 찾아와 피고인의 시위를 중단시키지 못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 해 부인이 상당한 압박을 느꼈다.

이를 전해들은 피고인이 그간의 부당함에 항의하는 차원과 장래에 더 이상 자신의 일로 부인을 압박하지 말라는 경고 차원에서 이 사건 피켓 시위를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② 표현의 수위 : 피켓에 적힌 표현 자체는 모욕적인 언사이기는 하나 피고인과 그 부인이 느꼈을 부당함과 압박감에 대한 항의 내지 경고 차원으로서는 그 표현 수위가 지나치다 할 수 없고, 특히 ‘가족까지 괴롭히는’ 부분은 객관적 사실에 크게 벗어난 표현도 아니다.

③ 표현의 방법 : ○○중앙회 본점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한 것으로 시위 방법에 있어서도 상당성을 벗어난 바도 없다.

④ 표현의 보충성 : 피켓 시위 외에 달리 부인에 대한 압박을 막을 다른 수단이나 방법을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인사담당간부가 ○○중앙회를 위해 피고인의 집회를 막으려고 한 것이므로 위 중앙회를 통해 인사담당간부에 대한 시정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점을 봤다.

4. 2심 법원의 판단 : 검사의 항소기각
2심 재판부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 사건 피켓에 적힌 문구가 다소 모욕적 표현이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문구는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표현으로 가족에게 압력을 행사해 헌법상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중앙회의 처사가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중앙회 건물에 출입할 수 없었고 인사담당간부나 소속 직원들 역시 피고인과 직접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항의 수단을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했다.

5.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취지에서 무죄를 선고한 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수긍이 가고, 거기에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하면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6. 결론
대상판결은 비록 다소 모욕적(실명을 거론하면서 “인간의 탈을 썼다”고 한 부분이 특히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이라고 하더라도 그 표현을 하게 된 경위 - 해고된 노동자를 압박하기 위해 사용자측이 해고자의 부인을 심리적으로 괴롭혔다는 사실 - 를 살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다.
노조활동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의 성격을 띠는 사용자측의 언행이 있다면, 비록 실명을 거론한다고 하더라도 그 언행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고, 또 너무 지나치지 않게 표현한다면 얼마든지 비판의 자유 영역 안에서 허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하나의 사례로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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