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정기훈 기자

‘노사관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세계대회가 2018년 여름 서울에서 열린다. 아시아인으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ILERA 차기 회장에 선출돼 2015년부터 3년간 ILERA를 이끌게 된 김동원(53·사진)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경영학과 교수)이 2018년 서울대회를 선두에서 지휘한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김 원장은 “노사정 모두의 성대한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노동계와 기업·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2018년 ILERA 서울대회 카운트다운

- 지난해 7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ILERA 세계대회에서 차기 회장에 선출됐다. 의장국 자격으로 2018년 ILERA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데.

“ILERA는 각국의 노사관계와 노동시장·노동법을 연구하는 세계 최대 학술조직이다. 66년 설립돼 스위스 제네바 국제노동기구(ILO)에 본부를 두고 있다. 37개국 노사관계학회가 가입해 있다. ILO가 예산과 인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학술기구인 동시에 공적기구 성격을 갖는다.

ILERA는 3년에 한 번 노사관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대회를 개최한다. 16차 대회가 지난해 7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다. 17차 대회는 201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개최된다. 이어 2018년 서울에서 18차 대회가 치러진다. 지난해 필라델피아대회에서 2018년 서울대회 개최가 확정됐다.

서울대회 유치는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의미다. 또 노사관계에 대한 우리나라의 학문 수준이 세계적 대열에 올랐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서울대회를 치러 내면 우리나라 노사관계 학문과 정책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의 전문가들조차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파업·화염병·고공농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 외신기자가 우리나라를 ‘죽을 때까지 파업하는 나라’로 묘사해 내가 직접 항의한 적도 있다. 서울대회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성숙도를 대내외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2018년 서울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우리나라 노사정 관계자들의 협조가 필수적일 것 같다.

“2018년 서울대회가 학자들만의 대회에 그쳐서는 안 된다. 노사정이 함께 성대한 축제로 만들어 내야 한다. 노동계와 기업·정부가 힘을 모아 주기를 당부드린다.

현재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중심이 돼 서울대회준비위원회를 구성한 상태다. 준비위가 노사정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후 ILERA 회장에 취임하는 2015년에는 서울대회조직위원회를 정식으로 발족해 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 2018년 서울대회에 중국의 노사 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국가의 노사관계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국가든 산업화 단계에서 노사관계가 폭발한다. 중국은 지금이 그렇다. 연간 1만건 이상의 노사분규가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ILERA에 가입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학회가 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인 89년에 설립된 것과 비슷하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주요 글로벌 업체들의 생산기지 역할을 해 온 중국은 13억이라는 엄청난 인구만큼이나 폭발적인 노동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중국 노동법률에는 ‘파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노동자들의 천국을 표방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노사가 싸우는 파업은 곧 자기모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법률에 파업이라는 단어를 포함할 것이냐를 두고 중국 사회가 10년 넘게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대 변화 따라 이동하는 노동운동 주체

- 최근 ILERA 유럽지역대회 참석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주목하는 노동의제는 문제는 무엇인가.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아직까지 유럽사회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쇠락해 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경기침체 여파가 노사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사관계학자 젤리 비써(Jelle Visser)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명예교수는 유럽의 노사관계가 갈수록 쇠퇴할 것이라고 어둡게 전망했다.

하지만 유럽에서 나타나는 노사관계의 침체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중국이나 인도·인도네시아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노사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각종 분규와 파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이민자단체나 청년·여성·고령자단체들이 법외노조로 노동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청년유니온이나 화물연대 같은 조직들이 무시 못할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맞게 운동세력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달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재심의가 마무리됐다. 올해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심의 과정에 참여했는데.

“올해 협상을 벌이면서 느낀 점은 근면위 논의가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번 논의가 타임오프 제도가 안착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본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에 있어 가장 후한 나라는 프랑스다. 반면 가장 박한 나라는 일본이다.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경우 근로자 150명당 1명씩 전임자를 두고 사용자가 임금을 준다. 일본은 전임자임금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타임오프 제도가 도입되기 전 우리나라는 노조 전임자임금에 있어 프랑스보다 후한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0년 1기 근면위 논의를 거친 뒤 프랑스와 일본의 중간정도 위치로 바뀌었다.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이 누르면 튀어오르는 법이다. 타임오프 제도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은 제도 안착 과정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봐야 한다. 2기 근면위는 노동계의 숨통을 일부 틔워 주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타임오프·복수노조, 노사관계 선진화 기여"

- 올해로 타임오프 도입 3년, 복수노조 도입 2년을 맞았다. 두 제도가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미친 영향을 평가한다면.

“두 제도 모두 노사관계 선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복수노조를 금지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마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 선택을 제한한 것과 같은 이치다. 당연히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에 위배된다.

여기까지는 노사의 평가가 일치한다. 다만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노동계는 창구단일화가 필요 없다는 입장이고, 사용자는 그 반대다. 그런데 어떤 제도든 노사 양쪽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지난 30년간 OECD 국가의 근로손실일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파업일수가 근로자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따라서 현재의 노조법은 복수노조 허용을 통해 형평성을 맞추고, 창구단일화를 통해 효율성을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 올해 상반기 산업현장의 파업발생건수와 근로손실일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파업지속일수가 길어지고,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의 비정형 분규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 대기업 정규직 노사가 15년 무쟁의 타결을 기념하며 유명가수를 불러 기념식을 벌인 비슷한 시기에 그 회사 비정규직이 분신하는 일이 있었다.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의 파업은 사라지고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힘든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의 분규가 늘고 있다.

80년대 우리나라 노조의 파업은 ‘파업건수와 참가자가 많고, 파업일수는 짧은’ 양상을 띠었다. 누구나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고, 그 때문에 망하는 회사도 없었다. 오늘날의 파업은 다르다. 비정규직·정리해고 문제를 끼고 있는 오늘날의 분규는 ‘파업건수와 참가자는 적고, 파업일수는 긴’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분규의 배경에는 회사의 경영사정 악화라는 어려운 숙제가 놓여 있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과 노사관계 학자들의 고민은 여기에 집중돼야 한다. 약화된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사회 양극화로 인해 철탑농성 같은 극렬한 투쟁에 내몰리는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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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원장은
93년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졸업(노사관계학 박사)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및 경영대학 교수(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현)
한국노사관계학회 부회장(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현)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현)
고용노동부 정책평가위원(현)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 차기 회장(President-El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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