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산업을 관통하는 세가지 경제법칙이 있다. 우선 ‘규모의 경제’다. 생산규모를 확대할수록 생산비용이 줄어든다는 경제법칙이다. 규모의 경제는 필수적으로 ‘범위의 경제’로 나아간다. 한 기업이 2종의 상품을 생산할 때 드는 평균비용이 다른 기업이 각 제품을 생산할 때보다 적게 드는 현상이다. 철도의 경우 여객과 화물 운송을 함께 할 때 범위의 경제효과가 커진다.

끝으로 ‘밀도의 경제’다. 단위당 밀집된 정도에 따라 단위비용이 감소하는 현상이다. 철도의 경우 수송수요의 밀도가 클 경우 적은 비용이 발생한다. 규모의 경제와 비슷한 효과가 발생한다. 철도산업은 이런 경제법칙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래서 네트워크형 산업이라고 불린다. 즉, 선로시설과 운송사업의 수직구조, 여객·화물·차량정비·부대사업이라는 수평구조의 유기적인 통합체라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철도산업발전방안은 이런 네트워크의 사실상 해체다. 국토교통부가 마련한 방안을 보면 수서발 KTX를 운영하는 자회사를 만들되 코레일은 지주회사로 탈바꿈한다. 코레일에는 여객 운송을 남기되 물류·차량정비 등은 자회사로 변경된다. 일부 적자노선은 민간사업자에 넘기되 여의치 않을 경우 지방자치단체 등 제 3섹터가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난 2004년 철도시설공단과 철도공사(코레일)로 수직적 분리를 한 데 이어 박근혜 정부가 운송사업을 쪼개는 수평구조의 해체를 추진하는 셈이다.

국토부는 이런 계획을 추진하면서 “민영화는 아니”라며 “막대한 적자를 줄이기 위해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경쟁체제는 높은 효율을 불러와 적자를 줄일 것이라는 얘기다. 국토부의 이런 판단이 철도산업에 독일까 약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철도산업엔 사약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얘기했듯이 철도산업은 규모·범위·밀도의 경제 효과가 나타난다. 국토부의 계획대로라면 이런 효과는 포기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보다 경쟁체제가 더 효율적이고, 적은 비용이 발생해야 하는 데 그렇지 않다. 한국철도와 다른 나라를 비교해 보자. 독일철도의 영업거리는 3만3천600킬로미터, 프랑스는 2만9천903킬로미터, 일본은 2만35킬로미터에 달한다. 반면 한국철도의 영업거리는 3천378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일본의 JR 북해도(3천179킬로미터) 수준의 영업거리다. 철도의 영업거리가 길어야 비용이 줄고, 수익이 늘어난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이다. 한국철도는 짧은 영업거리라는 한계를 안고 출발했기에 적자발생은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수직구조와 수평구조의 통합을 통해 규모·범위·밀도의 경제를 실현하려 한 까닭이다. 그런데 국토부의 계획은 이런 현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철도 선진국에 비해 짧은 영업거리를 가진 나라에서 여객노선과 화물·부대사업을 분리한다는 과욕을 부리고 있다.

사실 한국철도의 수익구조를 보면 고속철도만 남는 장사를 한다. 고속철도는 운임 단가가 비싸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여객선과 화물선은 운임이 싸기에 적자가 고질적으로 발생한다. 벽지를 드나드는 일반여객선이 대표적이다. 코레일은 고속철도에서 남겨 일반여객선과 화물선 운영에 돈을 댄다. 이른바 교차보조 한다. 정부는 일반여객선과 화물선의 낮은 운임단가를 위해 보조금(PSO)을 지원하는 데 이마저도 최근엔 줄이고 있다. 일반여객선과 화물선의 적자가 확대됨에 따라 코레일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코레일이나 철도노조가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것은 수서발 KTX 운영이었다. 코레일의 효자가 하나 더 는다면 수입이 늘어 타 부문에 교차보조도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송적자도 줄어들고 국민들이 감당하는 높은 KTX 운임 비용이 낮아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데도 국토부가 경쟁체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토부는 철도산업발전방안을 마련하면서 독일과 스웨덴 모델을 검토했다고 한다. 이들 나라는 지주회사 체제로 철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과 스웨덴은 철도의 상하 수직구조를 분리 또는 해체하지 않았다. 통합된 구조에서 지주회사체제를 운영한다. 독일은 구조개혁을 하면서 정부가 철도부채를 인수한 사례다. 막대한 부채는 코레일이 책임지되 팔과 다리를 분리시키려는 한국 정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 정부의 철도산업발전방안은 되레 수직과 수평구조를 해체한 영국을 닮았다. 철도 민영화 사례로 꼽힌 영국을 쫓아 한국은 수직구조를 분리시켰다. 박근혜 정부가 수평구조마저 분리시킨다면 영국과 매우 흡사한 구조를 갖게 된다. 국토부는 영국철도가 만성적자에서 탈출했다고 하지만 민영화 이후 영국정부의 철도 보조금이 두 배로 증가한 것을 볼 때 설득력이 없다. 국토부는 지주회사체제라 하지만 결국 민영화된 영국 철도와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한국 철도산업발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재통합 방안도 논의돼야 한다. 철도 선진국에 비해 짧은 영업거리와 높은 밀도를 고려할 때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으로의 상하 분리는 지양해야 한다. 상호 연계가 확대돼야 규모의 경제효과도 극대화되고, 안전사고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야 통일 이후 남북 철도, 대륙 철도로 나아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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