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연
변호사
(법무법인 여는
공공운수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2나38096 손해배상(기)

사건의 경위


홍익대에서 근무하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용역회사와 사이에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이른바 간접고용 노동자로서, 일상적인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0년 12월 노조를 결성했다. 그러다 노조 결성 후 재계약 시점인 2010년 말 원청인 홍익대로부터 용역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형식적으로는 용역계약이 만료됐다는 이유였지만 지난 수년 동안 계약이 무리 없이 갱신돼 왔고 계약만료시점을 앞두고도 어떠한 해지통보가 없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그것은 명목상의 이유일 뿐 노조를 결성하고 임금인상을 요구한 것이 실질적인 원인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용역계약의 해지로 인해 용역회사와의 근로계약도 해지됐다.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 노동자들은 총장실로 찾아가 항의하고 대학본부 건물 1층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은 2011년 1월3일부터 2월20일까지 49일 동안 계속됐다. 이른바 ‘홍대사태’였다. 이를 계기로 대학 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각계 각층의 비판여론이 빗발치면서 새로운 용역회사와 고용승계 합의가 이뤄졌다. 사태는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 했다.

재판의 경과

그런데 홍익대는 그해 5월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간부 등 6명을 상대로 총 2억8천만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홍익대의 주장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불법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교직원에게 비상근무 특별수당을 지급하는 손실을 입었고, 대학의 명예도 훼손됐다는 것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제14민사부)은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원고가 항소를 제기했고, 항소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13.5.22 선고 2012나38096)은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 이로써 홍익대 측은 1심과 2심에 잇따라 패소했고 상고하지 않음으로써 해당 판결이 확정됐다.

판결의 내용

가. 교직원 특별근무수당 손해배상청구 부분

재판부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려면 그 위법한 행위와 원고가 입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결과발생의 개연성, 위법행위의 태양 및 피침해이익의 성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대법원 2007.5.11 선고 2004다11162 판결 등 참조)”이라고 전제하면서 “①학교측이 점거농성 전인 2011.1.1경 이미 용역계약 종료에 따른 비상대책의 일환으로 교직원 등으로 하여금 특별근무를 하도록 한 점에 비춰 교직원들에게 지급한 특별근무수당이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으로 발생한 손해라고 인정하기 어렵고, ②학교측은 특별근무의 이유로서 ‘화재예방, 시설보호, 문서 및 서류보안, 기물훼손 및 망실방지’ 등을 들고 있으나, 피고들의 점거농성이 그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이지 않으며, ③원고가 경찰의 협조를 받지 아니하고 자력으로 피고들의 행위를 막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원고 스스로의 독자적·임의적 판단에 따라 취한 교직원들의 특별근무조치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을 피고들에게 전가할 수 없다”고 했다.

나.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부분

또한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불만을 표시한 것을 두고 명예훼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자신이 직접적인 사용자가 아님에도 근로자들을 해고한 것처럼 표현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했다는 홍익대학교의 주장에 대해 “법률적·형식적으로는 원고와 용역회사 및 용역회사와 근로자들 사이에 각각 별도의 용역 및 근로계약이 체결되고, 또 수급인인 용역회사의 경영판단 과정을 거쳐 우회적·간접적으로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이 결정되는 것이기는 하나, 사실상 원고의 의사가 상당한 정도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도급계약 체결·갱신 여부 및 도급계약의 내용에 용역회사 소속 근로자들의 계속근로 가능 여부와 급여 등 근로조건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용역회사 소속 근로자들이 원고의 용역회사에 대한 계약갱신 거절 내지 해지를 사실상 근로자들에 대한 해고로, 도급계약 조건 내지 도급금액에 관한 합의를 근로자들의 급여 등 근로조건에 관한 결정권 행사로 각각 평가한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이는 다툼의 대상이 되는 법률관계에 대한 법률적·규범적 주장 내지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그와 같은 법률적 주장·관점 내지 의견의 표현에 이른 것이 전적으로 일방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본 판결의 의의

본 판결에 새로운 법리가 포함돼 있지는 않다.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불법행위만으로는 부족하고 불법행위와 손해 사이에 법률상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손해배상법의 대전제이고, 이러한 전제에서 법원은 노조의 단체행동에 대해 사용자가 임의로 지출한 비용에 대해 여러 차례 그 배상책임을 부정한 바 있다(대법원 2011.6.24 선고 2009다35033 판결, 울산지방법원 2004.10.14 선고 2001가합2347 판결 등). 다만 사용종속관계와 근로계약관계가 분리돼 사실상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원청에 대한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까닭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단체행동 대부분이 불법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형사상 업무방해죄의 성립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의 성립을 구분하고 상당인과관계를 엄격하게 판단함으로써 원청 사용자의 무리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본 판결은 그 자체로 귀중한 선례가 될 수 있겠다.

나아가 명예훼손에 관한 두 번째 판시내용은 법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른바 간접고용관계에서 원청은 노동자들의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사실상의 결정권을 행사하면서도 노동법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에 대해서는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다”, “자신과 무관한 제3자”라고 주장하면서 사용자 책임을 부정하고, 심지어 “원청이 진짜 사용자”라는 주장을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법원은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공공연구노조 KISTI 비정규직분회의 원청 사용자가 제기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사건 등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다투는 표현을 명예훼손적 표현으로 보아 그 금지를 명한 바 있다. 그러나 본 판결이 적절하게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원청의 사용자성”은 법률관계에 대한 평가로서 사실이 아니므로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없고, 주장하는 사실관계에 허위사실이 포함되지 않은 이상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의 사용자성”을 다투는 것이 그 자체로 명예훼손으로 금지돼서도 않될 것이다.

나가며

본 재판 과정에서 홍익대는 자신은 용역회사와의 계약에 따라 용역을 공급받은 제3자에 불과하고 사용자가 아니므로 노동자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그들이 홍익대의 결정으로 일자리를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본 판결은 그러한 다면적 근로관계의 실질을 살펴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강화한 판결로써 타당하지만, 원청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는 소극적인 의미에 그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해마다 제2, 제3의 홍대 사태가 계속해 반복되는 상황에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사태의 해결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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