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10일 비교섭단체대표 연설을 했다. 이는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같은달 28일 6월 국회의 ‘이달의 발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심상정의 진보반성문이라고 불린다. 국회 발언의 전문을 심상정 의원 홈페이지에서 읽어봤다. 보수 시민단체야 종북논란 등 기존 진보정치가 ‘국민의 생명과 나라의 안위를 지켜야 하는 책임 있는 공당’으로서의 성실한 응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 반성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노동문제로 이 반성문을 읽었다. 국회 발언에서 심상정은 분명히 기존 진보정치의 노동문제를 반성했다. “그간 진보정당은 노동중심성 패러다임에 경도됐다는 비판, 대기업 정규직 정당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며 이는 “근거 있는 비판”이라고 인정했다. 앞으로는 “청년실업자·비정규 노동자·영세중소상공인·농민·여성·장애인 등 모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사회경제 대개혁에 나설 것”이라며 “진보정의당은 협소한 노동정치의 틀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경제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혁신정당으로 다시 서겠다”고 했다. 심상정의 반성문은 단순히 심상정 의원과 진보정의당의 반성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심상정은 이 나라에서 지금까지 진보정당은 대기업 정규직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었다며 청년실업자·비정규 노동자·영세중소상공인·농민·여성·장애인 등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되지 못했다고 했으니 이것은 이 나라에서 진보정치의 반성문인 것이다. 나아가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의 반성문을 써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노동운동을 지원해온 변호사인 나조차도 반성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도대체 어떻게 반성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래야 이 나라 노동운동도 그리고 나조차도 반성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 진보정치를 반성하고서 심상정 의원은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에 걸맞은 노동복지국가 플랜을 제시했다. 첫째, 매년 2천여명에 달하는 산재사망자를 줄이고 유해화학물질 사고를 예방하는 대책을 세워 생명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국민을 일벌레로 내모는 장시간 노동체제를 끝내고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저임금·불평등한 임금구조를 바꿔내야 한다. 셋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넷째, 여성이 일자리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출산·육아와 강하게 결합된 고용복지모델이 제시돼야 한다. 다섯째, 보편적인 복지시스템을 통해 시장화된 의료와 교육의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나는 읽고 또 읽었다. 도대체 어떻게 반성해야 하는 것일까. 기존 진보정치에서 수도 없이 주장해왔던 사항들이 노동복지국가 플랜으로 그대로 제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반성해야 한다는 것인가. 기존 진보정치가 대기업 정규직의 이해를 대변했다고 반성했지만, 이 나라에서 현대차·기아차 등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매년 수많은 산재사고를 당한다. 대공장일수록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자수가 많고 대규모 유해화학물질 사업장도 많아 그 사고 예방대책이 요구된다. 아직도 교대제와 초과근로의 대가 임금의 산정기준인 통상임금의 낮은 책정으로 인해 장시간 노동체제와 기형적인 임금제도로 고통 받고 있으며, 여성문제와 의료·교육의 공공성 확대를 통한 보편적 복지시스템의 확보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라고 예외가 되지 않는다. 모두 지금까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라는 이 나라 노동운동이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것이다. 심지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도 그렇다. 반성을 했다는데 반성의 결과 노동복지국가 플랜에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자신의 권리로 확보하고자 하는 사항들이다. 그러니 이 노동복지국가 플랜을 제시하겠다고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었다고 반성할 일은 아니었다.

3. 지난 10여년간 집중적으로 이 나라에서는 노조운동을 귀족노조운동이라고, 대기업노조 조합원을 귀족노동자라고 비난이 계속돼 왔다.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며 언젠가부터는 누구나 그렇다고 알고 있다. 처음에는 사용자단체나 사용자편의 보수언론의 말이었으나, 언젠가부터는 일반 시민들조차도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노동자와 노조운동조차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사용자가 만들어놓은 고용과 임금차별, 비정규직 등 노동자 내부의 차별이 크게 작용했다. 심지어 사용자조차도 비정규직을 말하며 정규직을 귀족이라고 비난해대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의 말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통용되고 있는 지경이다. 이 나라에서 오늘 비정규직의 문제 해결은 노동운동이나 노동운동의 정치라는 진보정치의 주장이 아니고 민주당을 넘어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마저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로 바라보면 진보의 당, 민주의 당, 그리고 보수의 당이 인식에 차이가 없다. 해결방법을 두고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오늘 이 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자·비정규 노동자·영세중소상공인·농민·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문제는 보수의 당이라고 해서 문제가 아니라고 보지 않는다. 이들의 문제는 이 자본의 세상의 질서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의 문제이다. 이 세상의 질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바로잡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오히려 보수의 당이 공약으로 내세우고 해결을 추진할 것이다. 새누리당의 대선공약집을 읽어보라. 이들 사회적 약자의 문제가 꼼꼼히 기재돼 있다. 만약 당신이 이들 사회적 약자의 문제 해결에 관심을 두고서 해결하고자 한다면 굳이 진보의 당이니 뭐니 해서 골치 아프게 진보정치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에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감시활동이나 당사 앞 집회나 시위를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지 모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회적 약자의 문제는 누구나 심지어 보수의 당이라도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보수의 당은 자신의 공약으로 내걸고 정책을 만들고 집행해 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열악한 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야 말로 노동운동이고 진보정치인 것은 아니다. 거기서 나아가 이 자본의 세상의 질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의 질서로 작동하는 세상에서 이 세상의 물질적 지배자 자본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노동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것은 보수의 당, 민주의 당에서는 공약으로 과제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노동운동이 그 노동운동의 정치만이 주장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이다.

4.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가 있다. 성서 마태복음편에 있다고 한다. 아침부터 일한 노동자나, 오후 늦게 일한 노동자나 그 노동시간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하루치 임금을 주었다는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다. 하느님 나라의 이야기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생존권 보장에 관한 이야기로 말해지기도 한다. 아침부터 일한 노동자는 항의했다. 이에 대해 주인은 하루 일하면 하루치 임금을 주겠다고 아침에 계약하지 않았냐고 말했다.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계약대로 지급한 것이니 뭐가 문제라는 것이냐고 한 것인데 이 포도원 세상의 질서는 바로 오늘 우리의 세상의 질서이다. 노동하고 임금 받는 것이 자유 계약이라고 보이지만 실제는 주인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사용하고 임금을 지급하면 되는 주인의 세상이다. 임금으로 생존해야 하는 노동자는 주인이 정하는 대로 12시간 노동을 해야 하고 주인의 의지에 따라 1시간 노동한 자와 동일한 대우, 임금을 지급해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다. 포도원이 천국인지 몰라도 그곳에는 주인이 있고 노동자는 주인에 복종해서 주인을 위해 일하고서 주인이 주는 임금으로 살아야 한다. 주인의 세상에선 주인은 평등의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평등의 원리를 적용하는 자이지 그와 노예, 노동자 사이에서는 평등을 말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세상처럼.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비정규직의 정규직과의 차별금지, 심지어 비정규직 철폐의 고용차별 금지까지도 노동자들 사이의 평등을 이 세상의 정의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우리 모두는 분노한다. 우리의 세상에서 노동하고 생산의 결과를 분배받는 모든 지점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는 동일노동 동일분배, 사업장에서 지배와 권한의 차별금지 등의 평등은 말하지 않는다. 이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주인에게 말해지는 평등은 주주평등의 원칙 등 그들끼리의 평등으로 말해질 뿐이다. 그러니 포도원 세상에서 평등이 주인을 제외한 노동자들에 대한 것인 듯 오늘 우리의 세상에서도 그런 평등만 정의라고 외쳐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평등의 창으로만 바라보면서 우리는 오늘 세상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5. 그러나 지금까지 노동운동이 말해온 것은 단순히 노동자 내부의 차별이 아니었다. 노동과 자본의 차별, 자본에 복종하는 노동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자본의 재생산 질서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 자체에 문제를 던졌다. 마태복음의 포도원 세상이 노동운동이 꿈꾸는 세상은 아니었다. 그것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든 아니든 노동자들을 균등대우하도록 하는 것만을 노동운동의 과제라고 설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근로기준법 제6조, 파견법, 기간제법 등 이 세상의 수많은 법이 이미 정하고 있는 이 세상의 질서이다. 그러니 노동운동은 이 세상의 질서에서 버림받은 사회적 약자의 문제 해결만을 과제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노동운동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위와 같은 자신의 과제를 던져야만 한다. 심상정의 반성문이 지금까지의 대기업 정규직 중심에서 벗어나 이른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광범위한 사회경제민주화세력의 당이란 전망을 갖겠다는 진보정의당의 전환선언이라면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칫 심상정과 진보정의당의 전향선언이라고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 심상정 의원의 반성문, 아직 나는 근거 있는 반성문이라고 읽어지지 않는다. 포도원 세상은 노동운동이 꿈꾸는 세상이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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