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조선소 노동자들이 대정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빅3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선소들이 도산위기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의 고착화된 위기는 개별적 노사관계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경련이 조선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호소하고 나선 이유다.

금속노조 조선업종분과위원회도 올해 4월 조선산업 구조조정 대책회의를 발족하고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홍지욱(49·사진) 금속노조 조선업종분과위 공동의장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정동 노조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정부는 노사정 협의체를 만들어 조선업 장단기 발전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선업 불황에 대한 고통을 개별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고, 정부가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홍지욱 의장은 노조 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대화하자"는 노조, 1년3개월째 침묵하는 정부

노조는 지난해 3월 정부에 '조선산업 발전전략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홍 의장은 "금속노조가 업종별 노사정 대화기구를 제안한 것은 처음"이라며 "지난해부터 답변을 기다려 온 만큼 정부가 무책임으로 일관할 경우 대정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조선업계는 정부가 조선업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입장이다. 2007년까지 호황을 누리던 조선업은 2008년 건조능력이 선박발주를 초과하는 공급과잉 사태에 직면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대신 중소조선소에 수천억원대의 '묻지마 투자'를 하면서 '수출 일등공신'으로 치켜 세웠다.

정부가 무대책으로 일관한 결과 중소조선소는 2009년 이후 20여곳이 도산했다. 계속된 경기침체로 발주물량은 줄고, 한국은 중국에게 세계 조선업 1위 자리를 내줬다. 빅3도 안전하지 않다. 홍 의장은 "빅3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가 바닥을 치면서 중소조선소가 해야 할 수주마저 대신하며 제 살 깎아 먹는 저가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이로 인해 중소조선소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제작 지불방식이 바뀐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공정 단계별로 20%씩 5회 균등분할 제작이 관행이었다. 그러다 막판에 60%를 몰아주는 헤비테일(Heavy-tail) 방식으로 바뀌었다. 조선소는 사채 등으로 배를 만든 뒤에야 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선업 불황, 재하청노동자에게 직격탄

홍 의장은 "경쟁국인 중국이 조선업 자금지원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과 대비 된다"며 "조선업 선진국들은 국책기관 보증과 민간은행 참여로 제작비용의 80%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공약했지만 논의에 진척이 없다.

조선업 불황에 직격탄을 맞은 이들은 비정규직이다. 지난해 6월 기준 한국조선협회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수직상승하던 조선인력이 2010년 처음 감소했다. 조선노동자가 감소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11년 만의 일이다. 인력감소는 비정규직에게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협회는 "지난 1년 새 조선업을 떠난 인력의 83.7%(7천515명)가 사내하청 노동자였다"고 밝혔다. 그나마 이들은 사정이 낫다. 4대 보험에 가입해 있고 체당금 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 미흡하나마 완충장치가 존재한다.

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재하청노동자는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이들은 물량팀 사내하청 노동자로 대부분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물량팀은 건설업으로 치면 '십장' 같은 제도다. 8~10명의 노동자들이 사내하청업체로부터 물량을 받아 일하고, 도급단가의 10~13%를 받아 동료들과 나눠 갖는다. 홍 의장은 “발주물량 변동에 따라 상시화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는 이들의 실태에 대해 관심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조선업 대규모 실업, 사회경제적 비용 유발

그는 이어 "조선업에서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면 지역경제를 넘어 사회경제적 갈등비용을 유발하게 된다"며 "조선인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일자리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홍 의장은 "정부는 조선업계의 고용과 전문기술·설비능력을 유지하면서 회생가능성이 있는 중소조선사에는 정책금융을 지원해야 한다"며 "조선업 경쟁력의 핵심인 숙련노동자를 잃게 되는 국가적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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