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아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전국 초·중·고등학교 현장에는 학교 선생님이나 행정직·기능직 공무원만 있는 건 아니다. 영양사·사서·조리사·조리원·교원업무보조·각종 강사·학부모코디네이터·사감 등 80여개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전체 교직원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20만명의 학교비정규 노동자(학비노동자)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학교장과 매년 근로계약을 갱신하며 수년씩 근무해 왔다. 하지만 학교장 마음대로 계약갱신이 거절되는 등 근로기준법의 최저기준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2007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시행 이후부터는 2년 이상 근무시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법 적용 회피를 위해 1~2년에 한 번씩 다른 학교로 옮겨 다니며 근무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해져만 갔다. 하지만 각 학교에 직종별로 1~2명씩 근무하며 분산돼 있는 그들로서는 해고를 당해도, 인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마땅히 항변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노동조합을 찾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2011년과 지난해를 거치면서 급격히 늘어 현재 4만~5만명 정도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단결하기 시작한 학비노동자들은 지난해부터 각 교육청과 교육부에 교섭을 요구하며 투쟁하기 시작했다. 학교장과 교육감이 서로 자기는 실질적인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교육감과 교육부를 상대로 단체교섭응낙 가처분 신청도 진행했다.

이에 법원은 국립학교는 국가가, 각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립학교는 지방자치단체가 사용자라고 판결했다. 따라서 단체교섭 상대방도 국립은 교육부, 지자체는 교육감이라는 점을 확인해 줬다. 물론 아직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지만 학비노동자들은 상당수 지자체에서 교육감과 교섭을 벌이고 있다.

학비노동자들은 지난해 11월9일 학교현장에서 최초의 총파업을 결행하기도 했다. 교원과 공무원은 안타깝게도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과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에 의해 쟁의행위가 금지돼 있다. 반면에 학비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적용받아 노동3권을 보장받는다. 이 때문에 전국 3천여개 학교에서 1만5천여명의 학비노동자가 참여하는 전국 단위 총파업까지 한 것이다.

필자가 그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월이었다. 학교에서 유령 같은 존재로 취급받고 인격적인 모독까지 감수해 가며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해 왔던 그들의 하소연을 접했다.

그로부터 1년6개월. 학비노동자들은 최근 국회와 교육청 앞에서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교육공무직법) 제정과 호봉제 도입을 위한 예산 통과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다음달 두 번째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1년6개월 사이에 그들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하소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당당히 요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된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달라지게 한 것일까. 스스로 노동자로 살면서도 노동3권 보장의 헌법 규정이 “뭣에 쓰는 규정인고”하며 십수 년을 보낸 그들이 고작 1년6개월 만에 노동3권을 행사하게 되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봐도 그 시작은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 가입으로 그들이 단결한 이후 더 이상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옆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수많은 동료가 있었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함께 싸워 줄 준비가 된 노동조합이 생긴 것이다. 그들에게 수만 명의 다른 조합원들과 노동조합이라는 든든한 일종의 ‘빽’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하기까지 이들에게는 많은 용기와 투쟁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이것이 그냥 우연히 생긴 단순한 ‘백그라운드'가 아님은 물론이다.

학비노동자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고, 노동3권을 온전히 행사하게 됐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그들을 접한 후 1년6개월, 그들을 보며 상상해 본다. 힘없는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3권을 마음껏 행사하는 그런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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