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공개변론이다. 여간해선 재판심리를 공개하지 않던 헌법재판소가 거의 다 기각시켜온 헌법소원사건을 변론까지 열고, 그것도 공개 법정에서 그 위헌 여부에 관한 변론을 진행하겠다고 통보했다.

지난주 나는 한 인터넷언론사 기자로부터 원고청탁을 받고서야 잊고 있었던 이 사건을 떠올렸다. 현대자동차 등 사용자들이 제기한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에 관한 헌법소원사건의 공개변론이 이달 13일에 헌법재판소에서 열린다고 떠올렸다.

얼마 전에 어떻게 준비하나 해서 주담당인 김 변호사에게 전화해서는 공개변론일 직전에 한다는 변론대응팀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다.

노동자는 이번 헌법소원사건에서 신청인도 아니고 피신청인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결과에 목을 매야 한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이번 헌법소원사건에 자신의 권리가 좌지우지될 수도 있는 이해관계인이다. 특히 김준규씨 등 기왕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직접적인 이해관계인이다. 이번 공개변론이 진행되는 헌법소원사건에서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나는 노동자의 대리인이라도 이번 헌법소원사건에서 직접 주된 변론을 하는 변호사는 아니다. 사용자의 대리인도 아니고 피신청인 국가의 대리인도 아닌 나는 그런 노동자들의 대리인으로, 그것도 10여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공동으로 선임돼 그 1인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비정규직파업투쟁 손해배상청구사건, 근로자지위확인사건 등에 묻혀 까맣게 잊고 있었다.

2. 고용의제. 도대체 그게 뭐라고 사용자인 현대자동차는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달라고 했다가 받아주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제기하고,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이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사건들을 수도 없이 기각하면서도 극히 예외적으로만 열었던 공개변론을 진행하는 것일까.

1998년 2월20일 제정돼서 같은해 7월1일부터 2007년 7월1일 개정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시행됐던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지금 고용의제가 문제되고 있는 옛 파견법이다. 이 법률 제6조 제3항은 근로자파견의 기간을 1년 초과하지 못하되 다만 합의로 1회에 한해 1년의 범위 안에서 연장하도록 한 제1항에서 정하고 있음에도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2년의 기간이 만료되는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것이 문제의 고용의제조항이다.

처음 사용자가 위헌주장을 해서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달라고 했던 것이 2010년 말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사건에서였다. 당시는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울산공장 사내하청 해고자 최병승씨에 관해 불법파견이라며 이 고용의제조항을 적용해서 사용사업주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라고 파기환송 판결이 나온 직후였다. 이미 2007년 6월 아산공장 사내하청 근로자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불법파견이고 2년 초과해서 근무했던 김준규씨 등 4인의 근로자는 현대자동차 근로자라고 판결한 뒤 이 사건이 서울고등법원에서 기일의 진행, 변경과 추정으로 변론준비절차와 변론기일을 오가면서 3년을 넘게 진행해오던 터였다. 그동안 서두르지 않던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곧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재판을 서두르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에 위헌 주장을 듣고서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나는 그 사건 재판에서 무슨 위헌이냐고 변론했다.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가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지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이 세상의 법이고 노동법이다. 파견은 그걸 부정하고서 서 있는 제도다. 예외적으로 허용된 그 부정(파견)을 부정하기 위한 고용의제가 위헌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서울고등법원의 재판부는 아산공장 김준규씨 등 4인의 근로자들은 2년 초과해서 불법파견으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근로자로 근로했으니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라고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은 위헌이 아니라고 피고 현대자동차의 신청을 기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기각되자 현대자동차는 곧바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고, 다른 사용자들까지도 냈다고 하더니 이제 곧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이 열리게 됐다.

3. 파견. 한마디로 말하면 노동자를 사용하도록 공급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 개념부터가 노동자는 주인이 될 수 없는 말이다. 그저 그를 고용한 사용자의 처분을 받는 말이다. 노동자를 고용한 사용자가 그 노동자를 사용하지 않고서 다른 사용자에게 보내서 사용하도록 노동자를 주고받는 인신매매의 법률용어다. 그것을 우리의 파견법은 당당하게 적법한 것이라고 정의해놓고 있다. 파견사업. 그 파견을 업으로 하는 것, 즉 노동자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공급해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말이다. 그야말로 노동자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서 다른 사용자로 하여금 사용하도록 해주고서 그 대가를 받아먹는 말이고 이것은 중간에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을 사업이라고 붙여놓은 인권개념 없는 법률용어다. 그것을 이 나라 법(파견법)은 허가 해주고 보장했다. 1998년 2월20일 대한민국은 파견법을 제정해서 노동자를 짓밟았다. 그리고서 2년 넘게는 사용사업주가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 사용하는 사용자의 근로자인 거라고 고용의제조항을 두었다. 그런데도 도대체가 무슨 위헌소송이고 그걸 무슨 공개변론까지 해보겠단 것인지. 요즘 페이스북을 보니 비정규 노동자들의 심란한 말도 보인다. 공개변론을 앞두고서 언론도 관련기사를 내고 있다. 무언가 심각하고 자칫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이 위헌이라도 될 수도 있는 듯 걱정을 하고 그 뒤 파장까지도 말하고 있다.

글쎄, 위헌이라니. 2010년 말 파견법의 위헌소송을 제기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파견법에 관해서 이제야 위헌소송을 제기하는가 보다 했다. 그러면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하지 않는데 어느 사업장 파견근로자들이 한다는 것이지 하고 궁금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파견법이 아니라 파견법으로 허용한 파견의 예외조항, 고용의제조항이 위헌이라며 사용자 현대자동차가 제기할 거라는 말을 듣고서 파견을 은폐해 온 위장도급행위에 이어 이젠 별짓을 다한다고 나는 실소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된 일인지 공개변론에 대해서 그저 실소하지 못하고 있다. 파견법이 제정되던 1998년, 이 나라 노동운동은 분명히 이 법이 노동자의 기본권을 짓밟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고용의제조항을 제6조 제3항에서 두고 있다고, 그만하면 노동자 권리를 위해서 된 것이라고 찬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고용의제조항은 고용의무조항으로 완화됐다. 오늘은 15년 전에는 불법이고 범죄였던 근로자파견이 이제는 당연한 노동법용어로 사용되고, 파견사업은 국가가 법으로 허용해준 사업으로 당당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나라에선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의 주인이 되지 못하니 다른 노동자권리를 짓밟는 제도처럼 이렇게 파견도 이젠 별일도 아니게 됐다.

4. 대한민국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도록 근로자의 근로조건 기준을 국가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2조 제3항). 이 하나의 헌법조항으로도 우리는 파견법의 문제, 이 나라 노동법의 문제를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 나라에서 위헌이어야 할까. 고용의제조항일까, 아니면 파견법일까. 어찌 보면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헌법에서 보장하도록 한 기본권, 근로의 권리를 외면하고 서 있는 법률에 관해서 너무 무심했다. 그것이 오늘 사용자로 하여금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을 위헌일 수도 있다고 착각하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공개변론을 하기로 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이미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저 모른다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래서는 이 나라에서 내일, 모레는 노동자의 날일 수가 없다. 노동자의 기본권, 근로의 권리를 짓밟고 서 있는 법률은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망가뜨린다. 이런 세상에선 노동자의 내일을 기약할 수가 없다. 모레 공개변론이 열리고 나서 언젠가 이 나라 헌법재판소는 고용의제조항에 관한 위헌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부디 헌법재판소의 그 결정이 대한민국 헌법을 심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이번에 공개변론은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조항에 관한 것이지만 그때에는 이 나라 노동자들이 헌법재판소의 존립 근거를 공개적으로 물어야 한다. 그때는 노동자는 단순히 이해관계인에 그치지 않고 심판자로 헌법재판소와 대한민국에 직접 말하게 될 것이지 모른다. 노동자는 사고파는 노예가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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