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7일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민주노총을 방문해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제의했다. 방 장관의 취임 후 처음이자 새 정부 수립 후 3개월이 지난 후였다. 이번 방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왜 이제야 민주노총을 방문하고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제안했는지는 더 신중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날 민주노총측이 말했듯이 지난 5일부터 열리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방 장관은 곧 참석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도 이미 상위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그 경제적 지위 상승에 어울리지 않는 노동조건을 가진 나라에 속한다. 이러한 사정은 현 정부와 노동부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때문에 이번 방문과 노사정위원회 참여 요구는 ILO 참석을 위한 명분 쌓기나 적어도 그것을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실제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총회 개막 연설에서 위기 시대의 전략적 대응을 강조하며 노사문제에 적극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적극 개입은 ILO 권고사항을 지키지 않는 우리나라 같은 국가들에게 강력한 압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이 회의를 계기로 ILO의 노사문제 개입뿐만 아니라 각국의 노사정 협의 정치도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나고 있다.

사실 시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것을 계기로 실질적인 노사정 협의 정치가 작동하고 노동계의 목소리가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면, 그것도 중요한 발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발전이 이뤄질 수 있는가는 이번 방문 회담의 내용에서부터 읽어낼 수 있다.

코포라티즘으로 알려진 서구 국가들의 노사정 협의 정치는 무엇보다 친근로자적 정당이 집권하는 것을 주요 성립 요건으로 하며, 일단 성립 후에는 동등한 3자의 협의가 제도화되고 성의 있는 자세로 임하는 것을 지속 요건으로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노동에 비해 자본이 강하므로 양자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친근로자적 정당이 집권해 노동의 요구를 수용하고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동등한 3자의 협의가 제도화돼야 친자본적 정부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이를 쉽게 폐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성의 있는 자세가 견지돼야 실제 협의가 이뤄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에서는 상대적 진보이지만 서구에 비해서는 자유주의적이거나 보수적인 정당들에 의해 노사정위원회가 성립됐다. 그로 인해 동등한 3자 협의 과정이 제도화되지 못했으며, 특히 정부와 자본은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때 동등한 협의와 성의 있는 자세는 이미 정해진 정책 보따리를 가져와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형성 과정에서부터 노사정의 협의를 거쳐 수용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방 장관의 이번 방문 회담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사업인 ‘고용률 70% 로드맵’에 대한 민주노총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든 정책 보따리를 들고 와 동의를 구하는 과거의 관행을 지속한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 통상임금에 대한 노동부의 행정해석을 비판하고, 전교조 설립 취소 추진 중단과 공무원노조 인정 등을 요구했다. 물론 방 장관은 이에 대해 일부 양보적 자세를 보이고 실무적 협의기구 설치 등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 정부가 새롭게 시도하는 노사정 협의 정치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노사정위원회 구조와 기능을 유지하는 한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미 정해진 정부의 로드맵을 따라갈 때 과거와 동일한 장애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진정한 노사정 협의 정치를 원한다면 이 잘못된 시작부터 바로 잡으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며, 민주노총도 단기적 요구들을 통해 정부의 정책 보따리를 정당화해주는 장기적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번 방문이 노사정위원회 재작동을 위한 첫 행동이라는 점에서 아직 그 추이를 두고 봐야 하겠지만,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것은 과거 노사정 협의 정치의 부정적 경험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노동계의 참여를 전략적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정부 정책 실현을 위해 동의를 동원하는 전술적 수단으로 선택한다면, 노동계도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전술적 수단으로 배치해야 한다.

전략적 수단이 전술의 형성과 실현을 위해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필수적인 상위 수단이라면, 전술적 수단은 전략의 일부나 특정 전술의 실현을 위해 언제든 선택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임의적인 하위 수단을 말한다. 그러므로 전략적 수단이 아니라면 참여와 탈퇴는 반복할 수 있고 그것은 전략적 오류가 될 수 없다. 다시 반복되더라고 그것은 오히려 정부의 동원 전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압력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동계의 현명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yungkee@ynu.ac.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