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
경제민주화
2030연대 대표

요즘 ‘일베’가 큰 논란이다. 이들은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보수적인 흐름을 주도하더니 최근에는 5·18 광주항쟁을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비하하고 왜곡하는가 하면 각종 반인권적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어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 갑자기 이 사회에 출현한 듯한 ‘괴물’들은 과연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일까. 마침 일본판 일베라 할 수 있는 일본 ‘넷우익’들을 추적한 르포가 책으로 출간돼 급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후마니타스)는 일본판 일베라고 할 만한 일본의 ‘넷우익’들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고 집요하다는, 거리로 나온 행동하는 보수라 이야기되는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 사람들을 추적한 르포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중국인들을 특권집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죽어 버려’, ‘벌레들’ 따위의 언어폭력을 서슴지 않으며 심지어 아이들이 공부하는 초등학교에 쳐들어가 마구잡이 행패를 부리는 그들의 모습은 간혹 일베가 귀여워 보일 정도로 두려움을 준다. 그러나 저자의 취재에 따르면 그들은 사실 일상에서 너무나도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아니 그들은 오히려 노동시장에서 소외되고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무언가 박탈당하고 소외된 젊은이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격차사회’ 일본의 다른 이면이 바로 넷우익이었던 것이다. 최근 여러 곳에서 분석한 일베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 일베도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작 나는 일본판 일베인 넷우익들의 스토리를 보면서 한국의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을 떠올렸다. 누군가들은 이런 연상에 뜨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청년유니온은 비정규직·아르바이트·실업자·취업준비생의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을 대변하고자 만들어진 노동조합이다.

그렇다 보니 청년유니온 조합원의 다수는 대부분 부당한 노동경험과 차별, 그리고 그 안에서 고립된 청년들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일상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알바생으로 힘겹게 살아가지만 또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공동체를 만나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물론 그들이 지목하는 사회의 기득권이 일베나 넷우익과는 다르지만 일상에서의 생활은 넷우익 젊은이들이나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들의 부당한 노동경험을 또는 가해지는 과도한 압박을 누군가가 대변해 주거나 해결해 주지 않았다면, 동일경험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청년유니온 조합원들 중 누군가들도 혹여 일베가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일본의 넷우익들이나 한국의 일베 또는 청년유니온은 모두 한곳에서 출현한 형제·자매일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무너진 곳에서는 조금 왼쪽에서든, 많이 오른쪽에서든 상관없이 무언가 변화와 충격이 나타나는 법이다. 그리고 무너진 곳의 풍경은 늘 비슷하다. 노동이 천대받고 기회가 공정하지 않으며 미래가 불안한데도 사회의 소수 기득권은 압도적이거나 안정된 부를 쌓아 가는 그 풍경.

따라서 우리가 관심과 눈길을 보내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들은 반인권적 행동을 반복하는 일부 철부지들이 아니라 비정한 노동의 현장과 생존의 투쟁에서 전혀 관심 받지 못한 채 고립 속에서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괴물이 되는 것 아니면 열패감에 시달리는 상처받은 영혼이 되는 것, 이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여 있는 이들이다. 지금 일베라고 지칭되는 이들, 그리고 역사교육이 부족하다고 지칭되는 그 세대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촛불소녀들이었고 88만원 세대가 됐다가 ‘새 정치’와 ‘닥치고 정치’의 근간이 됐던 이들과 다른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언제나 가장 큰 괴물은 노동의 가치와 기회가 배제된 곳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괴물을 양성하는 곳은 특정 인터넷 게시판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와 공정한 기회가 무너진 바로 우리 사회의 밑바닥이다. 만일 기성세대인 우리가 그들에게 "그나마 너희들이 지금 삼청교육대에 안 끌려가고 비정규직·알바로나마 전전할 수 있는 것도 과거세대의 피맺힌 투쟁 덕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역사교육 강화라는 것 말고 다른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 대답은 아마도 ‘민주화’와 ‘산업화’ 사이에서 모두 소외됐던 것, 바로 ‘노동’을 복원하는 데 있지 않을까.

경제민주화2030연대 대표 (haruka28@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