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 이야기를 처음 영화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다들 말렸어요. 과연 영화를 찍을 수나 있겠냐고. 지난달 촬영이 모두 끝나니까 이젠 이렇게 묻더군요. '과연 극장에 걸릴 수 있겠냐'고. 잘 보세요. 질문이 달라졌어요. 우리가 해낸 거죠."

영화 <또 하나의 가족> 프로듀서 윤기호(35·사진)씨의 요즘 일과는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와 함께 노조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가족>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후반작업과 배급·홍보를 포함해 제작비 10억원이 필요하다. 현재 준비된 돈은 6억원. 나머지 4억원을 위해 노조 사무실을 찾고 있다. 지난달 28일 윤 PD를 만난 곳도 서울 구로구 금속노련 사무실이었다.

"처음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 대기업 투자는 포기했어요. 그래서 제작두레를 시작했지요."

제작두레는 기부나 투자가 아니다. 영화를 보고 싶은 이들이 사전에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것이다.

"영화 촬영이 막바지였던 4월, 중도금 1억원 정도가 급히 필요했어요. 잠도 못 잘 정도로 고민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앳된 목소리의 주인공이 '투자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인천 부평에 있는 일반기업 대리였는데 같은 회사 과장과 함께 1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거예요. 공익을 추구하는 행복한 투자를 검토하다가 연락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뿐 아니다. 반도체연구소 직원이, 황유미씨처럼 삼성에서 일하다 산재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전남 광주의 한 슈퍼마켓 주인이 자발적으로 돈과 물품을 댔다. 공인노무사들도 '또 하나의 가족과 함께하는 노무사회'를 만들어 2천만원가량을 투자했다.

윤 PD는 "영화의 재미는 보증한다"고 강조했다. 충무로 바닥에서도 상업영화로 알아 주는 스태프들이 참여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로 선택한 이유는 재미 때문이에요. 삼성 백혈병 문제를 전혀 모르는 분들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60만명이 보면 손익분기점을 찍습니다. 그렇게 될 겁니다."

윤 PD는 <또 하나의 가족>을 대한민국 최초의 산업재해 블록버스터라고 소개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광화문 신에서 제작두레 참가자 200여명이 보조출연자로 등장하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윤 PD는 "다시는 황유미씨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며 "이 영화에 많은 대중들이 귀를 기울이고 공감한다면 끔찍한 산업재해도 줄어들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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