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고용률 70%. 시작은 좋았지만 과정은 논란의 연속이다.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30일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협약’을 발표했다.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였지만 핵심 중 하나는 시간제 일자리다. 협약문에서는 “노사정은 고용이 안정되고 불합리한 차별이 없으며 기본적 근로조건이 보장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확산에 적극 협조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무원부터 시간제 근무를 확대하고 공공·민간부문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원방안을 강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 발언으로 모두 확인된 바다. 박 대통령은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한창 진행 중인 지난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시간제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국무총리·경제부총리도 발언을 통해 시간제 일자리 도입에 힘을 실었다. 결국 노사정 협약도 정부의 의도대로 따라간 셈이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는 그 자체가 논란거리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일자리 정책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정부와 같이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도 결국 질 나쁜 비정규 일자리만 양산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결혼과 출산·육아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과 실업난으로 고통을 겪는 청년에게 차별 없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대안이 될 것이란 논리도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사회안전망이 철저히 적용되는 네덜란드 모델과 같이만 되면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 약인가 독인가. 당사자들을 포함한 각계의 입장을 들어봤다.

장시간 노동 부추기는 남성·외벌이 모델, 고용창출에 걸림돌 

이수영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심의관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고용률이 낮다. 그래서 고용률이 70%가 넘는 선진국을 살펴보니 시간제 일자리의 비율이 우리보다 높았다. 특히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 비율이 높았다.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여성노동자 가운데 시간제 비율은 18.5%다. 네덜란드(60.5%)·영국(39%) 등과 차이가 크고 가까운 일본(35%)과도 격차가 있다.

고용률을 높이려면 여성을 경제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진국의 경우 여성이 ‘0.5’의 소득을 벌면서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남자 한 명이 외벌이로 ‘1’을 벌기 위해 장시간노동을 내몰리는 현실이다. 이런 구조에서 선진국형 고용형태에 다가가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시간제를 늘린 후 이를 민간영역으로 확산시켜 나갈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가 성공할지 여부는 말 그대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발굴해 내는 데 달렸다. 직무 발굴 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다음주 발표되는 정부의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에 담길 예정이다.

시간제 일자리로 고용시장에 들어온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장기적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풀타임 노동자가 본인의 희망에 따라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파트타임 노동자가 본인이 원할 때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도록 선진국형 고용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이다

여성에게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 강요 뻔해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

박근혜 정부가 ‘시간제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교사·연구직·정보통신 분야 공무원은 대표적인 정규직 일자리다. 물론 정부가 시간제라도 임금과 복지에 있어 정규직과의 차별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여기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국 정규직 시간제를 정착하는데 아무 효과도 거두지 못하거나 외려 공공부문에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나는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시간제 정규직 발상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이명박 정부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임신·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시간제 일자리로 고용해 일도 하고 가정도 돌보게 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파트타임은 대표적 비정규직이며 아주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에 집중된 고용형태다. 늘어난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에게 집중돼 임신이나 육아기의 여성에게 시간제를 강요하고 승진 회피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고용형태에 따라 심하게는 두세 배씩 임금차별이 존재하는 우리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 네덜란드 같은 ‘선진국’에서 정착된 임금과 복지 차별 없는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을 수 있겠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95%가 여성인 학교비정규직을 비롯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먼저 ‘반듯한’ 일자리로 만들라. 양질의 일자리, 정규직은 늘리지 않으면서 시간제만 도입하면 더욱 심각한 차별이 양산될 것이다. 대책이 필요하다.

공직사회 또 하나의 비정규직 양산일 뿐 

윤선문
공무원노조
정책실장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는 직업공무원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직업공무원제는 공무원이 안정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게 정년을 보장하고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시간제 공무원은 그 어떤 수식어가 붙어도 직업공무원제를 파괴하는 것이고 공직사회 안정을 해치게 될 것이다. 업무의 연속성과 책임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적은 임금에 정규직 공무원과의 차별이 확대될 수밖에 없어 결국은 공직사회의 갈등을 키우는 고리가 될 것이다.

‘시간제계약직 공무원’·‘한시계약직 공무원’·‘시간제 공무원’ 그 어떤 명칭을 붙여도 이 모든 게 비정규직이고 불안정 일자리라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는 정부가 민간기업보다 먼저 솔선수범해서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한다면 현재 1천만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의 시간제 공무원이나 시간제 일자리는 탄탄한 사회적 대타협과 튼튼한 사회보장을 기반으로 시행한다. 우리나라같이 노조 가입률이 낮고 국민에 대한 사회보장이 빈약한 상태에서 정부나 자본가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방식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은 끝내 그 피해가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가게 될 것이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인지를 먼저 검증해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라고 확인된다 하더라도 노동자들과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법과 제도를 먼저 정비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일방통행하는 시간제 공무원 확대는 공직사회에 또 하나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부, 양질의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 만들어야 

박태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노동계가 시간제 일자리를 반대하는 이유는 질 나쁜 일자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시간 비례의 원칙을 확립하고 부분적으로 차별을 없애겠다고 하는데 미흡하다. 여기에 더해 고용보장·보너스·휴가·휴일·교육훈련 기회·승진 등에서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정부는 그냥 '양질의 반듯한 일자리' 개념보다는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로 봐야 한다고 본다. 아예 정규직화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네덜란드 모델'을 얘기하는데, 네덜란드 모델의 핵심은 정규직과 시간제의 전환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시간제 근로를 하다가 다시 전일제 근로를 원하는 사람은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정부가 명확한 방침을 밝히지 않았다.

앞서 2010년 유연근무제가 도입됐을 때 공무원노조가 승진 등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많다며 반대했다. 공무원노조가 우려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명확한 답을 내놔야 한다. 또 공무원과 공공부문에서 먼저 시행하려면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보다는 노사합의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공무원과 공공부문에서부터 '양질의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시행하면서 '시간제 일자리=나쁜 종류 비정규직'이라고 보는 사회적 인식을 바꿔 내고, 민간부분으로 확대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비례·차별금지·고용안정에 대해 법·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현장의 노사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치가 있다면 굳이 노동계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여성고용률 제고 위한 현실적인 고용정책"  

정용영
노사발전재단
좋은일자리만들기본부
컨설팅2팀 팀장

기대수명 100세,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화 시대에 따른 짧은 근로시간의 근무형태는 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선거 공약 중 하나는 고용률 70% 달성이지만, 지난 4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고용률은 59.8%에 불과하다. 따라서 청년일자리, 준고령자 일자리, 여성일자리 등 3대 일자리 정책 중에서 여성일자리 창출을 통한 여성고용률 달성이 현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고용정책으로 집중되고 있다.

한국 여성의 파트타임 참여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네덜란드 60%, 영국 40%, 한국이 18%로 현저히 낮다. 따라서 여성의 활발한 노동시장 참여를 유도해야 하며, 경력단절 인력에 대한 노동시장 진입의 새로운 기회제공을 해야 한다.

또한 장시간 근로환경 개선의 유도 효과와 인력시장의 재정립,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새로운 근무체계 등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노사발전재단에서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을 상회할 뿐 아니라 시급 6천300원 이상을 지급받고 있다.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의 전제조건은 4대 보험에 필수적으로 가입돼야 한다. 산업현장의 요구에 적합하고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경제활동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근무체계 개편 및 신규직무개발을 발굴·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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