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정
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회
법무법인 지엘)

대상판결/ 대법원 2013다200438 위자료

1. 사건의 경위

피해자들은 2008년 8월15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집시법 위반 및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돼 유치장에 수용됐다. 신체검사 직후 경찰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규정상 브래지어를 벗어야 한다고 강요했고 당황한 피해자들은 길게는 체포시한인 48시간 가까이 브래지어를 벗은 채 유치장에서 생활해야 했다.

경찰은 2008년 당시 이 사건에 대해 비판여론이 빗발치자 2009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브래지어의 위험성 유무에 대한 검증을 거쳐 착용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판정을 받아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하지만 2011년 6월 반값등록금 시위를 하다가 연행된 여성대학생에 대해 또다시 브래지어를 탈의하는 일이 자행됐다.

이같이 시국사건 여성유치인에 대해 모욕감과 굴욕감을 안기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브래지어 탈의지시를 하는 경찰의 관행이 계속되자, 2008년 유치장 수용 과정에서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받았던 여성 4명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법률적 도움을 받아서 2011년 8월1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 소송경과

소송 과정에서 국가는 브래지어가 자살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면서 탈의 조치가 합법적이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2003년 이후 국내 교도소·구치소는 물론이고 유치장에서도 브래지어를 이용해 자살을 하거나 타인을 위해한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 또한 교도소·구치소의 경우 여성 수용자에게 1인당 3개까지 브래지어 소지를 허용하고 있고 판매까지 하고 있음이 소송 과정에서 확인됐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경미한 범죄 혐의로 연행돼 자살이나 자해의 동기나 가능성이 애초에 없었으므로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 강요는 자살방지라는 규정의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행해진 매우 임의적이고 이례적인 조치로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였다. 브래지어 탈의 강요는 경찰이 구금된 여성에게 위축감과 수치심을 주려는 성차별적 폭력이었다.
또한 당시 피해자들의 탈의를 담당한 경찰은 법정에 출석해 피해자들이 브래지어 탈의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금시설 내에서 피해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강제적일 수밖에 없다.

1심 법원은 경찰의 여성유치인에 대한 브래지어 탈의 조치는 위법한 공권력행사로 정당화될 수 없고,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브래지어를 탈의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국가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를 일부인용 했다. 이에 국가가 항소했으나 항소심 역시 1심의 판단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9일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국가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3. 대법원 판결의 주요내용

대법원은 “국가배상책임에서 공무원의 가해행위는 법령에 위반한 것이어야 하고, 법령 위반이라 함은 엄격한 의미의 법령 위반뿐만 아니라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공서양속 등의 위반도 포함해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대법원 2009.12.24 선고 2009다70180 판결 등 참조).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2009.8.31 경찰청 훈령 제56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이 사건 호송규칙’이라 한다)은 경찰청장이 관련 행정기관 및 그 직원에 대해 그 직무권한 행사의 지침을 발한 행정조직 내부에서의 행정명령의 성질을 가지는 것에 불과하고 법규 명령의 성질을 가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므로, 이에 따른 처분이라고 해 당연히 적법한 처분이라고는 할 수 없고, 또한 위법하거나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오랜 기간 반복돼 왔고 그 동안에 그에 대한 이의가 없었다고 해 그 공권력 행사가 적법하거나 정당한 것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대법원 2001.10.26 선고 2001다51466 판결 등 참조). 그리고 과잉금지의 원칙상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목적달성에 유효·적절하고 또한 가능한 한 최소 침해를 가져오는 것이어야 하며 아울러 그 수단의 도입으로 인한 침해가 의도하는 공익을 능가해서는 아니 된다(대법원 2008.11.27 선고 2008다11993 판결 등 참조)”고 전제했다. 그리고는 원심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현행범인으로 체포된 원고들에 대해 피고 소속 여자 경찰관들이 유치장 입감을 위한 신체검사를 하면서 원고들에게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해 이를 제출받는 이 사건 조치를 한 사실 등을 인정했다. 그 다음, 그 판시와 같은 사정, 즉 브래지어가 자살이나 자해에 이용될 수 있음을 이유로 유치인으로부터 이를 제출받도록 규정한 경찰업무편람은 법규명령이라고 볼 수 없는 점, 행정명령에 불과한 이 사건 호송규칙도 유치인에게 불필요한 고통과 수치심을 주지 않으려는 취지에서 신체검사의 유형을 세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브래지어를 자살에 공용될 우려가 있는 물건으로 보고 언제든지 이를 제출받도록 한다면 그와 같은 취지를 몰각시킬 우려가 있는 점, 법무부 소속 교정시설 내 여성 수용자의 경우 1인당 3개의 범위 내에서 브래지어 소지가 허용되는데, 경찰서 유치장 내 여성 수용자를 그와 달리 처우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점, 브래지어를 이용한 자살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 유치인에게 피해가 덜 가는 수단을 강구하지 않은 채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이는 점 등의 사정을 들어, 이 사건 조치는 원고들의 자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이뤄지거나 원고들의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배려한 상당한 방법으로 이뤄진 것이 못 되므로 위법하다고 판단한 점에 대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위법성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4. 대법원 판결의 의미

이번 판결은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 조치가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경찰이 재량권을 남용해 자의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한 것임을 법원이 최종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유치인이 “혁대·넥타이·금속물 기타 자살에 공용될 우려가 있는 물건”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한 당시 경찰청 훈령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과 ‘유치장 업무편람’이 행정조직 내부의 행정명령에 불과하므로 기본권 제한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도 이번 판결은 위법하거나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오랜 기간 반복돼 왔고 그동안 이의제기가 없었다고 해 그 공권력 행사가 적법하거나 정당한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함으로써 경찰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피해자들은 2008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가 인권침해라고 진정을 낸 적이 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청장에게 브래지어 탈의 요구시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탈의한 후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보완조치를 강구하라고 권고함으로써 브래지어 탈의 자체는 문제가 없다며 면죄부를 준 바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향후 여성유치인용 조끼를 비치해 인권위 권고를 이행하겠다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즉, 이번 판결은 브래지어 탈의 자체가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임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국가인권위가 법원에 비해서도 인권감수성과 성 인지도가 얼마나 부족한지 새삼 일깨워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법원의 엄격한 법적 잣대를 통과하기 어려운 다양한 피해를 인권침해로 호명하고 구제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인권위가 이번 판결 후 인권 증진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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