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변호사
(민변 노동위원장·해우 법률사무소)

대상판결 / 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0도16827 판결 강도상해 등 사건

권영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해우 법률사무소)

1. 사건의 경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평택공장에서 옥쇄파업을 전개하던 막바지 무렵,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2009년 8월5일 오후 2시 쌍용차지부의 파업을 지지·엄호하기 위해 평택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주최의 결의대회 장소에서 육군기무사령부(기무사) 소속 신아무개 대위는 배아무개 요원과 함께 캠코더를 사용해 채증활동을 벌이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집회 참가자 10여명에게 붙잡혔다. 일부 집회참가자들은 이들 기무사 요원에게 신원을 밝힐 것을 요구했으나 끝내 함구하자 약간의 물리력을 행사하여 신아무개 대위가 소지하고 있던 가방과 캠코더, 휴대폰을 빼앗았다. 그 물건들 중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과 작전차량증, 그리고 이들 요원의 활동내역이 담긴 캠코더 테이프, 메모리칩과 수첩을 확보한 후 가방과 캠코더, 휴대폰은 현장에서 돌려줬다. 신분증, 작전차량증, 캠코더 테이프, 메모리칩, 수첩(이 사건 물건)은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의 이정희 국회의원에게 전달됐고, 이정희 의원은 같은달 12월 이를 근거로 국회 브리핑을 통해 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기무사는 일부 집회참가자들이 공무를 집행 중인 신아무개 대위에게 폭행을 행사해 이 사건 증거물품을 빼앗았다는 이유로 신아무개 대위를 피해자로 둔갑시켜 그로 하여금 사건 주변에 있던 피고인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와 강도상해죄로 고소하도록 했다. 검사는 신아무개 대위가 이 결의대회에서 행한 사찰행위의 존재와 내용에 대해서 일체 수사를 하지 않은 채 신아무개 대위의 고소장 내용대로 피고인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와 강도상해죄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2010년 7월23일 1심 재판부(재판장 임동규 판사)는 신아무개 대위 등의 공무집행이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강도상해죄를 적용해 징역 3년6개월의 중형을 선고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반면 2010년 11월18일 항소심 재판부(재판장 이성호 판사)는 1심 판결을 뒤집고 특수공무집행방해죄와 강도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상해부분에 대해서만 공동상해죄로 인정해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으로 피고인을 석방했다. 검사와 피고인의 쌍방 상고에 대해 2013년 3월14일 대법원은 모두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 사건의 쟁점
본 사안은 기무사 요원이 민간인 복장을 하고 민간인 집회에서 영상촬영 등 민간인 사찰활동을 벌이던 과정에서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집회 참가자들이 이들의 신분과 활동내역을 확인하기 위한 의도로 필요한 물건들을 빼앗은 행위가 강도죄를 구성하느냐를 두고 치열하게 다툰 사건이다.

참고로 기무사는 군수사기관으로서 원칙적으로 민간인을 수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기무사 요원의 민간인 사찰활동은 군사법원법을 위반한 범죄행위로서 적법한 공무가 아니다. 따라서 검사의 특수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기소에도 법원은 모두 이를 기각했다.

다만, 강도죄의 성립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이 갈렸다. 1심 재판부는 강도죄의 주관적 구성요건인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해 유죄라고 판단함으로써 강도죄에 대한 사회통념과 법 상식에 어긋난 판결이라는 비난을 받은 반면, 항소심과 상고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강도죄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강도상해죄가 성립하려면 먼저 강도죄의 성립이 인정돼야 하고, 강도죄가 성립하려면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 불법영득의 의사라 함은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할 의사를 말하는 것이므로, 영구적으로 그 물건의 경제적 이익을 보유할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점유의 침해만으로는 인정될 수 없고, 목적물 자체를 영득할 의사이든 그 가치만을 영득할 의사이든 적어도 소유권 또는 이에 준하는 본권을 침해하는 의사, 즉 그 재물에 대한 영득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1992. 9. 8. 선고 91도3149 판결 등 참조)고 했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채택 증거들에 의해 그 판시와 같이 피고인이 경제적 가치가 큰 캠코더, 휴대폰, 가방 등은 피해자에게 바로 되돌려줬지만, 기무사 요원인 피해자가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촬영하고 있던 사실을 확인하는데 있어서 유효·적절할 뿐 아니라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인 캠코더 테이프, 메모리칩, 신분증 사본, 수첩(이 사건 물건)만을 가져간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이 이 사건 물건을 임의로 가져간 경위와 그 결과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 등이 이 사건 물건을 가져 간 행위의 동기나 목적은 피해자를 배제해 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물건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물건의 존재와 내용에 의해 군수사기관인 기무사 요원의 민간인 집회·시위 현장에 대한 촬영사실 등을 증명하려는 데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에게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의 이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수긍할 수 있고, 상고이유에 주장하는 바와 같은 불법영득의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검사의 불법영득의사 주장을 배척하고 강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원심(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4. 강도죄에서의 불법영득의사에 대한 검토
가. 불법영득의사의 요부
강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타인의 재물을 강취하거나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케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형법은 강도죄를 절도죄와 같은 장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강도죄가 타인의 재물을 객체로 하는 범위에서는 타인의 점유를 침해함에 의하여 그 소유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절도죄와 본질을 같이한다. 다만 재물뿐만 아니라 재산상의 이익도 객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도죄의 주된 보호법익은 소유권을 포함한 재산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강도죄에서 대상이 재물인 경우에는 절도죄와 마찬가지로 ‘불법영득의 의사’를 필요로 하며, 대상이 재산상 이익인 경우에는 ‘불법이득의 의사’를 주관적 구성요건으로 한다.

1심 판결, 원심(항소심) 판결, 대상판결 모두 불법영득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나. 불법영득의사의 내용
1심 판결은 불법영득의사에 대해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이용·처분할 의사”이며 “일시 사용의 목적으로 타인의 점유를 침탈한 경우”에도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원심(항소심) 판결과 대상판결은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할 의사”라고 해 그 범위를 제한하고, 나아가 대상판결은 “영구적으로 그 물건의 경제적 이익을 보유할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점유의 침해만으로는 인정될 수 없고, 목적물 자체를 영득할 의사이든 가치만을 영득할 의사이든 적어도 소유권 또는 이에 준하는 본권을 침해하는 의사, 즉 그 재물에 대한 영득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물건의 점유를 침해하는 행위와 더불어 그 목적물 자체나 그 가치를 영득할 의사가 존재하여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1심 판결의 내용대로라면, 범죄의 피해자나 제3자가 재물이나 그 가치를 영득할 의사가 아니라 범죄의 증명 내지 범죄자의 도주를 막을 의도로 그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확보하더라도 반환의 의사가 없으면 모두 강도죄가 성립한다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타인의 물건을 단순히 이용·처분할 의사로 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할 의사, 즉 재물 내지 그 가치에 대한 영득의 의사, 재산권을 침해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강도죄가 성립한다는 원심(항소심) 판결과 대상판결은 법상식에 부합하는 판결이라 하겠다.

5. 결론

본 사안은 구체적 타당성과 유리된 1심 재판부의 형식적인 법 논리가 어떻게 본말을 전도시키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꿀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라는 범죄행위를 증명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물건을 빼앗았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강도상해죄를 적용해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접하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에 분노와 절망감으로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구체적 타당성을 도외시하는 법관의 태도가 어떤 끔찍한 결론을 만들어내는지 절감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상소심(항소심과 상고심)에서 강도죄에 대한 1심 판결의 잘못을 바로잡고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끔찍한 결론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우리의 사법절차가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권력기관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1심 판결을 담당했던 판사들이 국가기관에 의해 은밀하게 사찰을 당하게 된다면, 그 분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범죄자와 범죄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신분증과 범죄 도구의 탈취는 강도죄가 될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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