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통상임금이 문제다. 사용자들이 징징대고, 사용자를 대변하는 언론은 기업이 망한다고 떠든다. 대통령까지 나섰다. 지난 9일 미국 방문 중에 지엠회장이 “80억달러를 투자할 테니 한국정부가 나서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박근혜 대통령은 “지엠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대한 합리적인 해법을 찾겠다”고 대답했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이어 윤상직 산업통상부장관은 15일 “정기상여금이라도 통상임금에서 뺐으면 좋겠다”며 노골적으로 주문했다. 이제 통상임금은 국가경제의 문제가 돼버렸다. 대한민국에 대한 투자 여부를 좌우하고, 대한민국 경제의 앞날을 결정짓는 문제다. 방하남 고용노동부장관은 2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상임금 규정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하루 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노사정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노사정 대화를 제안했다. 과연 지금 이 나라는 통상임금이 문제다.

2. 어쩌다 통상임금이 이렇게 요란한 문제가 된 것일까. 무엇보다도 지난해 3월 금아리무진사건 대법원 판결이 있고 나서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의 산정범위에 속하는 임금일 수도 있다고 판결했다. 상여금은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그동안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서 당연히 제외하고서 임금을 산정해 지급해왔다. 그것이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속한다면 기존 통상임금액은 대폭 상승할 수밖에 없다. 상여금 외에도 고용노동부 예규 ‘통상임금 산정지침’은 복리후생명목 금품 등을 통상임금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는데 그동안 법원은 그 지급기준에 따라서 통상임금에 속할 수 있다고 판결해왔고, 소송 등으로 이 금품들도 노사 간에 다퉈왔다. 식대, 교통보조비, 휴가비, 선물비, 체력단련비, 귀성여비, 김장비, 돈육비, 개인연금보험료 등 사업장마다 제 각각인 복리후생명목의 금품들을 둘러싸고 그랬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통상임금은 소송을 통한 노사 간의 법정공방의 문제였다. 지난해 3월 정기상여금에 관한 금아리무진 대법원 판결까지도. 그런데 정기상여금까지도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속할 수 있다고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는 상황이 급변했다. 사용자들이, 경총 등 사용자단체가 겁을 집어먹고,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집중적인 언론공세를 펼쳤다. 이제 대통령과 장관까지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해결해야 한다고 나섰다. 법정공방은 법정외 공방으로 전개되고, 지금은 통상임금 문제가 이 나라에서 노동과 자본이 노동자권리를 두고서 결전을 벌여야 하는 지경으로 몰려가고 있다. 바야흐로 통상임금 전쟁을 앞두고 있는 형국이다. 고용노동부장관은 노사정 논의를 거쳐 통상임금규정을 둘러싼 해결책을 찾는다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이 나라에서 노사정의 논의 경험을 보면 통상임금 문제는 잘해봐야 노사정에 참여하는 노동계 중 절반만 그 논의에 합의하거나 아예 노동계 합의 없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게 될 절충안이 공익안이라는 이름으로 마련돼서 통상임금에 관한 법령개정이 추진될 것이다.

3. 수도 없이 말했듯이 통상임금문제는 결국 초과근로 문제다. 이 나라에서 세계 최장수준의 장시간근로가 문제다. 그걸 단축시키겠다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해오고 있다. 그런데 그건 다 빈껍데기 논의다. 장시간근로에 대한 대가를 말하지 않는 근로시간 단축의 논의는 거짓이다. 이 나라에서 장시간근로, 그것은 그 장시간근로의 대가 임금의 산정기준인 통상임금의 문제다. 극단적으로 말하겠다. 통상임금이 이 나라 노동자를 장시간노동에 몰아넣었다. 1일 8시간,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임금 일체를 기준으로 해서 법정외근로, 즉 초과근로의 대가를 산정해 지급하지 않았다. 갖가지 수당, 복리후생금품, 상여금이라고 제외하고서 지급해왔다. 사용자는 법정근로보다 낮은 근로의 대가를 지급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사용자에게는 새로운 생산시설에 투자해서 신규고용하는 것보다 기존 시설에서 장시간근로를 사용하는 것이 비용 및 위험을 절감하는 방법이었다. 이 나라 노동자는 사업장에서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근로시간에서도 전혀 주인이 되지 못한다. 철저히 사용자가 결정해서 명령하는 대로 복종해서 근로하고 있다. 아무리 최대의 사업장단위의 노조조직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이라도 그렇다. 회사 물량에 따라 사용자가 결정하는 대로 연장, 야간, 휴일의 근로를 하고, 수십 일의 연월차휴가가 있어도 그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서 시키는 대로 일해 왔다. 노동자가 주간에 1일 8시간, 1주 40시간만 일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일할 수도 없고, 사용자는 그렇게 일할 수 있도록 일을 시키지도 않았으며, 수십 일의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일하도록 해왔다. 그것이 사용자에겐 남는 장사였으니까. 예를 들어보겠다. 정기상여금이 750%이고, 성과상여금이 300%,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된 각종수당, 교통보조비, 휴가비, 선물비, 귀성여비, 체력단련비, 개인연금보험료 등이 150%인 사업장의 경우를 보자. 이것은 법정근로를 하면 지급해야 하는 금품이다. 사용자는 이것들을 제외한, 기본급에 몇 가지 수당을 더해 통상임금으로 정해서 근로기준법 제56조에 따라 50%를 가산해서 법정수당, 즉 법정외근로(연장, 야간, 휴일의 근로)의 임금을 지급해왔다. 법정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것 모두를 통상임금으로 해서 지급했다면 시급 통상임금 2만원에 50% 가산해서 지급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사용자는 1만원에 50% 가산한 것을 법정외근로의 대가로 지급해왔다. 시간당 1만5천원을 지급한 것이니 법정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2만원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해온 것이다. 연차휴가의 미사용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이른바 연차휴가수당을 보자. 이 연차휴가수당에 관해서는 판례는 통상임금의 100%로 지급하면 적법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위 사례에서 사용자는 시급 통상임금이라고 파악된 1만원에 8시간분, 즉 1일 8만원을 지급하면 되는 것이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업장에서 이렇게 지급해왔다. 물론 일부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으로 50% 가산해서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봐야 1만5천원이다. 그러니 사용자로서는 연차휴가 사용촉진이니 뭐니 해서 노동자에게 사용하라고 할 이유가 없다.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아서 연차휴가수당을 지급하더라도 시급 2만원 노동자를 시급 1만원으로 사용하는 것이니 사업장사정이 휴업해야 할 지경이 아니라면 오직 바보 사용자만 사용을 촉진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사용자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러니 통상임금이란 법정외근로, 즉 초과근로를 제값을 쳐주지 않고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임금제도란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나라 사용자만이 아니다. 미국에 있는 애커슨 지엠 회장까지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80억달러 투자를 무기로 대통령을 찾아가 해결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법정근로대로 일을 시키지 않고 초과근로로 장시간근로를 시킬수록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을 알고서 매력적인 자동차생산기지를 활용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이고 결국 해법을 찾겠다는 대통령의 말을 듣고서 ‘크게 안도’한 것이다.

4.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에선 노조만 모른다. 통상임금이 초과근로의 문제이고, 노동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모른다. 오늘 통상임금 문제는 자본과 권력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과 고용노동부 예규 ‘통상임금 산정지침’, 그리고 법원의 판례가 초과근로의 대가 임금의 지급기준인 통상임금을 협소하게 파악해서 법집행하고, 그에 따라 사용자가 사업장에서 운영해옴으로써 발생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고 지켜내야 했던 노조가 만든 것이기도 했다. 사업장 단체협약을 보라. 그것도 아니라면 회사 제규정을 보라. 그것마저도 아니라면 그 동안 지급관행을 보라. 기본급에 몇 가지 수당을 제외한 나머지 수당들, 복리후생명목 금품들,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정해 놓고서 지급해왔다. 노조가 그걸 합의하고 묵인하고 방치해왔다. 그 결과 세계 최장수준의 장시간근로의 나라가 됐다. 그래놓고서 노동시간 단축의 구호를 백날 외쳐봐야 소용없다. 사용자가 그걸 들어줄리 없고 잘해봐야 기존 물량을 보장하는 조건에서나 들어줄 수 있다는 구호였을 뿐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해봐야 단축 전 임금수준을 쟁취하지 못했으니 여전히 장시간근로로 확보해야만 했다. 이 나라에서 초과근로 사용에 대해서 사용자는 아무런 위법의식이 없고 부담도 없다. 거기서 노조가 외치는 노동시간 단축은 법정수당의 지급기준이 되는 기준근로시간 단축으로만 기능하도록 입법돼서 근로기준법은 시행됐다. 법정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이라고 내세우고 있는 나라의 노조가 사업장 조합원들이 초과근로를 상시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은 노조가 무엇이냐고 묻게 된다. 그런데 거기서 나아가 그 초과근로의 대가가 법정근로의 대가 임금을 기준으로 지급받지도 못하도록 합의하고 방치해왔다면 노조는 바보가 아니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나라도 말해야겠다. 통상임금 문제 해법 간단하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법정근로만 시키고 법이 정한 대로 휴가를 사용하도록 하면 된다. 그거 말고 어떻게 하겠다는 해결방안은 결국 상여금이다 뭐다 제외하고서 초과근로로 노동자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에게 보장해주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결국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확보하고 지켜내느냐 하는 것은 노조의 일이다. 이대로라면 정부는 법령 개정을 통해서 상여금 등을 제외하는 입법을 추진할 것이고, 노사정위원회니 뭐다 해서 이미 발생한 임금을 노동자가 포기하는 것을 대타협 운운하며 논의해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본과 권력이 무엇을 시도해도 장시간근로, 왜곡된 임금구조 개편, 그 모든 노동자의 권리는 언제나처럼 노조에 달려 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노조의 일이라고 대한민국 헌법 제33조는 선언하고 있다. 그러니 다가온 통상임금 전쟁은 다시 한 번 이 나라에서 노조를 묻게 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