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례 / 청주지방법원 2013.4.11.선고 2012고단2521 2013고단409(병합) 판결

 

 

유성규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참터)

1. 사건의 개요

지난해 8월 청주에 위치한 화학공장에서 1,4-다이옥산이 들어 있던 드럼통이 폭발했다. 그 자리에서 26세의 청년이 사망했고 그 다음날부터 차례로 7명의 노동자가 사고의 여파로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들 이외에도 총 3명의 노동자는 전신에 42~56%에 이르는 화상을 입는 부상을 당했다. 재해노동자들은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었고 최고령자가 41세에 불과했다.

청주지방법원 판결문에 적시된 사고의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회사는 작업의 안전 점검을 확인하고 근로자의 보호구 착용 여부를 확인하는 등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안전 및 보건 점검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작업자들에게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도록 하고 작업을 시켰다. 또한 회사는 필요 최소 인원 이상의 노동자들을 작업 공간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정전기로 인한 폭발 가능성을 높게 했다. 결과적으로 1,4-다이옥산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1,4-다이옥산의 유증기가 불상의 원인에 의한 정전기가 결합해 1,4-다이옥산이 들어있던 드럼통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회사가 안전 및 보건 점검 업무만 충실히 했어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재에 가깝다. 법원은 재료담당 상무이자 안전보건관리책임자였던 OOO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에 처하고, 재료생산팀 팀장이자 관리감독자였던 △△△을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에 처했다. 또한 재료생산팀 팀장이자 안전간사였던 □□□을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에 처했다. 한편 (주)□□□□ 법인에 대해서는 3천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최고경영자이자 실질적 의사결정권자인 대표이사의 경우 검찰이 수사 단계에서 기소를 하지 않아 법원에서는 다투어지지 않았다.

2. 산재사망 사고에 대한 법원의 관대한 태도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냉동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9명의 노동자가 부상했다. 당시 법원(1심 수원지법 여주지원 2008고단105, 2008고단53, 2심 수원지법 2008노3449)은 원청대표와 원청회사에 각 벌금 2천만원을 선고하고 원청 현장소장 등 관리자들에게 집행유예나 벌금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동자 목숨값이 50만원이냐는 거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법원은 산재사망 사고에 대해 소극적이고 관대한 입장을 취하곤 했다. 관대한 법원 덕택에 산재사망을 야기한 많은 사업주들이 벌금 몇 푼만 내면 모든 형사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노동자가 불에 타죽고, 떨어져 죽고, 팔 다리가 잘려 나가도, 정작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업주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법원의 관대한 태도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된 주요 산재사망 사고 처벌 현황에서 쉽게 확인된다.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원청업체(회사법인)의 경우 벌금 액수가 최대 3천만원이었고 통상 1천만원 미만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원청대표는 3명의 노동자가 사망해 벌금 700만원을 받은 OO조선소 사건을 제외하고는 산업안전보건법은 물론 업무상과실치사죄로도 처벌받지 않았다. 원청 소속 관리자들이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처벌되는 경우는 있었는데, 벌금형은 대부분 1천만원 미만이었고 징역형인 경우도 모두 집행유예였다. 하청업체나 직접수행업체의 경우에는 벌금의 액수가 대부분 100만원 미만이었다. 업체 대표와 현장소장은 벌금형의 경우에는 대부분 500만원 미만이었고, 징역형의 경우는 모두 집행유예였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법률에 의한 처벌의 중요 기능은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 외에 다른 사용자들에게 자발적인 예방조치를 강구하도록 촉구하는데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솜방망이 처벌은 사용자들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어떤 교훈도 주지 못하고 있다.

3. 대상 판례의 의의

대상 판례가 기존 판례의 틀을 크게 뛰어 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의무에 비춰 책임 여부를 꼼꼼히 검토하고 있다는 점, 상무를 비롯한 안전보건관리체계상의 책임자들을 징역형 내지 금고형에 처해 처벌 수위를 높였다는 점, 회사 법인에 대해서 노동자 40명이 사망한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사건의 2천만원보다도 많은 벌금을 내렸다는 점 등은 주목할 만하다.

기존 판례와 가장 구별되는 점은 산업안전보건법을 대하는 태도다. 기존 판결문들을 읽다보면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산재를 야기한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한 법규범이 아닌 사업주 계도를 위한 법규범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기존 판결문에서는 산재를 야기한 사업주들에 대한 엄중한 응징의 메시지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교통법규를 위반한 운전자에 대해 범칙금을 부과하는 느낌을 받을 뿐이다.

반면 대상 판례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기업들에 대해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판결문에 적시된 내용이지만 의미를 되살리고자 원문 그대로 다시 옮겨 본다.

“대기업은 새로운 재료를 경쟁적으로 생산하고 이익을 추구하기에만 급급했고 새로운 공정에 관해 엄격하게 안전점검을 하거나 안전수칙을 세우고 관련 교육을 하는 부분은 소홀히 해 위와 같은 엄청난 희생이 따르게 되었는 바,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앞으로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개발과 경쟁 논리에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기를 기원한다.”

물론 대상 판례의 한계도 있다. 기업의 최고 책임자이자 실질적 의사결정권자인 대표이사가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았으므로 법원은 달리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기소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은 사업주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에 있어서 직접적인 행위 책임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책임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문에서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판결문의 논리에 따르면 사업주가 처벌되기 위해서는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도록 지시했거나, 이를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등의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처벌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참고적으로 이번 사고를 수사한 청주지방검찰청이 이 사건 (주)□□□□의 대표이사를 기소하지 않은 논거 역시 아래 판결문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사업주에 대한 구법 제66조의2, 제23조제3항 위반죄는 사업주가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구법 제23조제3항에 규정된 안전상의 위험성이 있는 작업을 규칙이 정하고 있는 바에 따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하도록 지시하거나, 그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는 등 그 위반행위가 사업주에 의해 이뤄졌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성립하는 것이지, 단지 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위와 같은 위험성이 있는 작업이 필요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07.3.29. 선고 2006도8874판결, 대법원 2008.8.11. 선고 2007도7987 판결, 대법원 2011.09.29. 선고 2009도12515 등 참조)


4. 결론을 대신해

‘노동자 1명의 생명과 건강을 사전에 지켜내는 것’과 ‘산재가 발생한 이후에 보상을 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이윤추구의 측면에서 기업에게 유리할까? 적어도 2013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후자가 유리한 듯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단순한 캠페인이나 계도는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기업은 태생적으로 이윤추구를 최우선 과제로 삼기 때문이다. 기업 스스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지 못하면 이윤이 감소되고 존립조차 위협받은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이 만들어진다면 기업은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전력투구하게 될 것이다. 기업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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