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
경제민주화
2030연대 대표

15년 전 필자가 다니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제법 놀 줄은 알지만 영 학교공부에 소질이 없던 친구들 중 다수는 3학년 여름이 다가오면서 하나둘씩 반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새로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대학진학을 일찍이 포기하고 취업을 위한 현장실습생이 돼 인천의 한 공단에 있는 공장으로 갔다. 고3 시절 내내 두세 달에 한 번 정도나 학교에 잠깐 얼굴을 비치던 그 친구들은 졸업식이 돼서야 그나마 몇 명 정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졸업식 때도 소식을 알기 힘든 친구들이 더 많았다.

‘현장실습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 존재해 왔던 독특한 형태의 ‘청(소)년 노동자’들이다. 필자의 학창시절 기억처럼 대학진학률 때문에 분모 숫자를 줄여야 하는 인문계 학교들 외에도 특성화고 등에서는 일상적인 교과과정이다. 2011년 광주의 한 자동차공장에 실습을 나간 고등학생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그 때문에 현장실습생들의 노동권 문제가 조금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러나 얼마 전 정진후 진보정의당 국회의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현장실습생들에 모였던 사회적 눈길은 아무래도 잠깐의 껌벅거림이었나 보다. 조사 결과 학생들 중 43%가 현장실습을 그만두고 싶다고 답했으며 42%가 전공과 상관없는 곳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광주에서의 사고 이후 휴일실습·연장실습을 교육부가 금지시켰음에도 2년 새 오히려 더 늘어났다고 하니 현장실습생들의 노동조건이 오히려 악화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노동계에서는 현장실습생 문제라고 하면 보통은 특성화고 고등학생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의 양상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학기 중 또는 방학을 이용해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3개월씩 각종 노동현장으로 실습을 나간다. 장기화된 고용한파 속에서 그나마 취업률이 높은 학과들은 각종 자격증이 있는 기술직이다. 치기공사·치위생사·간호사·귀금속세공사·미용사 등 관련 대학교 학과에서는 대부분 학과과정에 현장실습을 최소 한 학기에서 1년 정도를 두고 있다. 여타의 학과에 비해 이런 학과들은 취업률이 그나마 높은 만큼 현장실습이 연계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또 노동의 문제가 발생한다. 고등학교 현장실습생들이 노동의 대가를 작게나마 받는 반면 이들 대학생 현장실습생들은 대부분 무급으로 현장에서 일한다. 현장실습이 교육과정의 일환이라는 것이 설명이다. 무려 3개월 가까이를 무급으로 관련 현장에서 똑같은 출·퇴근과 때로 야근을 하며 노동하고 심지어 배정받은 실습현장이 집이나 학교에서 먼 경우 근처에 고시원이나 모텔에 숙박하며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의 대가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한 학기에 많게는 500만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내고도 무급으로 수개월을 관련 현장에서 일하며 추가로 고시원비나 생활비를 들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대학이나 고등학교와 관련 현장기업 간에는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갑을 관계’가 작동하기도 한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필요한 시간만큼의 현장실습을 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관련 기업들에 부탁해서 실습현장을 확보해야 하는 학교들의 입장에서는 해당 현장의 노동조건이 아무리 문제가 많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학생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애로사항이 존재한다. 사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이 영역이야 말로 행정과 제도가 개입해야 하는 곳이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노동하는 현장실습에서 수십 년째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현장실습’이라는 것이 ‘교육’과 ‘노동’의 경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장실습생들은 교육을 받으러 온 ‘학생’이지만 현장에서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쪽 측면으로만 접근해서는 풀기가 매우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가장 큰 착취는 보통 ‘경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성에 대한 판단이 명확하지 않은 소위 특수고용직의 문제나 ‘진짜 고용주’가 불분명한 파견, 사내하청 등의 비정규직 문제를 보더라도 자본은 대부분 모호한 경계를 만들어 놓고 무법지대인 양 노동권을 소외시켜 버리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현장실습생이라 불리는 청(소)년 노동자, 또는 학생들도 그렇게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모호한 경계 속에 너무 오래 동안 방치돼 있었다. 이제 수많은 청(소)년 들이 방황하고 있는 그 모호한 곳에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제대로 된 ‘규칙’을 세우는 것에 우리 사회가 책임과 역할을 해야 할 때다. 나는 진심으로 누군가의 학교 친구가 졸업사진에 친구들과 함께 웃고 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한다.

경제민주화2030연대 대표 (haruka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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