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장학사가 온다고 전교 학생들 모두 일주일 전부터 쓸고 닦고 윤을 내며 청소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높으신 장학사가 다녀간 다음날 시끄럽게 떠드는 우리를 향해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장학사님이 광산촌에 사는 너희들 불쌍하다고 잘해주라고 했으니까 나 화나게 좀 하지 마라.”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이 문장은, 문제가 많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딱 한 가지에 집중하며 당황해했다. 광부의 아이들은 왜 불쌍한 걸까. 아직 ‘모욕’이라는 말을 모르던 때 나에게 불쌍한 아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말이 틀렸다는 생각보다는 선생님의 저 말에 내가 왜 불쾌하고 창피한지 알 수 없어 오래 생각했다. 나는 왜 불쌍한 아이일까.

눈물을 닦고 코를 풀며 책을 읽다가 ‘아, 나는 차별에 참 익숙하구나’ 하고 문득 깨달았다. 내 생의 많은 시간, 여성이라고 차별 당했고 광부의 딸이라서 불쌍한 아이였으며 가난해서 위축됐다. 생산직 노동자 중에도 비정규직이며 심지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상태는 흔히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러고 보니 마흔두살, 차별받는다고 느낄 때마다 그것에 일일이 저항하며 살아낸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웃어 버렸다. 살려니 어쩌겠어.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인권운동사랑방 엮음·오월의봄, 사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감염인 민우의 이야기다. 언뜻 보면 민우는 차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상황을 잘 통제하고 있으며 평범한 한 사람으로 잘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에 집중하며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엄격하다. 나도 차별받지 않아 마땅한 사람인데 차별받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정상의 사람인지 확인시켜야 하는 역설의 고통을 민우는 잘 보여준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고 전체의 이야기를 통해 민우는 호소한다. 그 고통이 거기에 없는 듯이 여기는 질서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고, 민우가 말하지 않은 행간의 밀도가 높아 막막했다.

승민, 희수, 수민, 정현, 타파, 이숙, 민우, 서윤, 영석이 말한다. 구체적인 차별의 삶을 들은 다음 수신확인을 해 몽, 김준우, 허오영숙, 김일란, 석진, 진경, 토리, 깡통, 나영, 미류, 나영정이 해석해 쓰고 그것을 내가 읽는다.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치면서도 굳이 우리가 이 모든 차별을 수신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차별당하는 고통은 거기에만 있어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만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윤획득을 위해 국경을 넘는 자본에게 걸림 없이 자유로운 법이, 임금을 위해 국경을 넘는 노동자들에게 그렇게도 가혹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차별의 구체적인 행위가 흔히 일터에서 확인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인민의 먹고사는 것을 통제해 지배계급의 더 많은 부를 확보하는 것 또한 인류역사에서 자본주의가 처음도 아니다. 자본은 모든 차별을 개별화 한다. 이주노동자가, 여성이, 청소년이, 노인이, 장애인이, 비정규 노동자가 차별받는 것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 그 결과 노동자에겐 저임금으로 자본에게는 더 많은 이윤으로 관철된다. 저임금 노동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반화된 차별만큼 좋은 것은 없다.

임금을 적게 주는 것보다 더 가혹한 차별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성매매노동자와 성소수자· HIV감염인, 그리고 장애인들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자주 부정 당한다. 마치 없는 듯이 여기도록 강요한다. 누구를 위해 이토록 폭력적인 질서가 운영되는가.

모든 차별을 개별화해 부족한 인간, 혹은 없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계급의 전략이라면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풍요롭게 살고 싶은 우리의 전략은 각각으로 나눠진 차별을 확인해 묶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까지 포함해 차별과 폭력을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생명은 우주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전략에 근거해 차별에 저항하는 자들의 모임은 그 자체로 넉넉하게 빛이 난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 명의 여성노동자의 고통에 공감해 많은 차별받는 자들이 모여 함께 싸워 승리한 여성가족부 앞 농성장의 풍요로움을 기억한다. 차별에 저항해 자본주의를 전복하자는 말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움직여 함께 싸우는 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말이다. 내일이나 모레, 혹은 먼 훗날 언제인가 올지 모르는 해방의 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이 구체적인 고통들에 응답하며 살아야 내 삶이 행복해지는 것 말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 이 순간 어느 곳에서 이주노동자를 아버지로 둔 어떤 여자아이는 광부의 딸이었던 나보다 더 많은 차별을 경험하며 당황해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미안하다. 그러니, 더 많은 차별이여, 내게로 오라. 내가 아는 차별이 그 길로 간다. 어떤 차별도 감당하지 않으며 고통과 아픔을 더 선명하게 나눠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더 많고 많은 차별이여, 내게로 오라. 우리는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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