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정년연장법. 박수치고 난리다. 지난달 30일 이른바 정년연장법, 즉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2016년부터, 늦어도 2017년부터는 적어도 정년이 60세라고 노동자는 온통 환호한다. 정년이 연장된다니.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재정이니 고령자부양문제니 복지로 국가가 짊어지지 않으니 어차피 연장될 수밖에 없는 정년이었다. 사용자단체들은 국가가 부담해야 할 것을 기업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국회에서 이 정년연장에 관한 법이 통과되기 직전인 지난달 26일 경총, 전경련 등 5개 사용자단체는 ‘최근 경제·노동 현안 관련 규제 입법 등에 대한 경제계 입장’을 통해 정년연장 의무화는 신규채용을 어렵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용자들의 반대 주장 때문인지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년연장법은 임금체계 개편이 꼬리표처럼 붙어 있다. 정년연장에 관한 법개정 논의과정을 보면 노동자를 사용해 주는 것이 사용자의 은혜라고 노동자는 임금의 동결, 삭감 등 임금체계 개편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됐다. 언젠가부터 노동자는 사용자가 자신을 사용해 주는 것이 감사한 세상이 됐다. 기간제다 뭐다 비정규직으로, 정리해고다 뭐다 해고로 노동자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다 보니 어쩌다 노동자로라도 제대로 사용해 주는 것이 고마운 세상이 돼버렸다. 이런 세상에선 아무리 임단투 시기에 노조 위원장의 구호에 따라 노동해방을 외쳐대도 노동자는 자신을 사용해 주는 사용자에 감읍할 뿐이다. 그러니 노동자가 주인 된다는 노동자세상·노동해방은 임단협 파업출정식의 의례적 구호로 인식되고 있다. 노동자의 세상살이는 가도 가도 늙어져도 주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이런 심정이니 정년연장법에 오늘 이 나라 노동자는 박수로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2. 올해 노조의 주요 교섭요구안을 보면 정년연장이 있다. 보통 60세까지 정년을 연장하거나 국민연금 수령시점까지 정년을 연장한다는 요구다. 이런 사업장의 경우 대체로 55세부터 58세까지다. 사무관리직은 벌써부터 이 정년이 도달해서 정년연장이 문제됐다. 그리고 많은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통해서 정년을 연장했다. 임금동결로 심지어는 임금을 삭감하고서, 나아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인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되는 것을 정년연장이라고 도입하기도 했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노조가 합의하고서 이같이 도입된 사례도 있었다. 정년이면 퇴직해야 하는데 그것을 연장해줘서 회사에 다닐 수 있게 해줬으니 임금이든 신분이든 뭐든 내주더라도 감지덕지라고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경총의 2013년 임단협 지침서에서도 정년연장을 노조와 논의하더라도 반드시 임금체계의 개편과 연계해 검토하라고 하는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거나 임금체계를 직무급 또는 성과급제로 변경하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65세 정년을 보장하도록 개정된 법이 지난 4월1일부터 시행되었다. 일본에서 현재 60세인 연금지급 개시연령이 올해부터 2025년도까지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상향조정되는 과정에서 연금이나 수입이 없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법을 개정해서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개정된 고령자 등의 고용의 안정 등에 관한 법률 제9조의 시행에 따른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19조에 정년 60세 이상이 되도록 정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권고사항에 불과해 사용자에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 나라 노동자, 노조에게는 일본의 경우가 부러웠을 것이다. 굳이 정년 연장을 요구해서 교섭과 투쟁으로 단체협약으로 쟁취하지 않아도 65세까지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니. 투쟁할 힘이 없는 사업장에서는 정년연장을 위해선 뭐든 내줘야 할 거라고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3. 그런데 정년연장법이 통과됐다. 이제 2016년부터, 늦어도 2017년에는 30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라도(개정법 부칙) 이제 정년은 적어도 60세다. 그러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겠다고 노조가 투쟁하지 않아도 된다. 그 동안 노조의 힘이 센 사업장에선 정년연장을 요구해서 노사합의 등 단체협약으로 체결해왔다. 그런데 그런 사업장들은 문제가 생겼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거의 대부분 임금피크제다 뭐다해서 임금 삭감이든 동결이든 해주고 심지어 계약직으로 쟁취한 것이었다. 강성노조라고 불리는 사업장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만히 있었으면 법에 의해서 자동으로 60세까지는 정년연장되는 걸 괜히 조합원 임금 등의 권리를 내주고서 확보한 꼴이 돼버렸다. 국회를 통과한 정년연장법은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을 노사가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19조의2).

그래서 그 해석이 논란이 되고 있으나 규정은 분명히 노사가 그걸 하지 않더라도 개정법 부칙이 정한 시행시기, 즉 2016년 또는 2017년이 되면 법에 의해 60세 정년으로 간주된다고 정했으니 그 시기가 되면 법으로 60세 정년으로 간주돼버리는 거다(19조2항). 그러니 어째야 하나. 이미 정년연장에 합의한 사업장은. 사용자가 정년연장법이 통과됐다고 임금 삭감·동결 등의 조건을 없애줄 리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개정법이 임금체계 개편을 하도록 정하고 있고 그것이 정년연장의 전제인 양 사용자들은 임금체계를 개편하자며 임금피크제를 들고 나올 게 분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미 정년연장을 해낸 사업장 노동자는 환호하지 못하고, 그렇지 않은 사업장 노동자는 박수치며 환호하는 법이 통과됐다.

4. 어쩔 수 없이 지금 이 세상은 노동자가 사용자를 위해서 노동할 수 있는 것이 권리인 세상이다. 그것은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운동이 세워낸 노동자 권리가 아직은 그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60세 정년연장법은 노동운동에 의해서 쟁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조가 요구하고 지지했다 하더라도 그렇다. 국회가 이 법안 제안 이유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고령화 진행속도가 세계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돼 2000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후 2018년에 고령사회(65세 이상 14%)를 지나 2030년에는 전체 인구의 4명 중 1명(24.3%)이 노인인 초고령사회(65세 이상 20%)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특히 2017년이면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세로 돌아서고, 203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중 핵심생산층(25~49세)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아래로 떨어지는 것으로 예측돼 노동시장에 상당한 충격이 예상”되기 때문에 입법된 것이다. 한 마디로 노동시장의 측면에서 노동력 공급을 확대시켜보겠다고 고령사회 시대에 대응할 필요에서 입법된 것이다. 더구나 우리 노동자 대부분의 경우 국민연금이든 퇴직연금이든 저축이든 뭐든 그것으로는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대규모로 퇴출하게 될 퇴직 이후 고령자의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는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은 늙은 노동자라고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정년연장법, 그저 법으로 강제해서 시행한다고 그것이 노동자 권리라고 노동자는 마냥 좋아요, 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것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하는 사업(장)의 사업주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는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정하고 있어서(제19조의2 제1항) 임금 등 기존 노동자 권리를 삭감하자고 사용자가 나올 것이다.

5. 이제 이 나라 노동자, 노조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뉴스를 보면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현행 정년 60세를 61세로 연장하는 요구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년연장법 아래서 노사는 정년연장에 관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교섭과 협의, 그리고 투쟁할 것이다. 60세 정년연장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용자의 임금체계 개편 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개정법이 시행되는 2016년, 또는 2017년이 되면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제19조 제2항). 비록 개정법에서 노사가 임금체계 개편에 관해 합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지만(제19조의2 제1항) 그때까지 그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개정법 규정에 의해서 적어도 60세 정년은 보장되는 것이다. 따라서 60세 정년연장을 위해서라면 이 법이 시행되는 시기까지 가만히 있으면 된다. 사용자는 노동자, 노조를 상대로 주장해서 할 일이 있겠지만 그건 노동자 권리를 위해서 노조가 할 일은 아니다. 이미 60세 정년연장을 도입한 사업장의 경우라면 그 도입 과정에서 조정될 수밖에 없었던 임금 등 노동자 권리를 회복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다른 사업장 노동자 수준으로 정년연장을 보장받는 길이다. 그런데 60세를 초과한 정년연장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다르다. 이 경우는 법에 의해서 정년연장이 간주되지 않는다. 정년연장에 반대하거나 임금체계 개편을 요구하면서 사용자는 노동자의 요구에 대응할 것이 분명하다. 바로 이 경우가 노조의 일이 된다. 정년연장을 순전히 노동자 권리로서 쟁취해낼 수 있느냐는 바로 노조가 어떻게 교섭과 투쟁으로 사용자의 임금체계 개편 시도에 대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미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 권리를 위해서 노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근로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제33조). 우리의 경우도 일본의 경우를 쫓아서 언젠가는 60세 정년을 다시 65세로 연장하는 법이 시행될지 모른다. 그때까지는 이제 60세를 넘어서 65세까지 정년연장은 노조의 일이다. 거기서 노동자가 박수로 환호할 것인지, 그것은 노조가 어떻게 노동자 권리로 쟁취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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